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리 상태가 좋지 않다는 핑계로 강의가 없는 평일 하루를 쉬기로 한다. 주말이면 암벽등반에 몰두하느라 소홀했던 아내에게 충성할 기회를 만들기 위해서 함께 둘레길 산책에 나선다. 우이동 경전철역을 빠져나와 백운대 가는 길과 반대인 도봉산 방향의 북한산둘레길을 따라 걷는다. 왕실묘역길 구간에서 잠시 벗어나 김수영 문학관을 구경할 수 있는 행운을 얻는다. 그간 코로나 사태로 문을 닫았었는데, 거리두기 조치가 1단계로 완화된 후부터 다시 열린 것이다. 평일이라서 우리 부부 외에는 관람객이 전혀 없는 문학관 내에서 한참 동안 공부하듯 문학관 내부를 속속들이 구경한다. '풀'이라는 시 외에는 김수영 시인에 대해서 거의 아는 것이 없다는 사실에 부끄러움을 느낀 채 문학관을 빠져나온다. 원당샘 주변의 은행나무와 연산군묘를 돌아본 후 정의공주 묘역을 지나서 북한산둘레길의 방학동길 구간으로 접어든다.
방학동길 구간은 무수골 마을에서 북한산둘레길의 도봉옛길 구간으로 이어진다. 도봉옛길이 끝나는 지점에서 음식점과 상가들이 모여 있는 도봉산 입구로 내려간다. 산두부집에서 막걸리 한 사발을 곁들인 점심을 사먹고, 도봉산역을 지나서 서울둘레길의 시작점이 되는 청포원에 들어선다. 억새밭을 꾸며 놓은 청포원에서 잠시 가을 정취를 느껴본 후 중랑천을 건너서 수락산으로 이어진 서울둘레길 표지판을 따라 걷는다. 북한산둘레길과 달리 인적이 거의 없는 서울둘레길의 수락산 구간을 따라서 쉬엄쉬엄 걷다가 천상병 시인의 발자취가 남아 있는 수락산 입구에서 걷기를 마친 후, 수락산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온다. 아내의 만보기가 2만 7천보를 알려줄 만큼 제법 길게 산길을 걸었으나 허리 통증이 거의 없으니 다행이지 싶다. 둘이서 함께 걸으며 대화하는 시간 속에 김수영 시인과 천상병 시인의 문학적 향기가 더해지니 이 가을이 더욱 풍성해진 듯한 기분이다. 천상병 시인은 '귀천'에서 아름다운 이 세상을 소풍이라 표현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우리의 걷기 또한 소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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