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깊어가고 시간은 빠르게 흐른다. 벌써 시월의 마지막 날이다.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이 나이 먹는 것이라는 진리를 새삼 깨닫게 되는 요즘이다. 하릴 없이 시간만 흘러보내지 않기 위해서 제일 중요한 것은 건강이다. 몸과 마음, 육체와 영혼이 모두 건강해야 자신에게 주어진 소명을 완수할 수 있고, 자신이 계획한 바를 제대로 실천할 수 있다. 그런데 요즘 나의 몸 상태는 그리 좋지 않다. 척추관협착증으로 인한 허리통증을 다스려야 하는 상황에서는 아무래도 모든 일을 방어적으로 처리할 수 밖에 없다. 이는 내가 원하는 방향의 삶이 아니다.
우선은 마음 편하게 먹고 몸 건강을 먼저 회복시켜야 하는 것이 선결 과제이다. 병원 치료를 받은 이후에 처음으로 배낭 메고 주말 등산에 나서본다. 짐은 최대한 가볍게 챙기고 무리하지 않게 내 페이스를 지키면서 천천히 걷자는 다짐을 한다. 특별한 목적지를 정하지 않고 집에서부터 걸어서 접근할 수 있는 북한산 이곳 저곳을 발길 닿는 대로 배회하기로 한다. 허리 통증이 견딜만 할 때까지만 걷기로 한 오늘 산행은 몸과 마음의 치유를 위한 것임을 망각하지 않아야 한다.
아침 8시 경에 집을 나선다. 아파트 단지에서 곧바로 나타나는 북한산둘레길 3구간에 속하는 흰구름길을 4 킬로미터 정도 천천히 걷는 것으로 산행을 시작한다. 수유리 아카데미하우스 앞에서 신익희 선생의 묘소를 지나 구천폭포 위의 전망대에서 커피 한 잔의 여유와 함께 첫 번째 휴식을 갖는다. 다시 가파른 등산로를 천천히 올라가서 대동문에 도착한다. 공사중인 대동문을 뒤로하고 용암문 가는 길 중간의 양지바른 쉼터에서 점심을 먹는다. 근래의 가뭄 탓에 단풍잎들이 말라서 떨어졌지만 가을의 서정을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는 주변 숲이 안온하다.
점심 후에는 용암문 직전에서 산성계곡으로 내려가는 길을 따른다. 드넓은 계곡 옆의 등산로가 산객들로 붐빈다. 백운대와 대남문으로 향하는 길이 갈리는 삼거리에서 잠시 쉰 후 원효봉 아래의 덕암사(아미타사)를 거쳐 서암문(시구문)을 통과하고, 북한산둘레길 10구간부터 12구간에 속하는 내시묘역길, 효자길, 충의길을 차례로 밟는다. 상대적으로 찾는 이가 드물어 호젓하고 순하디 순한 오솔길이 이어지는 이 구간의 둘레길이야말로 제대로 된 치유의 숲길이라는 생각이 든다. 제법 긴 시간을 걸은 후에야 두 다리에서 느껴지는 기분 좋은 뻐근함과 함께 비로소 찾아오는 허리 통증이 오히려 반갑다. 솔고개에서 의정부로 향하는 34번 버스에 올라타는 것으로 오늘의 산행을 마무리한다. 오후 5시 가까운 시각이다. 허리가 그런대로 잘 버텨준 것에 감사하는 마음이 먼저 떠오른다. 가을의 북한산에서 몸과 마음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 넣을 수 있었던 뜻깊은 산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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