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는 끝나겠지 하는 기대마저도 포기하게 만드는 가마솥 더위의 연속이다. 식을줄 모르는 대지에 소나기라도 내리면 좋으련만 찜통 더위는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계획되어 있던 노적봉 등반을 취소하고 대신 포천의 왕방산과 깊이울 계곡을 다녀오기로 한다. 수유역에서 아침 7시 30분 발 경기고속 직행 버스에 오른다. 포천시 버스터미널에 도착하여 마트에서 몇 가지 먹을거리를 산 후에 포천성당을 통해 숲속으로 들어간다. 무럭고개에서 올라오는 능선길과 만나는 지점까지의 오르막이 힘겹다.
깊이울 계곡으로 내려가는 이정표가 있는 곳의 바람이 시원하여 한참을 쉬어간다. 포천시 방향에서 부는 바람과 깊이울 계곡에서 불어오는 바람의 질이 확연히 다르다. 계곡의 신선함이 배어 있는 듯한 바람이 시원하여 길 중간의 평평한 그늘에서 친구들과 포도주 한 잔씩을 나눠 마신다. 지난 유럽 출장 때 사온 독일 라인강 특산품이라는 아스바흐 포도주는 알콜도수가 40도에 이른다. 보냉병에 얼음을 가득 채우고 포도주를 부은 것을 여름날의 산에서 친구들과 함께 마시는 기분이 으뜸이다. 포도주 기운에 다시 힘을 내어 뙤약볕 속인 왕방산 정상을 찍고 국사봉 방향으로 하산하다가 능선 중간에서 점심을 먹는다.
올 여름 들어서 가장 시원한 바람이 불어주는 능선 위에서 친구가 보냉팩에 준비해온 냉면을 먹고 있으니 지금까지의 모든 더위가 잊혀지는 듯하다. 산에 오래 다녔어도 산 정상부에서 냉면을 먹는 것은 처음이다. 꽁치 통조림을 안주로 해서 얼음 같이 차가운 포도주 몇 잔을 곁들이니 신선놀음이 따로 없다는 생각이 든다. 신선한 바람과 특별한 음식으로 행복했던 점심 시간을 뒤로하고 깊이울 계곡으로 내려간다. 원시림 같이 울창한 숲으로 뒤덮인 계곡을 따라 내려가다가 처음 나오는 물 웅덩이에서 멱을 감는다. 옷을 입은채로 물속으로 뛰어들어 온몸을 담궈본다. 서늘한 냉기를 머금고 있는 계곡물 속에서 오래 버티고 있을 수가 없다.
물놀이로 한참을 보내고 난 후 다시 계곡을 따라 내려오다가 피서객들이 보이기 시작한 곳에서 또다시 쉬어간다. 이번에는 돌멩이로 물수제비도 떠보고 서로가 가리킨 곳을 돌팔매질로 맞추기도 하면서 즐거운 한 때를 보낸다. 계곡물 속의 돌들로 탑을 쌓아서 우리끼리 작품명을 '몸빌레이'라 붙이고 키득거린다. 내가 쌓은 돌탑 모양이 오버행의 암벽에 붙는 사람을 뒤에서 받쳐주는 것처럼 보인다고 하여 친구가 붙인 이름이다. 돌탑 쌓기까지 재미 있게 즐기고 피서객들이 즐비한 캠핑장을 통과해서 내려간다. 강태공들의 전용 놀이터인 깊이울 저수지를 지나서 나오는 가게에서 아이스크림 하나씩을 사먹는다.
가게 아주머니가 알려주신 버스 시간에 늦지않기 위해 마을회관까지 부지런히 걸어서 온 덕택으로 한 시간에 한 대 다니는 마을버스를 타고 포천시내로 돌아올 수 있었다. 포천시 버스터미널에서도 수유역까지 가는 직행 버스가 곧바로 있어서 여러모로 시간을 아낄 수 있었다. 전형적인 육산인 왕방산의 숲길을 트레킹 하고 깊이울 계곡에서 추억어린 물놀이까지 모든 것이 만족스러웠던 산행이었다. 이제 더이상의 피서 산행이 필요하지 않도록 날씨가 시원해지면 좋겠다는 희망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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