내가 몸담고 있는 대학의 학사일정 상 공식적인 여름방학 시작일이 수요일인 오늘이다. 때마침 스케쥴이 비어 있어서 기범씨의 실전암벽반 교육에 게스트로 참여할 수 있었다. 방학이라고 해봐야 학기 중에 미뤄둘 수 밖에 없었던 연구과제와 세미나가 줄줄이 기다리고 있지만, 당장은 1학기 성적처리까지 끝낸 홀가분한 기분을 잠시나마 만끽하고 싶었다. 아무튼 기분 좋은 방학이다. 인수봉 바윗길 전체가 한적한 평일에 등반할 수 있는 기회가 내게 주어진 것을 커다란 행운으로 생각하면서 도선사주차장에 약속시간인 아침 7시보다 조금 이른 시간에 도착했다. 주말이면 새벽부터 주차할 곳을 찾느라 눈치싸움을 벌여야 하는 주차장이 널널해서 마음까지 평온해졌다.
백운대로 향하는 등산로 입구의 윗쪽 데크에서 일행분들을 기다리고 있는데, 기범씨가 도착하기 전에 바로 아래쪽 데크에서 세 분이 오늘 처음으로 대면하게 될 나에 대한 얘기를 나누고 계시는 듯하여 먼저 아는체를 하게 되었다. 대학산악회 동문 선후배 사이의 의사 선생님들인 김선생님과 구선생님, 그리고 수학강사이신 박선생님과는 모두 초면이었지만 클라이머들 특유의 자연스럽고 전혀 어색하지 않은 인사를 나누었다. 곧이어 기범씨가 도착하고 우리 다섯 명은 인수봉으로 향했다. 오늘은 동벽 맨 우측의 심우길부터 등반할 계획이라고 했다. 2년 전에 기범씨와 함께 명명한 캐리(CARI: Climbing of All Routes in Insu-peak) 프로젝트의 출발점이 바로 심우길이어서 그때 생각이 문득 떠올랐다.
등반 열정일랑 식을 줄 모르는 기범씨답게 오늘도 빡센 등반의 연속이었다. 먼저 총 4피치의 심우길을 세 마디로 끊어서 올랐다. 다음으로 취나드A길과 벗길 두 피치에서 톱로핑 방식으로 연습했다. 심우길의 사선크랙은 여전히 버거웠고, 벗길 크럭스 구간에서의 동작도 예전보다 나아진 게 없는 느낌이었다. 평소에 내가 등반하던 곳보다 어렵고 힘든 루트들이어서 조금은 힘겨웠지만, 오랜만에 손가락 끝이 아리고 장딴지가 뻐근해지는 뿌듯함이 남았던 등반이었다. 무엇보다 오늘 처음 만났는데도 마치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낸 악우들처럼 친숙하게 대해주셨던 세 분이 함께 해서 더욱 즐거운 하루였다.
아래는 CARI 프로젝트를 처음 시작하던 2년 전의 기록과 오늘 등반한 루트들의 개념도이다.
https://blog.daum.net/gaussmt/13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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