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다운 따스한 햇살이 내리쬐는 토요일 아침이다. 평소 같으면 주말 산행을 즐기러 갔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장인어른 팔순잔치가 있는 날이다. 자식들이 모두 서울에 사는 관계로 장인 장모님 두 분이 상경하셔서 우리집에 머물고 계신다. 저녁시간에 강남의 한 음식점에서 가족들끼리 조촐한 팔순 기념 잔치를 치르기로 한 것이다. 산에 가지 못하는 마음을 달래려고 아침 시간에 집을 나와 둘레길을 산책한다.
새로운 교과목에 대한 강의 준비와 여러모로 분주한 학기초를 감당해내느라 몸과 마음이 모두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요즘이다. 해야할 일을 하면서 빡빡하게 살아가는 건 분명 좋은 일이다. 단순한 생활을 즐기는 내게도 일정부분 만족감을 주는 최근의 일상이다. 그러나 무심코 짜여진 일정을 헤쳐나가다 보면 문득 마음까지 여유를 잃어버리고 살고 있지는 않나 하는 반성을 하게 된다. 균형 갖춘 삶이란 일, 사랑, 놀이, 연대, 이 네 가지가 개성 있게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그런 일상이어야 잘 살고 있다는 행복감이 드는 것이다. 이러한 묵상을 하면서 천천히 걷는 발걸음 속에 활짝 핀 개나리가 눈에 들어온다. 주위를 둘러볼 여유도 없이 훌쩍 지나가버린 3월이다. 이삼일 전 캠퍼스에 핀 개나리와 목련 꽃봉오리도 별 감흥 없이 지나치고 말았다.
화창한 날씨에 노오란 개나리꽃 한무리가 둘레길 주변을 장식하고 있으니 마음까지 밝아진다. 암장에서 간단히 몸을 풀고 올 요량으로 둘레길을 따라 걷던 중이었다. 아직까지 진달래꽃은 보이지 않는다. 북한산둘레길 맞은편에 자리한 동산인 오패산을 배회하다가 암장에 가기로 마음 먹고 발걸음을 옮긴다. 예전엔 드넓은 들판이었을 도심의 주택가를 통과하여 오패산으로 향한다. 둘레길에서 내려와 우이로와 도봉로라는 큰 자동차도로 두 개를 가로지르는 경로이다. 오패산 산책로에 들어서자마자 진달래꽃이 반겨준다. 개나리꽃도 한층 더 화려하게 피었다. 산책로 이곳 저곳을 기웃거리면서 봄내음을 맡아본다. 주변 곳곳이 화사한 진달래꽃으로 물들어 있다. 산수유꽃이 만개하고 돌단풍꽃과 제비꽃도 봄햇살을 마음껏 누리고 있다.
일부러 먼 길을 돌아서 암장으로 걸어가는 과정이 봄나들이를 겸한 행복한 여정이다. 파스텔톤의 물감으로 화사한 점들을 찍어 놓은 듯한 진달래꽃은 다가올 화려한 숲속의 향연을 미리 축하하는 불꽃놀이의 잔영처럼 보인다. 아직은 연두빛 새순이 풍성하지 않은 숲속에 분홍빛 진달래꽃이 듬성듬성 피어 있는 완만한 오솔길을 걷는 기분이 편안하다. 치유의 걷기란 바로 이런 것이란 생각이 든다. 집 가까운 곳에 숲이 있어 좋고, 봄이 찾아와 그 숲을 아름답게 변화시켜 주니 감사하다. 기분 전환을 제대로 하여 마음이 가벼워진 덕택으로 허리 상태가 좋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평소보다 더욱 즐겁게 클라이밍을 만끽할 수 있었다. 오랜만에 처가 식구들이 한 자리에 모인 장인어른 팔순 잔치 또한 맛깔스런 음식과 함께 기분 좋은 분위기 속에 치를 수 있었다. 추웠던 겨울이 비껴나고 따뜻한 봄이 오고 있으니 모든 것이 잘 풀릴 듯한 예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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