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빙벽등반

불곡산 악어능선과 포천인공암벽장 - 2021년 5월 5일(수)

빌레이 2021. 5. 5. 19:45

어제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는 어린이날인 오늘 새벽까지 이어졌다. 지난 주말에 이어 비가 온 직후에 젖어 있을 바윗길을 올라야 한다는 부담감을 안고 등반에 나서게 되었다. 양주시의 불곡산에 있는 '악어의 꿈길' 릿지를 향해 아침 일찍 어프로치를 시작할 때만 해도 날씨는 괜찮아 보였다. 아직 완전히 걷히지 않은 먹구름이 바람을 따라 오락가락 하면서 불곡산 등산로 주변은 시시각각 음지와 양지로 변하길 거듭했다. 양지바른 첫 피치에서 시작한 등반은 음지로 변한 둘째 피치의 확보점에서 후등자 빌레이를 보는 순간부터 난관에 봉착하기 시작했다.

 

2피치 확보점에 서있는 동안 제법 쌀쌀한 강풍이 매섭게 불어제쳤다. 몸에 한기까지 느껴져 더이상 등반을 이어갈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복주머니 바위 꼭대기로 올라서야 하는 3피치를 건너 뛰고 악어바위를 구경한 후 후퇴하기로 결정했다. 계획된 등반을 끝내지 못한 찝찝함을 달래기 위해서 가까운 포천인공암벽장으로 이동했다. 예전보다는 알차게 셋팅된 루트들을 오르내리면서 오후 시간 동안 스포츠클라이밍으로 몸을 푼 것에 만족해야 했다. 자연 속에서 행하는 등반이 항상 즐겁고 좋은 환경일 수는 없는 법이다. 몸도 마음도 개운치 않은 하루였지만, 이 마저도 열린 마음으로 자연스레 받아들여야 한다.    

 

▲ '악어의 꿈길' 첫 피치 확보점에 올랐을 때까지는 햇살이 비춰주고 바람도 견딜만 했다.
▲ 대교아파트에서 시작한 어프로치를 하는 발걸음은 가벼웠다. 간밤의 비에 온몸을 깨끗이 씻어낸 병꽃들의 산뜻한 모습이 보기 좋았다. 
▲ 최근에 낙석사고가 있었다는 채석장터. 거벽을 오를 때 필요한 인공등반(aid climbing) 기술을 익힐 수 있는 암장이다.
▲ 대교아파트 근처에 주차하고 악어바위 이정표를 따라가면 '악어의 꿈길' 릿지 출발점이 나온다.
▲ 쿠션바위를 만나면 릿지 출발점에 거의 다 온 것이다.
▲ 남근바위 앞에서 우측으로 돌아가면 '악어의 꿈길' 출발점이 나온다.
▲ '악의의 꿈길' 릿지는 '산머루산다래' 산악회에서 개척했다.
▲ 최근 허리둘레가 2~3인치 줄어서 작은 사이즈의 안전벨트를 새로 구입했다. 이 안전벨트로는 오늘이 첫 등반이다. 
▲ 악어능선을 오르는 등로 우측에 자리한 첫 피치는 다행히 바위가 말라 있었다.
▲ 악어능선을 오르는 일반 등산로 좌측에 있는 둘째 피치로 들어서는 순간부터 쌀쌀하고 세찬 바람이 불었다. 
▲ 둘째 피치는 음지였다. 별로 어려운 구간이 없는데도 세찬 바람 때문에 몸이 저절로 움츠러들었다.
▲ 2피치 확보점에서 후등자 확보를 보는 동안엔 오월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의 한기가 느껴졌다.
▲ 허리 통증 때문에 배낭을 가볍게 짊어져야 해서 보온의류도 준비하지 않은 탓에 햇살 속에서도 추위에 떨어야 했다.  
▲ 3피치는 앞에 보이는 복주머니 바위 꼭대기로 올라가야 하는데 매서운 바람 때문에 엄두가 나지 않았다.
▲ 악어바위를 구경하는 것으로 오늘의 등반은 접기로 한다. 악어 입 아래의 바윗틈에 병꽃이 피어 있었다. 최근엔 일부 몰지각한 클라이머들이 악어바위의 크랙을 따라 오르거나, 자일로 여기로 하강하면서 인증사진을 남기기도 하는 모양이다. 이런 귀한 바위는 오래도록 보존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등반을 하지 않는 것이 클라이머의 예의라는 생각이다. 악어바위 앞에는 훼손 방지를 위한 등반금지 푯말이 있다. 
▲ 즐겁지 않을 등반을 이어갈 의지는 이제 사라지고 몸도 마음도 편안한 것을 먼저 찾는 나이가 되었다는 자각에 유쾌할 수는 없었다.  
▲ 삼단바위 근처에서 하산하는 것으로 오늘의 등반은 접기로 했다. 
▲ 오늘 불었던 세찬 바람이 멀리 멀리 씨를 퍼트려야 하는 송화가루에게는 이로운 바람일 것이다. 
▲ 오토빌레이 시스템이 새로 생기고, 루트들도 알차게 셋팅된 포천암장에서 운동한 것이 조금은 위안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