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날과 토요일이 겹쳤다. 대체 공휴일이 생겨서 월요일까지 쉴 수 있는 3일 동안의 연휴가 시작되는 날이다. 자연 암벽에서 올해 첫 멀티피치 등반지로 북한산 노적봉의 반도길을 택한다. 아침 8시에 우이동을 출발하여 도선사와 용암문을 거쳐 노적봉 우벽 아래의 반도길 출발점에 도착하니 10시 20분 경이다. 신록이 짙어지고 풍성해지는 숲길 주변엔 연달래가 한창이고, 보기 드문 각시붓꽃과 용담과의 구슬봉이꽃도 보인다. 산길이 좋아서 그런지 무거운 배낭을 메고 오르는 힘든 어프로치 과정마저 즐겁다.
반도길은 노적봉의 바윗길 중에서 가장 고전적인 루트라 할 수 있다. 슬랩으로 시작해서 크랙과 침니를 따라 정상에 오르는 과정은 가장 자연스런 등반 경로를 보여준다. 인공적인 볼트를 최소한으로 사용하고 크랙에 캠을 끼워서 중간 확보점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흔적을 남기지 않는 클린 등반 사조에도 부합하는 루트라는 점 때문에 나는 특별히 이 반도길을 좋아한다. 등반 난이도는 그리 높지 않지만 집중력을 요하는 구간들이 많고 다양한 자세를 취할 수 있는 포인트들로 구성되어 있어서 시즌 초반의 몸풀기 등반지로도 최적의 루트가 아닐까 생각한다.
오랜만에 4명이 함께 줄을 묶었다. 내가 대섭이의 빌레이를 받으며 첫 피치를 선등으로 출발한다. 60미터 자일 두 동으로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쎄컨을 맡은 대섭이는 고정된 자일에 슈퍼베이직을 사용하여 등반하고, 은경이와 기송이 형은 끝자를 묶고 오르는 등반시스템을 구사한다. 멋진 소나무가 있는 3피치까지를 두 번으로 나누어 재빠르게 오른다. 우리 4명은 모두 같은 등산학교 출신들이기에 등반시스템이나 장비 사용에 관한 우려가 거의 없다. 항상 마음 편한 등반을 즐길 수 있는 환상의 자일파티라고 자부할 수 있는 것이다.
대침니로 접어드는 4피치부터는 차례 차례 한 사람씩 이어서 오른다. 확보점이 협소하여 여러명이 함께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침니는 홀드가 양호하더라도 이상하게 오를 때마다 숨이 찬다. 5피치 대침니를 빠져나와서 스태밍과 레이백 자세를 번갈아 써야 하는 6피치 등반을 마치면 코바위 정상 높이의 비교적 넓은 확보점에 도착한다. 바람이 세찬 날씨여서 처음부터 바람막이 자켓을 입고 등반해야 했지만 반도길 루트는 바람이 세찬 노적봉 중상단 높이에 있는 코바위가 자연스레 방풍벽 역할을 해주는 덕택에 우리들의 등반은 즐거울 수 있었다. 7피치부터 9피치까지는 써제이길로 올라온 등반팀과 진행 방향이 겹치기는 했지만 확보점을 따로 쓸 수 있어서 정체 현상을 겪지 않았던 것도 운이 좋았다고 할 수 있다. 이래저래 모든 것이 즐겁고 유쾌한 반도길 등반이었다.
'암빙벽등반'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수A길 등반 - 2018년 6월 9일 (0) | 2018.06.09 |
---|---|
수락산 산안개 암장 - 2018년 6월 2일 (0) | 2018.06.03 |
불암산 산머루산다래 암장 - 2018년 4월 28일 (0) | 2018.04.28 |
수락산 내원암장 - 2018년 4월 21일 (0) | 2018.04.21 |
실내암장에서 - 2018년 4월 6일 (0) | 2018.04.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