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 전의 노적봉 등반에서 암벽까지의 접근 거리가 먼 멀티피치 등반이 아직은 온전치 않은 내 허리 상태에 큰 무리가 따른다는 걸 깨달았다. 내가 앓고 있는 척추관협착증에는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장시간 동안 산길을 오르내리는 것이 대단히 해롭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시험 삼아 한 번은 내가 좋아하는 멀티피치 등반을 시도해 보고 싶었던 것이 화근이었다. 노적봉 등반을 다녀온 이후에 사나흘 동안은 경미한 허리 통증에 시달려야 했다. 지금은 거의 회복되었지만, 대자연 속의 멀티피치 등반에 대한 미련을 버려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거운 로프나 등반장비를 악우들에게 부탁해가면서까지 좋아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접근거리가 긴 등반을 계속한다는 건 염치 없는 행동이다. 이제는 현재의 내 건강과 몸 상태를 겸허히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 나름대로 새로운 즐거움을 찾아보는 방향으로 생각을 전환하기로 했다.
지금까지의 등반을 대하는 기본적인 자세에서 과감히 탈피하여 일단은 어프로치 길이가 짧은 하드프리 암장에서 지지부진한 나의 클라이밍 실력부터 업그레이드 시켜보자는 것으로 마음을 정했다. 모든 것은 생각하기 나름이라고, 이렇게 마음을 바꿔 먹은 이후로 소소한 성취감을 맛볼 수 있었다. 지난 금요일 저녁엔 평소 운동하던 실내암장에서 오버행 벽의 홀드 40개짜리 지구력 문제를 처음으로 왕복하는 데 성공했다. 토요일인 어제는 당고개 인공암벽장에서 5.10c 루트를 역시나 처음으로 완등했다. 그리고 오늘 파주의 거인암장에서는 프로젝트로 생각하고 등반에 임했던 '자성(18m, 5.10c)' 루트를 두 번째 시도만에 깔끔하게 완등하는 기쁨을 누렸다. 그동안 부상의 두려움을 떨치지 못하여 난이도 5.10b 이상은 시도조차 망설이던 소극적인 자세에서 벗어나니 새로운 목표가 생기게 되었고, 작은 목표나마 그것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얻는 재미가 있었다.
등반에 임할 때의 방어적이었던 태도가 스스로의 한계를 정하는 바람에 내 클라이밍 능력의 향상을 저해하지는 않았나 하는 반성을 해본다. 나의 유리멘탈이 보이지 않는 유리천장을 만들었던 면이 없지 않다는 생각이다. 물론 실내암장에서의 꾸준한 운동과 3개월 전부터 이어오고 있는 성공적인 다이어트가 클라이밍 뿐만 아니라 내 생활의 많은 부분에서 긍정적인 에너지를 가져다 주고 있는 점 또한 매우 큰 영향력을 행사했을 것이다. 앞으로의 클라이밍에서도 결코 서두르거나 무리하지 않고 한 단계씩 차근차근 진일보하면서, 희미한 불꽃처럼 사그라져 가는 내 안의 도전정신까지 일깨우는 자세를 견지해 나아가야 할 것이다. 오늘 만족스럽게 완등했던 루트인 '자성'이 나의 클라이밍에 관한 태도와 행동을 스스로 돌아보면서 반성하는 '자성(自省)'의 계기가 되었다는 것이 무엇보다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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