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트레킹

용문산 함왕봉에서 풍성한 첫눈을 맞이하다(2016년 11월 26일)

빌레이 2016. 11. 26. 20:55

새벽길을 달려 양평으로 향한다. 시간이 지나도 여명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는다. 흐린 하늘이다. 두물머리 위로 지나는 다리를 건너간다. 남한강변에서 물안개가 연기처럼 피어오른다. 까닭모를 아련한 향수를 자극한다. 이곳을 지나칠 때면 가끔 들르곤 하는 국수리 콩나물국밥집에서 아침식사를 해결하기로 한다. 이른 시각인데도 식당엔 빈자리를 찾기 힘들다. 부지런히 하루를 시작하는 서민들의 모습 속에서 활기찬 기운이 샘솟는 듯하다. 속이 따뜻해지는 국밥 한그릇을 뚝딱 비우고 다시 차를 달려 양평역에서 백운봉으로 이어지는 가장 가까운 동네인 백안리로 들어선다. 용문산 자연휴양림 입구인 약수사 앞에 주차하고 두리봉을 오르는 산길로 접어든다. 친구들과 함께 왔던 어느 해 봄날 양지바른 언덕에 연달래와 각시붓꽃이 소담스레 피어있던 능선이 인상적이었던 그 길을 오랜만에 다시 올라보는 것이다.


다소 가파른 등로를 천천히 걸어서 오른다. 처음으로 시야가 열리는 전망 바위에서 잠시 숨을 돌린다. 오똑한 백운봉의 자태가 또렷하게 보이는 바위턱에 올라서서 시원한 풍광을 즐겨본다. 제법 큰 돌탑이 앉아 있는 두리봉 정상에서는 양평시가지와 남한강의 물줄기가 손에 잡힐듯 가까이 내려다보인다. 해가 없는 흐린 날씨가 아쉽기는 하지만 아침의 신선함과 탁 트인 조망을 감상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백운봉으로 이어지는 등로에서 봄날의 각시붓꽃 군락지를 가늠해보면서 여유로운 발걸음을 옮긴다. 헬기장이 눈앞에 보이는 곳에 설치되어 있는 평상에 돗자리를 펼치고 앉아서 한참을 쉬어간다. 따뜻한 허브차 한 잔과 비스켓을 곁들인 간식이 만족스럽다.


백년약수에서 올라오는 산길과 만나는 지점에 있는 헬기장에서는 백운봉이 병풍처럼 눈앞에 펼쳐진다. 정상으로 향하는 가파른 등로의 전모가 고스란히 보이는 것이 버거운 오르막길을 예고하고 있는 듯하다. 눈에 보이는 것에 개의치 않고 뚜벅뚜벅 한걸음씩 차분히 걸어가기로 한다. 어느새 헬기장이 아래로 보이는 중간 전망대에 이른다. 눈이 가장 게으른 것이라는 격언을 실감한다. 가파르지만 잘 정비된 길을 따라 조금 더 오르니 백운봉 정상이다. 경기도의 마터호른이라는 별칭답게 사방팔방으로 거칠 것 없는 최고의 조망을 선사해주는 백운봉이다. 오랜만에 와본 정상은 두 개의 데크가 추가로 설치되어 있다. 백두산 천지에서 통일의 염원을 담아 가져왔다는 흙과 돌을 기념해서 세워진 통일암과 우람한 정상석의 자태도 여전하다.


백운봉 정상에서 사방으로 펼쳐진 시원스런 조망을 눈에 담고 있는데 싸라기 같은 눈이 떨어진다. 아무래도 첫눈 산행이 될 듯한 예감에 용문산 정상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걸어보기로 한다. 조금씩 내리던 눈발은 서서히 굵어지더니 함왕봉 근처에서 금새 함박눈으로 변한다. 연수리 방향으로의 전망이 트인 소나무 그늘에서 풍성하게 내리는 함박눈을 구경한다. 바람 한 점 불지 않고 포근한 기운마저 감도는 그곳에서 간이의자에 걸터앉아 점심을 먹는다. 한적하고 깊은 산중의 골짜기 위로 하늘에서 소리없이 떨어지는 함박눈을 바라보고 있는데 괜스레 마음이 설레인다. 산에 다니면서 드물게 맛보는 축복의 순간인 것이다. 눈발이 더욱 굵어져서 주위가 온통 하얀 세상으로 바뀌고 있던 함왕봉 정상에서 한참 동안 하늘에서 화려하게 쏟아져내리는 축복의 떡가루를 마음껏 즐겨본다. 


구름과 함박눈으로 주변의 시야가 적당히 가려져 외로운 섬처럼 떠있는 봉우리 위에서 한없는 낭만에 젖어들고 싶은 마음을 진정시킨다. 이제는 함왕봉에서 오던 길 방향으로 발걸음을 되돌리기로 한다. 생각 같아선 장군봉을 지나 용문산 정상까지 눈산행을 이어가고 싶지만 미끄러운 하산길이 은근히 걱정된 까닭이다. 사나사로 내려가는 삼거리를 지나서 나타나는 형제우물 이정표를 보고 능선길에서 벗어나 소로로 접어든다. 백운봉 정상을 우측에 두고 산허리를 돌아나가는 형제우물 방향의 오솔길은 신설이 내린 이후로 누구도 걸어간 흔적이 없는 순백의 길이다. 가파른 경사면의 좁다란 오솔길에서 길을 잃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미끄러운 눈길을 조심스레 나아간다. 형제우물의 물은 고여있고 그 옆에서 싱싱한 이끼 사이로 흘러내리는 석간수가 앙증맞다. 약수 한모금을 마시고 다시금 천천히 눈길을 헤치며 산허리길을 계속 돌아나간다.


형제우물에서 이어지는 오솔길에서 벗어나 오전에 걸었던 주등산로에 접어드니 한결 걷기가 수월해진다. 눈이 내린 이후로 사람들의 발자욱이 뚜렷한 흔적을 길 위에 남겨 놓은 덕택에 미끄럼도 덜하고 마음도 편안해진다. 헬기장에서 백년약수 방향으로 내려가는 코스를 택한다. 백년약수 옆의 정자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쉬어간다. 조용한 산속의 약수터에서 첫눈을 즐기며 차 한잔 마실 수 있는 것도 산꾼이 누릴 수 있는 작은 호사라는 생각이 든다. 계속 내리는 눈이 쌓여 미끄러운 하산길을 조심스레 걸어내려와 여름날에 탁족을 즐기던 산길 끝자락에 도착한다. 계곡 양쪽의 절벽과 아담한 폭포가 어우러져 경관이 뛰어난 곳이다. 암벽등반과 볼더링을 즐길 수 있는 곳으로도 손색이 없을 듯한 바위를 구경하면서 내려온다. 자연휴양림 내부의 깨끗한 포장도로를 통과하여 기다리고 있던 애마에 타는 것으로 산행을 마무리 한다. 예상치 않았던 첫눈 산행이었다. 깊은 산속에서 맞이한 뜻밖의 함박눈이라서 더욱 반가웠던 첫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