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정선의 한 리조트에서 열린 학회에 참석하기 위한 출장길이었다. 점심 시간 후에 잠시 짬을 내어 검룡소 산책을 다녀왔다. 석사과정에 재학 중인 제자가 동행했다. 한강 발원지라는 검룡소는 예전부터 한 번은 가보고 싶었던 곳이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강인 한강과 낙동강의 발원지가 모두 강원도 태백에 있다는 것도 이채롭다. 낙동강 발원지인 황지는 태백 시내에 있어서 몇 번 지나친 적은 있지만 검룡소는 이번이 처음이다. 주차장에서 1.5 킬로미터 거리의 눈길을 걸어서 가는 진입로가 한적하고 고즈넉한 숲길이었다. 앙상한 가지를 모두 드러내고 있는 낙엽송 군락지를 통과해서 산골짜기의 겨울 서정이 깃들어 있는 눈 덮인 산길을 걷는 기분이 상쾌했다. 검룡소와 황지를 잇는 양대강 발원지 탐방길이 조성되어 있다는 안내판의 정보도 반가웠다. 언젠가는 이 길을 걸어볼 기회가 오기를 바래본다.
한겨울에도 얼지 않고 암반으로 이루어진 연못에서 솟아난 맑은 물이 이끼 낀 계곡을 졸졸졸 흘러내리는 모습 속에는 신선함이 가득하다. 눈 쌓인 계곡 사이에서 존재감을 과시하며 바위 표면에 아름다운 곡선의 물길을 새기며 흘러내리는 검룡소의 기상은 민족의 젖줄인 한강의 시작점이라는 상징성을 담기에 부족함이 없다. 수많은 골짜기에서 흘러드는 물줄기가 만나서 강을 이루는 모습에서 발원지를 정하는 것은 다분히 인위적인 잣대일 것이다. 기실 어떤 강의 발원지에 대한 정의는 간단하다. 강이 바다와 만나는 지점에서 가장 먼 거리에 위치한 물길의 시작점을 발원지라고 한다. 소설가 한승원 선생은 영산강에 관한 글 속에서 큰 강의 물줄기를 지도에서 보면 겨울철에 이파리를 모두 떨궈낸 노거수를 닮아 있다고 표현하셨다. 가장 먼 길을 여행한 물방울이라면 그 강의 다양한 속삭임과 지난한 역사를 더 많이 품고 있을 것이라는 의미가 발원지에는 담겨 있을 것이다.
정선에서 검룡소로 가는 길에 나오는 고갯마루인 삼수령의 상징성을 곱씹어 보는 것도 재미가 있다. 백두대간에 속하기도 하는 삼수령은 이름 그대로 하늘에서 떨어진 물방울이 세 가지 다른 강으로 흘러드는 곳이다. 삼수령에 떨어진 물방울 중에서 어떤 녀석은 오십천으로 흘러들어가 동해와 만나고, 어떤 물방울은 낙동강을 타고 남해로 합류하며, 또 다른 물방울은 검룡소에서 발원한 물길을 만나서 한강을 따라 서해로 접어든다. 거의 같은 장소에 떨어진 물방울의 운명이 극명하게 갈리는 모습을 상상해볼 수 있는 곳이다. 삼수령에 서서 어릴적 같은 마을에서 태어난 고향 친구들이 전혀 다른 삶의 궤적을 그리며 다양한 삶을 헤쳐나가는 우리네 인생 행로가 물방울의 자취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동해, 남해, 서해로 흘러들어 강의 생명을 마감하고 바다의 일원이 되는 물방울의 운명 또한 이생을 마감하고 다음 생을 기약하는 인생길과 다를 바 없는 듯하다.
밤에는 숙소에서 대학원 제자들이 나의 깜짝 생일 파티를 열어주었다. 오십이 넘은 이후로는 생일이 되어도 무덤덤하기 마련인데 주변에서 챙겨주니 고마운 마음과 쑥스러움이 교차한다. 장래가 촉망되는 젊은 제자들과 함께 신나게 웃고 떠들며 대화 나누는 시간 속에서 새로운 활기가 느껴진다. 그들의 미래에 희망을 줄 수 있는 좋은 교수가 되어야 한다는 지극히 당연한 소명을 다시금 되새기게 되는 시간이었다.
▲ 검룡소 가는 길 입구의 표지석은 우람하다.
▲ 주차장에서 이 다리를 건너서 산길을 오르면 삼수령 근처의 매봉산을 거쳐 황지에 이르는 양대강 발원지 탐방로를 걸을 수 있다.
▲ 검룡소 가는 길에는 낙엽송 군락지가 자주 나온다.
▲ 검룡소에서 흘러나오는 물은 이 계곡을 따라서 한강에 이를 것이다.
▲ 주차장에서 1.5km를 걸으면 검룡소가 나온다.
▲ 검룡소에 가까워지면서 진입로와 달리 계곡의 눈은 녹아 있는 걸 발견할 수 있었다.
▲ 대덕산으로 올라가는 탐방로는 동절기엔 금지된다.
▲ 금대봉 탐방안내소에서 좌측길로 가면 검룡소가 나온다.
▲ 양대강 발원지 탐방길 안내판을 보면서 언젠가는 걸어볼 것을 기대하게 된다.
▲ 다시 마음이 편안해지는 낙엽송 군락지를 통과한다.
▲ 겨울 속의 봄을 느끼는 듯한 물소리가 들리면 검룡소가 코앞이다.
▲ 이끼계곡을 흐르는 물줄기의 신선함이 전해진다.
▲ 검룡소의 하루 용출량은 2천 톤에 이르고 수온은 사계절 9도이며, 5백여 킬로미터를 흘러가서 서해와 만난다는...
▲ 검룡소의 기념석에 새겨진 문구. 음각에 눈이 들어찬 모습이 이채롭다.
▲ 핸폰 사진이라서 잘 표현되지는 않지만 이끼 낀 경사면을 흘러내리는 물줄기의 생명력이 전해진다.
▲ 암반으로 둘러싸인 이 연못이 검룡소이다.
▲ 검룡소를 보존하기 위한 데크가 잘 설치되어 있다.
▲ 전망대 데크에서 검룡소를 내려다 볼 수 있다.
▲ 바위 표면을 깍아내리며 흘러내리는 물줄기가 제법 힘차다.
▲ 검룡소를 보고 되돌아 오는 길에 본 겨울산 풍경.
▲ 산길은 올랐던 길을 다시 내려와도 보는 풍광이 달라서 좋다.
▲ 제자인 원태가 찍어준 인증샷.
▲ 삼수령 기념비석 옆에 위치한 삼수정. 주변 소나무숲이 아름답다.
▲ 삼수령 기념 조형물.
▲ 삼수령은 백두대간에 속한다.
▲ 삼수령엔 휴게소가 있고 매봉산 풍력발전단지로 올라가는 길도 있다.
▲ 밤에는 숙소에서 제자들이 나의 생일을 축하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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