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에 전국적으로 봄비가 내린다는 일기예보를 듣고 주말 계획을 변경한다. 금요일 오전에 예정된 일을 처리하고 나머지 할 일은 비오는 토요일에 출근해서 하기로 마음 먹고 연구실을 벗어난다. 아직은 쾌청한 하늘 아래에서 학교 주변 산자락에 한창 물이 올라있는 산벚꽃의 향연을 즐겨보기로 한다. 북악스카이웨이를 따라 조성되어 있는 성북동길과 종로구 산책로를 중심으로 하여 흩어져 있는 오솔길을 천천히 배회하듯 걷는다. 주변에 있는 사찰들을 연결한 산사길이 정겹다.
진달래와 산벚꽃이 만개하고 연초록의 새순이 돋아나고 있는 숲속은 그야말로 봄이 한창이다. 커다란 산벚꽃 나무들이 유난히 많은 숲이다. 해마다 이맘 때면 국민대 캠퍼스 맞은편 언덕에 있는 이 숲은 파스텔톤의 화려한 꽃잔치를 베풀어 준다. 생명의 봄을 축하해 주는 듯한 숲의 향연은 거대한 수채화 그림처럼 아름답다. 봄숲을 천천히 음미하며 산사길을 걷는 기분이 상쾌하다. 북악스카이웨이 도로 옆으로 나란히 진행하는 성북동길을 따라 가다가 북악하늘길로 올라간다. 청와대 뒷산인 북악산으로 이어지는 능선길인 하늘길의 호경암에서 다시 종로구길로 내려온다. 팔각정 휴게소를 지나서 인왕산 방향으로 진행하다가 백사실계곡으로 내려가는 갈림길을 만난다.
언젠가 한번은 와보고 싶었던 백사실계곡을 통과하여 세검정으로 하산하는 루트를 따르기로 마음 먹는다. 백사실계곡과 만난 후에 계곡 상단부에 위치한 능금마을을 구경하기로 하고 시냇물을 거슬러 올라간다. 지리산 어느 산골짜기 마을을 지나치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깊은 산촌의 정겨움이 가득 전해오는 능금마을 풍경이 이색적이다. 개나리와 조팝나무꽃이 무성하게 피어 있는 맑은 시냇물가를 걷는 기분이 편안하다. 서울 속의 농촌인 능금마을을 구경하고 다시 계곡을 따라 내려와 본격적으로 백사실 계곡을 탐방한다. 부암동 주택가에서 시작되는 진입로 초입부터 '백석동천(白石洞天)' 글자가 새겨진 바위와 별서터까지 천천히 돌아본다.
백석동천은 ‘백악(북악산)의 아름다운 산천으로 둘러싸인 경치 좋은 곳’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조선 중기의 명신이자 권율 장군의 사위였던 백사 이항복의 별장이 있었던 곳이라 하여 인근 주민들은 백석동천을 백사실계곡으로 불렀다고 전해진다. 초등학교 시절에 내가 처음으로 재미 있게 읽었던 위인전이 바로 <백사 이항복>이다. 물론 이항복과 이덕형의 익살스런 일화를 다룬 <오성과 한음> 또한 잘 기억하고 있다. 현재 별서터에는 연못과 정자의 초석이 그대로 남아 있다. 연못을 내려다볼 수 있는 위치에는 집터의 돌계단과 초석이 남아 있다. 연못의 물은 말라 있으나 주위의 돌벤치에 앉아서 차 한 잔 마시는 기분이 일품이다. 풍류를 즐기던 조선시대 당시의 선비가 된 느낌이다. 백사실계곡이 끝나고 주택가가 시작되는 곳에는 현통사가 자리잡고 있다.
현통사에서 주택가를 통과하여 세검정을 지나친다. 상명대 앞 삼거리에서 홍지문 방향으로 걷다가 인왕산 들머리를 찾아 다시 등산을 시작한다. 성벽을 따라 이어진 등산로를 통하여 인왕산 정상을 향해 오른다. 능선길 양쪽은 모두 눈에 익숙한 곳이다. 우측으로는 가끔 자가용 차로 오가는 내부순환로의 끊임 없는 자동차 행렬이 발 아래로 보이고, 좌측으로는 부암동과 자하문 너머의 경복궁과 광화문 일대의 서울 시가지가 펼쳐진다. 시야는 한껏 좋아서 한강도 잘 보이고 잠실벌에 우뚝 선 롯데빌딩도 또렷하다. 기차바위를 지나서 인왕산 정상을 찍고 사직공원으로 하산하여 다시 도심 속으로 돌아온다. 평일인 금요일 오후 시간에 서울 속의 한적한 봄숲을 마음껏 탐방했다는 뿌듯함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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