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빙벽등반

강촌 유선대 암장 - 2022년 5월 21일(토)

빌레이 2022. 5. 22. 09:42

사회적 거리두기가 해제되고 일상회복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것은 반가운 일인데, 그만큼 나의 일상은 한층 더 바빠졌다. 모든 강의와 세미나가 대면으로 진행되고, 그간 미루었던 대학원 졸업생 제자들과의 모임도 있어서 그 어느 때보다 빡빡한 일정의 한 주간을 보냈다. 집안 인테리어 공사 준비까지 겹쳐서 심신이 피곤하고 분주했다. 어쩔 수 없이 실내 암장에서의 운동도 잠시 쉬기로 했다. 주말 등반지 선택에 대한 행복한 고민의 시간도 부족해서 간단히 지난 주에 이어 유선대 암장에 다시 가기로 했다. 익숙한 암장이니 별다른 준비는 필요 없어서 맘 편히 즐기다 오고 싶었다.

 

어차피 프로젝트 등반을 할만한 몸과 마음의 준비가 안 되어 있으니 유선대 암장에서 지금까지 올라보지 못 했던 새로운 루트를 경험하는 것에 오늘 등반의 의미를 두기로 했다. 베이스캠프 앞의 3개 루트에서 몸을 푼 후에 'HANBIT(5.10d)' 루트에 처음으로 붙어 보았다. 크럭스 구간을 인공등반 방식으로 올라설 수 밖에 없을 정도로 버겁게 느껴졌다. 줄을 걸 수 있었던 것에 만족해야 했고, 톱로핑 방식으로 다시 올라 봐도 첫 번째 오버행 구간을 자유등반 방식으로 돌파할 수는 없었다. 점심 후에는 '통천문' 루트 두 피치를 가볍게 등반한 후에 '프리텐션(5.12a)' 루트에 처음으로 붙었다. 역시나 인공등반 방식으로 돌파한 것에 만족해야 했다. 최근의 개념도엔 '프리텐션'의 난이도가 5.11a로 조정된 듯한데, 11대이든 12대이든 지금의 내 등반 능력에서 자유등반 방식으로 오를 수 없는 루트라는 사실엔 변함이 없다. 그래도 유선대 암장 중앙벽의 모든 루트를 경험해 봤다는 것에 만족감이 있었던 등반이었다.         

 

▲ 아무리 바쁜 일상을 보냈어도 암벽화를 신는 그 순간부터는 새로운 시공간으로 들어선 듯한 기분이 든다. 나는 이 순간이 참 좋다.
▲ 자연암벽이 좋은 건 같은 루트라도 오를 때마다 새롭다는 것이다. '101동' 루트를 지난 주와는 다른 홀드를 잡고 올랐다.
▲ 자연암벽은 등반에 집중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비교적 쉬운 '101동' 루트라도 홀드와 동작 하나 하나에 집중해야 했다.
▲ '101동' 루트 확보점 직전에서 처음으로 니바(Knee bar) 자세를 취해볼 수 있었다.
▲ 베이스캠프 앞의 '101동', '102동', '시동'에서 몸풀이 등반을 했다.
▲ 중앙벽에서 고난도 루트에 속하는 우측의 '프리텐션'과 'HANBIT' 루트 오버행 구간에 설치되어 있는 체인이 나란히 보인다.
▲ '한빛(5.10d)' 루트 초반부는 아기자기 하게 오르는 재미가 있었다.
▲ '한빛'의 첫 번째 오버행 구간에서 이리저리 내게 맞는 홀드를 찾아보려고 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 첫 번째 크럭스는 체인을 잡고 올라설 수 밖에 없었다.
▲ '한빛'의 두 번째 오버행 구간 역시 처음엔 아주 어려웠다. 작은 홀드를 잡고 넘어설 때 손가락 통증을 참아야 했지만, 몇 번 연습하면 돌파할 수는 있을 듯했다.
▲ '한빛'은 등반거리가 31미터로 60미터 자일을 사용할 때 절반이 넘어간다. 하강 시 확보자는 반드시 스톱퍼 매듭을 해야 한다.
▲ '한빛' 루트는 첫 번째 오버행 구간만 해결되면 프로젝트 등반 대상으로 아주 재미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식후 등반으로 소화에 부담 없는 '통천문' 두 피치를 올랐다.
▲ '통천문'은 1, 2 피치 모두 30 미터 등반 거리에 등반성도 좋아서 설악산 어느 골짜기에 온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 '통천문' 2피치는 침니 등반의 진수를 맛볼 수 있는 보기 드문 바윗길이다.
▲ 개척 초기에 '5.12a'로 표기되어 있는 '프리텐션' 루트의 출발점이다.
▲ 여의치 않으면 크럭스를 인공으로라도 돌파해보겠다는 생각으로 슬링을 준비해서 '프리텐션' 루트에 붙었다.
▲ 역시나 '프리텐션' 루트도 첫 번째 오버행 구간을 넘어서는 것이 관건이었다.
▲ 언더 홀드를 잡고 그 위의 홀드를 잡는 건 어찌 해보겠는데, 그 이후가 문제였다. 인공등반을 한다고 해도 일어서서 체인을 잡는 데는 완력이 필요했다. 팔을 한 번 풀어준 후에 단 번에 올라섰다.
▲ '프리텐션'의 두 번째 오버행 턱은 우측의 '한빛'보다 한결 더 버거웠다.
▲ '프리텐션'은 지금의 내 등반능력으로는 자유등반 방식으로 완등한다는 게 불가능해 보였다. 인공등반 방식으로 올라섰다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
▲ 자연은 생각보다 빠르게 변한다. 3월 초에 왔을 때 암장 접근로 주변에서 녹색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불과 100일도 되기 전에 산길은 신록에 포위되었다. 하루 하루의 변화들을 감지하기는 힘들지만 자연은 어김 없이 제 할 일을 한다. 나의 클라이밍도 그렇게 성장해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 지난 3월 9일에 바로 위의 사진과 같은 장소에서 촬영한 유선대 암장 접근로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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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유선대 암장 개척 보고회가 열렸던 2016년 당시의 월간 <산> 11월호에 실린 개념도 중 일부이다.

아직 경험해 보지 않은 우벽의 루트들을 포함한 유선대 암장의 모든 루트를 등반해 본다면 좋겠다는 바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