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빙벽등반

수락산 산안개 암장 - 2018년 6월 2일

빌레이 2018. 6. 3. 07:23

쌍암사 입구의 커다란 은행나무 밑에서 10시에 악우들을 만난다. 승마클럽에서 멋진 몸매의 여성 기수가 우아하게 말타는 모습을 구경하면서 숲으로 들어선다. 오랜만의 산행이라서 그런지 어프로치 하는 발걸음이 무겁게 느껴진다. 도정봉 아래의 산안개 암장에 도착하기까지 중간에 세 번이나 쉬었다가 오른다. 예전 같으면 한 번의 휴식으로 충분했을 거리이다. 은경이는 최근에 어머니께서 중환자실을 오가는 고비를 겪은 탓에 심신이 힘들었을 것이다. 대섭이도 거의 매일 술자리를 가졌을 만큼 근간의 업무가 힘겨웠다고 한다. 나도 그 어느 때보다 빡빡한 일정을 보내고 있는 요즘이다. 명시적으로 말은 하지 않았지만 세 친구 모두가 피곤한 일상 속에서 지쳐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처음엔 인수봉 등반을 갈까 고심했으나 클라이머들로 붐비는 주말의 바윗길을 이번 주 만큼은 피하고 싶었다. 우리 친구들만의 호젓한 등반을 즐길 수 있는 곳을 생각하던 중 산안개 암장이 떠올랐다. 작은 계곡을 따라서 도정봉 바로 아래까지 올라가는 오솔길도 한적하기 그지 없는 곳이다. 우리가 암장에 도착했을 때엔 예상대로 아무도 없었다. 소나무 그늘 아래에 아지트를 구축하고 시원한 골바람 맞으며 간식을 먹는 시간에 느끼는 행복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고요한 산속에서 우리들 감성에 맞는 노래를 들으며 후식으로 냉커피를 마시니 세상에서 최고로 좋은 카페가 바로 이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일상에 찌든 심신을 치유하기에 충분히 좋은 자연 환경 속에 우리가 있는 것이다.       


등반 장비를 착용하고 벌써 한여름 같은 뙤약볕이 내리쬐는 바위 표면에 붙어본다. 슬랩등반 연습 장소로 이만한 곳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다양한 난이도의 루트가 개척되어 있는 산안개 암장이다. 우선 몸풀이로 30미터 길이의 5.8급 슬랩에 줄을 걸어 놓고 톱로핑 방식으로 바위에 적응하는 시간을 갖는다. 다음으로 난이도  5.10a의 슬랩에서 다시 한 번 내가 선등으로 로프를 설치하고 톱로핑 방식으로 크럭스를 돌파하는 자세를 연습해본다. 등반자는 뜨거운 태양 속에 온몸을 완전히 노출시켜야 하지만 간간히 불어주는 산바람이 시원해서 그런대로 괜찮다. 빌레이 보는 위치는 모두 평평하고 시원한 나무 그늘이어서 더이상 바랄 게 없는 등반 환경이다.


마지막 세션은 멀티피치 등반과 인공등반을 동시에 연습하기로 한다. 셋째 마디에 인공등반 코스가 있는 루트인 '저 높은 곳을 향하여'를 내가 선등하고, 대섭이가 쎄컨, 은경이가 라스트를 맡는 순서로 등반한다. 인공등반 코스인 3피치는 돌출된 바위의 우측 사면을 볼트따기 방식으로 진행해야 하는 곳이다. 거의 경험해보지 않은 인공등반 동작들이 낯선 까닭인지 두 번째 볼트에 가까스로 클립한 후, 더이상의 인공등반 방식은 포기한다. 아직은 인공등반이 모든 면에서 서툴다는 것을 인정할 수 밖에 없다. 대신 날등에 올라서서 그리 쉽지 않은 슬랩등반 후에 확보점에 안착한다. 예상보다 까다로웠던 인공등반 기술은 앞으로 좀 더 깊이 생각해보고 꾸준히 연마해야 할 것이다.


