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분한 마음으로 산길을 오래 걷고 싶었다. 암벽등반을 위해서만 산을 찾던 그간의 단순한 패턴에서 좀 벗어나고 싶었다. 부담 없이 가벼운 짐과 가벼운 마음으로 호젓한 등산을 해보자는 생각으로 상계역을 빠져 나온다. 불암산 둘레길로 접어들었는데 마스크를 착용한 채 산책나온 꽤 많은 시민들로 호젓한 산길의 정취를 누릴 수가 없다. 가능하면 사람들과의 접촉을 피하고 마스크에서 해방되고 싶은 마음에 영신슬랩 우측의 오솔길로 꺽어든다. 길은 학도암 위의 한성대 암장으로 이어진다. 암장에서 운동하는 클라이머들을 잠시 구경하고 가파른 등로를 올라서서 전망 좋은 테라스에서 잠시 쉰 다음, 천보사를 거쳐 불암사까지 내려간다. 다시 석천암 방향의 슬랩을 힘겹게 올라서서 전망 좋은 곳에 터를 잡고 스마트폰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들으며 한가로운 점심시간을 갖는다.
점심 이후에 정상으로 발길을 돌려 불암산에 올 때마다 찾던 아지트인 정상 동편의 테라스에 걸터 앉아서 남양주 방면의 풍경을 즐겨본다. 정원수처럼 멋지게 눈앞에서 반겨주는 노송이 살갑다. 강한 태풍을 이겨내고 여전히 건재한 채로 그 자리에서 기다려준 소나무의 자태가 고맙고도 아름답다. 풍부한 강수량 덕에 불어난 한강물이 팔당호 아래로 굽이쳐 흐르는 모습이 선명하다. 흐린 하늘에 시원한 공기가 쾌적하여 산길을 걷기에 더없이 좋은 환경이다. 암릉을 타고 올라서 정상을 찍고 길을 이어서 덕릉고개를 건넌다. 불암산을 벗어나 수락산에 들어선 후 불암산과 상계동 일대를 한 눈에 바라볼 수 있는 능선의 테라스에서 간식을 먹는다. 청학리 쪽에서 이슬비가 몰려오는 듯하여 더이상 올라가지 않고 당고개역으로 하산한다. 가벼운 배낭 메고 오랜만에 여유롭게 걸었던 산길의 여운이 남는 치유의 산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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