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암읍내에서 곧바로 월출산에 오를 수 있는 산성대 코스의 등산로와 둘레길인 기찬묏길이 개방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언젠가 한 번은 가보고 싶었다. 마침 아버지의 제사를 모시기 위해 나주의 고향집에 다녀오는 길에 짬을 낼 수 있었다. 벌써 돌아가신지 9년째가 되는 아버지의 제사 하루 전인 금요일에 내려갔다. 토요일 새벽 5시에 기상하여 간단히 준비하고 아침밥을 챙겨 먹은 후 나주의 고향집을 나선다. 모내기철로 접어든 들판을 구경하며 20여 분을 운전하여 영암 실내체육관 맞은편의 기체육공원 주차장에 도착한다. 잔뜩 흐린 날씨에 가랑비가 오락가락 한다. 등산이 망설여질 정도는 아니어서 우산을 챙겨들고 기찬묏길을 가로질러서 산성대 탐방로 입구를 통과한다.
월출산 등산로 초입의 특징인 대나무 숲이 반겨준다. 밀림 같이 우거진 조릿대와 대나무 숲은 남도의 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특징이다. 능선길이 이어지는 산성대 코스의 등산로는 걷기 좋은 오솔길이다. 간간히 나타나는 바윗길에는 나무계단이 과하다 싶을 정도로 잘 설치되어 있다. 처음 걸어보는 코스라서 다른 산을 걷는 기분이 들지만 월출산의 익숙한 풍경이 낯설지가 않다. 기암괴석이 쉴새 없이 나타나는 바위 능선과 풍성한 숲이 우거진 골짜기, 안개 자욱한 산 아래의 평야지대가 어우러진 월출산 특유의 풍광을 두 눈과 카메라에 담으며 오르는 발걸음이 즐겁다. 광암터 삼거리까지 이어지는 산성대 코스는 처음 걸어본다는 설레임과 시원한 눈맛이 배가되어 등산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삼거리 이후로 통천문을 통과하여 정상인 천황봉에 이르는 길은 익숙하다.
고도가 높아지면서 구름다리가 발 아래로 보이고 그 너머로 희미하나마 운해가 펼쳐진다. 구름을 배경으로 장난감 다리처럼 걸쳐진 구름다리가 아스라히 보인다. 오랜만에 통과하는 통천문이 반갑고 천황봉 정상에서 둘러보는 풍광도 그 어느 때보다 장관이다. 바위 능선마다 설악산을 많이 닮아 있는 월출산이다. 산성대 코스로 오르면서 정면에 보이는 사자봉 인근의 산줄기들은 암벽등반으로 오른 설악산 노적봉 정상에서 눈 앞으로 펼쳐진 토왕골 선녀봉의 주변 풍광을 닮았다. 월출산의 육형제봉은 설악의 장군봉과 흡사하고, 천황봉에서 운해와 함께 펼쳐진 봉우리들은 설악산 천화대를 등반할 때 보았던 풍광을 연상시킨다. 여전히 가랑비가 흩날리지만 우산을 써야 할 정도는 아니다. 구름 위에 떠있는 듯한 싱그러운 월출의 풍광을 감상하면서 정상에서 한참 동안을 머물다가 돌아선다.
광암터삼거리에서 산성대 코스로 내려가지 않고 육형제봉과 바람폭포를 지나 천황사로 내려가는 하산길을 택한다. 천황사 주차장에서 이어지는 둘레길을 걷고 싶은 마음에서 결정한 코스이다. 이끼가 선명한 계곡을 내려와서 대나무 숲을 통과하는 익숙한 길이다. 천황사 주차장으로 내려오는 길에 있는 조각공원도 구경하면서 기찬묏길 표지판을 찾았으나 보이지 않는다. 나중에 기찬묏길 안내도를 살펴보니 주차장 안쪽에서 이어지는 길이 있을 듯하다. 표지판이 없어도 개의치 않고 영암읍내로 향하는 도로를 따라서 걷는다. 모내기가 한창이라 물이 가득한 논에 반사되는 마을과 월출산의 풍광이 멋지다. 탑동 마을을 지나서 산으로 이어진 농로를 따라 올라간다. 예상대로 반가운 기찬묏길 표지판이 나타난다.
차를 주차해 둔 기체육공원까지 잘 정비된 둘레길을 걷는 기분이 편안하다. 기찬묏길 중간에 있는 정자에서 처음으로 한참 동안을 쉬어간다. 등산화와 양말까지 벗고 에어 샤워를 하면서 사과 하나를 맛있게 먹고 있으니 남부러울 게 없다. 산 아래로 펼쳐지는 들판을 내려다보고 있으니 이러한 자리에 아담한 흙집 짓고 평화로운 노년을 보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산행 출발지였던 기체육공원에 도착하여 기찬묏길 안내도를 살펴본다. 천황사 주차장에서 기체육공원까지 3.8 km 거리이다. 기찬묏길은 왕인문화체험길과 이어져서 월출산의 둘레길 노릇을 하고 있다. 기찬묏길 6 km와 왕인문화체험길 12 km를 연결해서 걸어보는 것도 괜찮을 듯하다. 새벽 6시 반경에 시작한 산행이 11시 반 정도에 끝났다. 가족들과 점심을 함께 먹을 수 있어서 다행이지 싶었다. 여러 차례 올랐던 월출산이지만 새로운 코스로 둘러보는 맛이 더이상 좋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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