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벽등반 약속이 없는 토요일이다. 입시 업무가 더해져 더욱 바빠진 한주간이 힘에 겨웠다. 피곤한 몸은 모든 것이 귀찮다는 신호를 보낸다. 하지만 날씨 좋은 가을날을 집안에서 하릴없이 보낼 수는 없다. 주저하는 마음을 뒤로하고 간단히 챙겨서 아침 일찍 문지방을 넘는다. 북한산둘레길 진입로에 피어있는 코스모스가 잘 나왔다는 손짓을 보낸다. 자락길 근처 사색의 숲에 있는 그네 모양의 흔들의자에 잠시 앉아본다. 주변의 체육시설에서 아침운동에 열심인 사람들을 뒤로하고 칼바위 능선을 따라서 산에 든다. 등산로를 정비하는 공사가 한창인 냉골 갈림길 위의 발동기 소음이 귀에 거슬린다. 안전한 등산로를 만든다는 명목 하에 지나치게 많은 곳을 손대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봐야 한다. 험한 산길과 공원산책로가 똑같을 필요는 없다. 둘레길 주변을 공원화 하는 건 괜찮은 일이지만 이렇듯 높은 곳의 등산로까지 너무 인공적인 공사를 강행하는 국립공원관리공단의 행태는 쉽게 동의할 수 없다. 이러한 잡생각을 하면서 걷다가 공기가 시원해지고 전망이 트이는 바윗턱에 이르러 커피 한잔과 함께 첫 번째 휴식을 갖는다. 연무에 쌓인 서울 시내가 바다처럼 고요하다.
칼바위 정상에서의 조망은 언제나처럼 시원하다. 대동문 주변의 느티나무들은 서서히 가을색으로 물들어 가는 모습이다. 눈 앞의 팥배 열매가 익어가는 걸 보면서 가을이 성큼 다가왔음을 실감한다. 산성주릉에 올라서기 직전의 길가에 피어난 앙증맞은 구절초꽃을 보니 마음이 밝아지는 듯하다. 성벽에 올라서니 벌개미취 무리를 비롯한 많은 가을 들꽃이 반겨주면서 잠시나마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아직은 조용한 대동문을 통과해서 진달래능선으로 하산길을 잡는다. 인수봉이 가까이 보이는 조망터에서 두번째 휴식 시간을 갖는다. 그 어느 때보다 많은 클라이머들로 붐비는 바윗길이 선명하게 보인다. 백련사 방향으로 내려와 계곡에 발을 담그고 사과 하나를 입에 배어문다. 상큼한 가을의 입맛이다. 오후에 찾아뵙기로 한 장인어른과의 약속 시간까지는 여유가 있어 둘레길 두 코스를 더 걸어서 집으로 돌아온다. 초가을의 정취를 만끽한 산행으로 심신이 조금은 가벼워진 듯하다. 약 6 시간 동안을 꾸준히 걸었더니 온몸의 근육이 제법 뻐근하다. 평소보다 가벼운 배낭 덕에 발목이 아프지 않아서 다행이지 싶다. 앞으로도 발목 관절염을 이기고 더 길게 걸어도 좋을 다리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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