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트레킹

어남이고개-관음봉-돌핀샘-천마산-호평동 (2018년 3월 17일)

빌레이 2018. 3. 18. 06:22

개강과 함께 빡빡해진 일정으로 심신이 많이 지쳐 있는 토요일 아침이다. 맘 같아선 그냥 집 안에서 쉬고 싶지만 일단은 가장 힘들다는 문지방을 넘어 보기로 한다. 당고개역에서 남양주시로 넘어가는 10번 시외버스에 몸을 맡긴다. 행여나 봄꽃 소식을 접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천마산 주변의 산길을 걷기로 마음 먹는다. 진건고등학교 다음 정류장에서 하차하여 장례식장 뒷편의 능선길에 올라선다. 어남이고개에서 시작되어 관음봉으로 이어지는 산길임을 뚜렷히 알려주는 이정표를 발견한다. 주변의 벤치에 앉아 따뜻한 라떼 한잔을 마시고 본격적인 산행 채비를 갖춘다. 능선길 바로 왼편으로는 남양주CC에서 주말 골프를 즐기는 모습이 생생하게 보인다.


관음봉 정상까지 이어지는 3 킬로미터의 오솔길은 편안히 걷기에 더없이 좋은 길이다. 산책로 같이 부드러운 곡선의 흙길이 이어지는 이러한 숲길에 인적이 드물다는 것 또한 축복이다. 등로 중간에 쉴 수 있는 벤치도 여럿 있어서 더욱 여유롭게 오를 수 있다. 자작자나무 군락지를 지나서 관음봉 정상에 오르니 따쓰한 봄볕이 아낌없이 비춰준다. 정상석 앞의 벤치에 앉아 컵라면과 빵으로 점심을 먹는 시간이 그야말로 "소확행"이다. 작지만 확실한 행복감을 만끽하고 사능역에서 된봉과 관음봉을 지나 천마산으로 이어지는 다산길 13코스를 따라서 걷는다. 이 길 또한 완만하게 이어지는 부드러운 흙길의 연속이다. 내리막길이 끝나갈 즈음의 양지바른 곳에서는 노오란 꽃망울을 터트린 생강나무를 만난다.


호평동에서 올라오는 시멘트길 임도가 끝나는 지점의 사거리에서 천마산 정상으로 오르는 주등산로와 오남저수지로 하산하는 길 사이의 낙엽송 군락으로 들어선다. 아직까지 가보지 않았던 돌핀샘을 거쳐서 정상으로 이어지는 코스를 가고 싶은 생각으로 진즉부터 염두에 두고 있던 길이다. 수직으로 뻗은 낙엽송 숲을 지나서 이어지는 완만한 산길을 따라 올라간다. 야생화를 촬영하기 위한 카메라 장비를 갖춘 일행 두 분과 마주친다. 들꽃을 좀 보셨냐는 나의 질문에 시큰둥한 표정으로 너도바람꽃만 보았다고 하신다. 아직은 좀 이른 시기라고 여겨서 나도 별 기대감 없이 DSLR 카메라를 챙겨오지 않은 까닭에 역시나 예상대로구나 하고 생각한다.


하지만 조그만 지능선을 넘어서자 쪼그리고 앉아서 나무 밑동에 카메라를 들이대고 있는 사람을 발견한다. 그 분의 촬영이 끝날 때까지 기다린 후에 구경하러 가보니 뜻밖에 멋진 녀석이 자리잡고 있다. 싱그런 복수초 한그루와 너도바람꽃 두 그루가 앙증맞게 피어 있다. 자세히 살펴보니 주변이 너도바람꽃 군락지이다. 핸드폰을 꺼내어 몇 장을 찍어보지만 촛점이 잘 잡히지 않는다. 그래도 여러 컷을 찍다보면 한두 개는 걸리겠지 하는 심정으로 부지런히 촬영해본다. 쭈그리고 앉아서 들꽃 사진을 찍는 게 생각보다 힘겨웠는지 급 피곤함이 몰려온다. 넓은 계곡 형태의 오목한 지형엔 고로쇠 나무도 많아서 수액을 채취하기 위한 비닐관들이 사방에 널려있다. 아무리 몸에 좋은 고로쇠물이라지만 보기도 흉하고 나무에도 좋을 것 없는 이러한 채취 행위는 금지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복수초와 너도바람꽃을 뒤로하고 돌핀샘을 향해 오른다. 샘이 가까워지자 주변은 온통 고드름 천지다. 이끼 가득한 바위 절벽에 크리스탈처럼 영롱한 고드름들이 장관을 이루고 있다. 정상 가까이 위치한 샘이라고는 믿기지 않을만큼 돌핀샘의 수량은 풍부하다. 한모금 들이킨 물맛도 신선함 가득이다. 약물바위샘이라 적힌 팻말처럼 몸에 좋은 성분이 많을 듯한 기분이다. 돌핀샘을 지나 조금 더 오르면 하늘금을 이루는 천마지맥길과 만나고 정상으로 이어진 절벽길엔 나무 계단이 새롭게 설치되어 있다. 천마산 정상의 익숙한 풍경을 뒤로하고 호평동 방향으로 하산하는 발걸음이 가볍다. 즐거운 기분으로 7시간 넘게 천마산과 주변의 산속에 머물면서 맑은 공기 가득 마시며 그간 쌓였던 도시의 피로를 날려버릴 수 있는 산행이었다. 오래 걸었음에도 등산 시작했던 아침나절보다 산행을 마쳤을 때에 오히려 피곤함을 덜 느낀 건 분명 산이 주는 치유의 힘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