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와 달리 거실 창밖으로 환하게 빛나는 햇살이 반갑다. 쾌청한 하늘과 따스한 햇빛의 유혹을 참지 못하고 가볍게 여장을 꾸려 집을 나선다. 허리 통증을 다스리는 데는 걷기 운동이 제일이라는 말을 믿고 싶다. 다행히 걷는 걸 좋아하니 틈이 날 때마다 바지런을 떨어볼 생각이다. 문득 청와대 뒷편의 북악산 성벽길이 지난 11월 1일부터 52년만에 일반인에게 개방되었다는 소식이 떠올라 그쪽으로 가는 길을 구상해 본다. 북한산둘레길을 걷다가 정릉탐방안내소 앞의 식당에서 순두부백반을 점심으로 사 먹는다. 소화를 시킬 요량으로 정릉천변길을 따라서 천천히 내려오다가 국민대 교정을 통과한다. 북악터널 위로 이어지는 산길을 따라서 북악스카이웨이 산책로에 접어드니 제법 많은 사람들이 눈에 띈다. 팔각정을 지나서 조금 더 전진하니 새롭게 개방된 통문이 도로 건너편에 보인다. 매스컴을 통해서 개방 소식을 접한 시민들로 붐비는 구간은 천천히 통과할 수 밖에 없다.
새롭게 개방되었다는 북악산 성벽길은 예전에 걸어본 구간과 겹치는 곳이 대부분이어서 그리 새로울 것은 없었지만 맑은 날씨에 시야가 좋아서 주변 풍경을 둘러보는 재미가 남달랐다. 북악산 성벽길의 날머리인 창의문의 건너편에는 윤동주 문학관이 자리하고 있다. 관람객들 틈에 끼어 내부를 잠시 구경하고 나와서 윤동주 시인의 언덕을 올라선 다음 인왕산 자락길로 접어든다. 비로소 한적한 숲길을 걷는 편안함이 찾아든다. 처음 걸어본 인왕산 자락길에는 수성동 계곡과 함께 눈길을 잡아 끄는 절경들이 숨어 있다. 조선시대의 화가 겸재 정선으로 대표되는 진경산수화의 본고장인 인왕산에서 그 옛날 시인 묵객들의 혼이 살아 있는 듯한 자락길을 천천히 음미하듯 걸으니 마음 속까지 편안해지는 기분이다. 어둑해질 무렵 산에서 벗어나 통인시장에서 저녁을 사 먹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느껴지는 잔잔한 행복감이 좋다. 서울 한복판에서도 충분히 낭만적인 가을날을 만끽할 수 있는 다양한 도보길이 있다는 것이 감사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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