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트레킹

수락산에서 환상적인 운해를 만나다 - 2019년 11월 16일

빌레이 2019. 11. 17. 06:36

아침에 일어나서 습관처럼 창문 밖을 내다본다. 주변이 온통 하얗다. 그 어느 때보다 짙은 안개 속이다. 제법 많이 내린 비가 그친 후의 청아한 날씨를 기대했었는데 조금은 실망이다. 살 속으로 파고드는 초겨울의 싸늘함을 느끼며 수락산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가볍지만은 않다. 버스를 타고 회룡역정류장에 내려 아파트 공사장 옆의 야산을 오른다. 야생동물 이동통로를 거쳐서 도정봉으로 이어지는 산길을 찾으려 했지만 주변 시야가 전혀 확보되지 않은 탓에 익숙한 지점으로 내려온다. 동두천으로 향하는 자동차 도로 밑의 굴다리를 통과하고 계곡을 건너서 신곡능선으로 올라간다. 물방울 맺힌 소풍길 안내판이 반겨준다. 안개에 갇힌 숲속에서 모닝커피 한잔으로 여유를 찾은 후 오랜만에 걸어보는 신곡능선의 오솔길을 따라서 천천히 발걸음을 옮긴다.


따스한 햇볕은 오후에나 나올 것이라 생각하고 꾸준히 걷던 중 갑자기 눈앞의 소나무 가지 사이로 빛내림이 쏟아진다. 자욱한 안개 위에서 떠오른 태양광선이 부챗살처럼 퍼지는 모습이 제법 선명하다. 그런데 이 아름다운 풍광은 서막에 불과하다. 동막봉을 향해 좀 더 고도를 높이니 어느새 내가 구름 위에 서있고 사방으로 운해가 펼쳐진다. 동막봉을 지나서 도정봉 정상 아래의 전망대에 이르는 동안 그야말로 환상적인 운해가 능선길 좌우로 펼쳐진다. 참으로 오랜만에 산에서 만나는 운해이다. 수락산처럼 비교적 낮은 산에서 운해를 만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의정부와 서울 시가지는 짙은 안개 속에 숨었다. 높은 산봉우리들만 솟아 있는 모습이 자연스레 다도해를 연상시킨다. 구름바다의 아름다운 풍경은 도정봉 아래의 양지바른 테라스에서 점심을 먹고 한참 동안 노닥거릴 때까지 계속된다. 카메라를 챙기지 못하여 스마트폰으로 풍경을 담아야 하는 아쉬움은 남지만 두 눈으로 보고 몸소 느끼는 것만큼 좋은 체험은 없는 것이다. 


도정봉에서 수락산 정상인 주봉으로 향하는 산길을 걷는 동안 도시의 빌딩 숲은 서서히 제 모습을 드러낸다. 오래도록 잊히지 않을 구름바다의 향연을 만났다는 기쁨 때문에 조금은 힘겨운 오르막길을 만날 때에도 힘든 줄을 모른다. 기차바위 우회로를 올라와서 바로 보이는 바윗턱에 누워서 잠시 따스한 겨울 햇볕을 받는 순간의 기쁨도 크다. 한참 동안을 그곳에서 쉬다가 주봉을 거쳐 깔딱고개로 내려와서 수락골로 하산한다. 주봉 정상에 있는 팥배나무 열매처럼 풍성한 결실이 가득했던 산행이었다. 산에서 운해를 만나는 건 예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설악이나 지리산 같이 큰 산에서는 가끔 만나게 되지만 서울 근교의 산에서 운해를 보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산에 열심히 다니다 보면 가끔은 이런 행운도 만나게 되는 법이다. 감사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