하강은 60 미터 자일 두 동으로 세 피치를 두 번에 나누어서 진행한다. 산안개 암장 벽의 특성상 우선 셋째 피치에서 30 미터 하강하고, 둘째 피치 확보점에서 60 미터를 단번에 하강하는 것이 효율적이고 안전하다. 하강 포인트에서 바라보는 맞은편의 북한산과 도봉산을 잇는 하늘금이 그 어느 때보다 선명하다. 클라이머들의 요람인 인수봉과 선인봉도 확연히 보인다. 토요일인 만큼 오늘의 인수와 선인의 바윗길은 많이 붐볐을 것이다. 그 반대편에 자리한 이곳 산안개 암장의 중앙벽은 오늘 하루 온전히 우리들만의 놀이터였다. 여러 명으로 구성된 산악회팀이 우리와는 동떨어진 좌측 지역에서 독립적으로 등반하는 모습이 보였을 뿐이다. 하산해서 먹은 시원하고 담백했던 밀면까지 모든 것이 만족스러웠던 하루였다. 이제는 자연암벽에서 안전하게 즐길 수 있는 준비가 어느 정도 갖춰진 듯하다. 앞으로 이어질 등반에서도 항상 의미있는 즐거움이 가득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 인공등반 기술도 가끔은 연습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 몸 풀기 좋은 쉬운 코스에 줄을 걸고 하강...


▲ 대섭이가 톱로핑 방식으로 등반 중... 작열하는 태양 속에서...


▲ 이제 5.10a 난이도의 중앙 루트를 오른다... 가오리 등을 타고 오르는 듯한 모습이... 


▲ 강렬한 태양빛 때문에 오히려 홀드가 잘 보이지 않기도... 집중해야 하는 등반 중에는 더위를 느끼지 못한다...


▲ 무사히 확보점에 도착하여 로프를 설치하고 하강하여 크럭스에서 다시 한번 자세를 연습하고...


▲ 루트 명칭이 재밌다.


▲ 오붓하게 슬랩등반을 연습하기엔 최적의 장소라는 생각...


▲ 대섭이도 뙤약볕 속에서 열클하고...


▲ 발이 아플 수 밖에 없는 슬랩용 암벽화들... 좌로부터 나, 은경, 대섭이의 소유물...


▲ 인공등반을 경험해보기 위해 선택한 루트...


▲ 이제 슬랩 구간은 즐겁게 오르고... 


▲ 둘째 마디를 오르는 대섭... 하강을 위한 60 미터 자일을 등에 둘러메고...


▲ 드디어 인공등반이 시작되는 벽 앞에서 루트 파인딩하고 동작을 그려보는데...


▲ 첫 볼트에 클립하고 올라서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 둘째 볼트가 멀게 느껴진다... 갑자기 키를 키울 수도 없고... 가제트 팔이 필요해...ㅎㅎ..


▲ 둘째 볼트는 패닉을 사용해 가까스로 클립했지만... 그 다음이 산너머 산이라서... 인공등반은 포기하고 날등으로...


▲ 날등에 올라서는 것도 만만치 않다...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


▲ 약간 어렵게 느껴지는 구간도 있었지만... 무사히 확보점에 안착... 간만에 갈증을 느낄 정도의 짜릿함을 맛보는 순간...


▲ 대섭이가 쎄컨으로 등반한다...


▲ 런너줄을 이용해서 날등으로 올라서고...


▲ 정상의 확보점에서 보이는 아기돼지 모양의 바위와 파아란 하늘이 좋다...


▲ 다음엔 인공등반을 연마해서 멋지게 올라봐야 할 루트의 확보점에서...


▲ 하강은 30미터 두 줄 하강을 먼저... 피치 하강은 항상 다음 확보점 찾기에 조심해야 한다...


▲ 나도 자일을 둘러메고 하강한다... 그 다음은 60 미터 외줄 하강 두 번과 두줄 하강 한 번으로 등반 종료...  


▲ 맞은편 북한산 인수봉과 도봉산 선인봉을 품은 하늘금이 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