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트레킹

궁예능선으로 오른 포천 운악산 - 2018년 8월 15일

빌레이 2018. 8. 15. 18:31

무더위는 이제 무서운 더위가 되었다. 너무 오래 지속되는 올여름의 폭염이 야속하기만 하다. 오늘이 광복절이다. 일본의 압제로부터 해방을 맞이하던 1945년의 그날처럼 오늘을 기점으로 여름날의 일상을 짓누르고 있는 이 폭염이 사라졌으면 좋겠다는 바램을 가져본다. 산바람이 그리워 아침 일찍 운악산으로 향한다. 서울 근교의 불수사도북이 답답하다고 느껴질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곳이 운악산이다. 최근에는 가평군의 현등사 방향에서 자주 올랐었다. 겨울철에는 오전부터 따스한 햇빛이 비춰주는 운악산의 가평군 지역인 청룡과 백호 능선을 걷는 것이 좋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여름철에는 오전에 그늘이 드리워지는 포천군 지역이 상대적으로 시원하다.


새롭게 단장된 47번 국도변의 운악광장은 주차장이 잘 정비되어 있다. 운악산 자연휴양림을 지나서 운악사를 거쳐가는 궁예능선을 따라 오른다. 예전에 자주 올랐던 길이지만 최근엔 와본 기억이 없어서 그런지 처음처럼 새롭다. 궁예성터를 지나 가파른 바윗길을 올라서서 팔부능선 즈음의 사부자바위에 터를 잡고 한참을 쉬어간다. 운치있는 노송이 햇빛을 가려주고, 전망 좋은 바위턱이 평상이 되어주며, 시원한 골바람이 간간히 불어주니 세상에 둘도 없는 최고의 쉼터이다. 바위 평상에 드러누워 잠시 눈을 감고 이 순간의 기쁨을 만끽해본다.


궁예능선을 타고 만경대에 이르는 코스는 험한 암릉길 구간이 많지만 디귿자형 인공홀드가 설치되어 있어서 오르는 재미가 있다. 유럽의 알프스 지역에서 볼 수 있는 비아페라타가 연상되는 등반 형태라고 볼 수 있다. 바위에 박혀 있는 디귿자형 홀드를 잡고 등반하는 것은 가파른 계단이나 사다리를 오르는 것보다 한층 더 재미 있고 유쾌한 기분이 느껴진다. 만경대를 거쳐 서봉 정상과 동봉 정상을 찍고 동봉 아래의 나무 그늘에 터를 잡고 또 한참 동안을 쉬어간다. 동봉 정상까지 올라와서 장사를 하시는 아저씨의 노고 덕택에 아이스께끼 하나를 사먹을 수 있었으니 이 또한 여름산에서만 즐길 수 있는 추억이 되었다.


대안사 방향으로 하산길을 잡으면서 계곡물을 만질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을 떨칠 수 없었다. 최근에 비가 거의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예전 같으면 물이 흘렀을 합수지점까지 내려왔는데도 계곡은 말라 있었다. 탁족은 포기하고 천천히 내려오던 중 사막에서 만난 오아시스 같은 물 웅덩이이 보인다. 계곡의 바위 밑 지하로 흐르던 물이 밖으로 처음 드러난 곳인 듯했다. 암반수의 신선함을 오롯이 담고 있는 물속에 온몸을 담그고 있으니 몇 초 이상을 견디기 힘들 정도로 차갑다. 지난 번 설악산 등반 때 맛보았던 천불동 계곡의 물과는 비교할 수 없는 수온이다. 약수물에 몸을 담근 듯 상쾌한 기분이 들어 건강해진 느낌이다. 광복절 날에 운악산에서 제대로 된 피서를 즐겼으니 이제 남은 무더위 쯤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훌훌 털어버릴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