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초에 계획했던 춘클릿지 등반보다 의암암장에서 우리 팀만 호젓하게 즐긴 것이 더 좋았던 하루였다. 아침 6시 반경에 서울을 출발한다. 별다른 지체 없이 차를 달려 청평에서 가평으로 가는 국도 변의 편의점에서 모닝 커피를 마신다. 춘클릿지 주차장에 도착한 시각은 8시 40분 즈음이다. 벌써 여러 대의 차가 주차되어 있다. 춘클릿지가 바글거리겠다는 직감이 든다. 의암호반의 인어공주 조각상 주위에 활짝 꽃을 피운 가로수를 보면서 짧은 어프로치를 끝내고 등반로 출발점에 도착한다. 예상대로 8명으로 구성된 한 팀이 등반 중이다. 우리 뒤로는 20여 명이 더 올 것이라는 유쾌하지 않은 소식도 전해준다. 주위 풍경을 감상하면서 여유롭게 마음 먹고 우리의 등반을 준비한다.
등반에 나서기도 전에 모 산악회 신입회원들의 졸업등반이라면서 정말로 20명 이상의 사람들이 대절한 버스를 타고 도착한다. 춘클릿지 출발점은 시장바닥을 방불케 할 정도로 왁자지껄 해진다. 더욱 답답한 것은 우리 앞팀의 등반속도가 지금까지 내가 보아온 어떤 등반팀들보다 느리다는 점이다. 각 등반자들의 속도는 괜찮은 편인데 등반시스템이 너무 비효율적이다. 다음 순서를 기다리는 입장에서는 속이 터질 지경이다. 그렇다고 다른 팀 등반하는 것에 간섭할 수도 없는 노릇이어서 참고 기다리는 수밖에 별 도리가 없다. 신입회원들이 대다수인 우리 다음 팀은 등반 예절 같은 것은 생각할 겨를도 없는 것 같다. 두 팀의 사정을 모두 이해할 수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한정된 등반로에서 여러 사람이 즐겁게 등반하기 위해서는 조금만이라도 다른 팀을 배려할 수 있는 성숙된 등반 문화가 아쉬울 따름이다.
주위의 혼잡한 상황으로 인해 마음이 편치 않은 상태에서의 등반이 즐거울 수는 없다. 몸과 마음이 편해야 안전하고 즐거운 등반을 이어갈 수 있다는 판단 하에 3피치까지만 등반하고 탈출하기로 결정한다. 춘클릿지가 처음인 현진씨에게는 좀 미안하지만 다음을 기약하기로 한다. 아주 이른 시간이나 평일에 다시 한 번 오기로 하고 우리는 번잡한 등반로를 뒤로한채 의암암장으로 향한다. 다행스럽게도 암장에는 아무도 없이 한적하다. 같이 운동하는 인공암벽에서의 스포츠클라이밍은 나보다 한 수 위인 현진씨는 이번이 첫 자연암벽 등반이다. 여러 가지 환경이 다를 수 밖에 없는 자연암벽에서의 등반에 필수적인 몇 가지 등반기술을 현진씨에게 알려준다. 암장에 우리팀만 있으니 조용해서 마음이 평온해진다. 실내암장에서의 실력을 잘 발휘해서 유연한 등반을 즐기는 현진씨의 모습도 보기 좋다. 춘클릿지에서 아쉬웠던 부분을 의암암장에서 어느 정도 채운 듯한 기분이다. 결과적으로 전반전보다는 후반전의 내용이 더 좋은 등반이었다는 생각에 조금은 만족스런 기분이 든다.
오후 4시 즈음에 등반을 마치고 집으로 향한다. 북한강변의 경춘가도를 달리다가 청평에 이르기 전에 현리 쪽으로 방향을 바꾼다. 서파 교차로에서 47번 국도로 갈아탄다. 내촌에서 빠져나와 포천 고모리의 생선구이집에서 은경이가 사준 맛있는 저녁을 먹는다. 의정부에서 현진씨를 내려주고 서울로 돌아온다. 등반이 좀 꼬인 하루였으나 우리의 노력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런 상황은 빨리 받아들이고 대안을 찾는 게 현명한 선택이다. 굳이 즐겁지 않은 등반을 숙제하듯 억지로 이어갈 필요는 없다. 우리들의 성향에 맞지 않는 등반 행태를 보이는 사람들이 점령하고 있는 춘클릿지를 중간에 탈출한 건 괜찮은 결정이었다는 생각이다. 항상 휴일의 여가 시간에 자연을 벗 삼아 암벽등반을 즐기고자 했던 순수한 바램에 충실하면 해답은 오히려 간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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