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날 아침이 유난히 쾌청하다. 이틀 전에 세찬 바람과 함께 제법 많은 봄비가 내렸다. 실내 암장에서 같이 운동하는 친구들이 자연 암벽에서 등반을 같이 하기로 약속한다. 우이동 도선사 입구에서 7시 정각에 만나서 어프로치를 시작한다. 도선사 계곡을 따라 내려오는 물줄기가 그 어느 때보다 활기차다. 수량이 풍부한 탓이다. 낙차 큰 곳은 폭포가 되어 포말로 부서진다. 흘러내린 물이 잠시 쉬었다 가는 곳은 투명하고 깊은 연못이 되었다. 지리산이나 설악산의 계곡이 부럽지 않다. 도선사를 돌아나가 용암문으로 올라가는 산길에서 들리는 계곡물 소리도 우렁차다. 맑은 시냇물 같은 작은 물길을 건너 가면서 벌써 하산 때의 탁족을 생각한다.
용암문에서 위문으로 가는 길에 갑자기 눈 앞에 펼쳐지는 노적봉이 반갑다. 아침 햇살에 빛나고 있는 바위가 마음을 설레게 한다. 봄비를 맞아 한껏 싱싱해진 연달래가 간간히 피어 있는 숲길을 지나 노적봉을 우측에 두고 가파른 내리막 길을 조심 조심 내려간다. 반도길 초입에는 벌써 등반 중인 한무리의 사람들이 보인다. 두 팀으로 갈린 그들은 각각 반도길과 공룡길을 오르고 있다. 우리 팀은 차분하게 맘 먹고 장비를 착용한다. 윤선생님과 현진씨는 암장에서의 스포츠클라이밍 실력이 수준급이다. 자연 암벽에서도 두 사람의 등반 능력은 전혀 걱정되지 않지만 실전 등반 경험이 아직은 풍부하지 않기 때문에 안전을 위해 주의할 점 몇 가지를 당부한다. 자일파티 모두가 안전하고 만족스런 등반을 즐길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첫째 마디 선등에 나선다.
은경이의 든든한 빌레이를 받으며 60 미터와 45 미터 자일 두 동을 달고 슬랩을 오른다. 아직은 몸이 덜 풀린 탓인지 발동작이 조심스럽다. 매년 오는 반도길이지만 쌍볼트 확보점이 쇠줄이 아닌 슬링으로 되어 있다는 것이 믿음직스럽지 못하다. 그래서 첫 마디는 항상 반도길 우측에 있는 공룡길의 쇠줄로 된 쌍볼트에서 끊었었다. 이번엔 공룡길에 이미 등반 중인 팀이 매달려 있어서 반도길 정코스로 가기로 하고 중간 지점에 두 개의 캠으로 확보점을 만들면서 첫 마디 등반을 완료한다. 등반 거리는 40 미터가 넘기 때문에 60 미터 자일을 고정시키고 현진씨는 슈퍼베이직으로 등반하게 한다. 윤선생님은 45 미터 자일을 가지고 간접빌레이 방식으로 오르게 하고, 은경이는 60 미터 자일의 끝을 묶고 라스트를 맡는 순서로 첫 마디 등반을 마무리 한다.
둘째 마디는 중간 볼트가 하나도 없는 슬랩이기 때문에 선등자에게 심리적인 부담이 큰 구간이다. 절대로 미끌리지 않는다는 마음가짐으로 한 발 한 발을 신중하고 자신감 있게 내딛는다. 확보점에 도착한 후 현진씨와 윤선생님의 등반 순서를 바꾼다. 45 미터 자일을 사용하는 윤선생님이 먼저 오르게 하고, 60 미터 자일을 같이 쓰는 현진씨와 은경이가 그 다음 순서로 등반하게 한다. 윤선생님은 대학생 시절에 자연 암벽에서 등반을 해본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등반 속도가 빠르다. 슬랩이든 크랙이든 거침이 없다. 암장에서는 5.11급에 도전 중일 정도로 클라이밍 실력이 좋은 현진씨는 슬랩 등반 경험이 전혀 없어서 그런지 상대적으로 더딘 움직임을 보인다. 자동 등강기인 슈퍼베이직 장비를 사용하는 요령도 아직은 익숙치 않은 것 같아서 중간 팔자매듭을 묶게 하고 간접빌레이를 보는 방식으로 변경한다.
셋째 마디부터는 손에 잡히는 홀드가 많아지면서 등반이 즐거워진다. 확보점에서 윤선생님이 등반하는 자일을 내 몸에서 완전히 분리하여 두 개의 자일이 꼬이는 현상을 해소한다. 등반 능력뿐만 아니라 초등학교 교사답게 등반시스템에 대한 이해도까지 높은 윤선생님이 이미 베테랑처럼 느껴져서 한결 마음이 든든하다. 소나무가 있는 셋째 마디 확보점에서 자일파티 네 사람이 모여서 간식을 먹고 잠시 휴식 시간을 갖는다. 등반의 난이도는 높다고 할 수 없는 반도길이지만 만만하게 오를 수 있는 마디가 없기 때문에 체력을 요하는 루트이다. 모든 구간에서 항상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아야 한다. 크랙 구간인 넷째 마디와 대침니 구간인 다섯째 마디는 홀드가 양호해서 즐겁게 오른다.
코바위가 좌측 벽면을 이루고 있는 여섯째 마디는 두 다리를 벌려서 지탱하는 스태밍 자세로 초반부를 올라선다. 중간의 바위턱을 넘어서는 구간에서 잠시 주춤하고 있는데 은경이가 오른발 무릎 부분의 발홀드를 알려준다. 그 홀드 위에 발을 딛고 과감하게 상체를 올리니 제법 듬직한 손홀드가 잡힌다. 키가 조금만 컸으면 좀 더 쉽게 그 홀드를 잡았을 것이다. 사선으로 뻗은 크랙에 발을 올려놓고 조심스레 트레버스 하는 구간이 인상적인 일곱째 마디는 차분하게 밸런스를 유지하는 것이 관건이다. 좌측 밴드를 따라 출발하는 여덟째 마디는 경사가 완만해지는 구간이어서 상대적으로 등반이 쉽다. 여덟째 마디가 끝나고 나타나는 넓은 테라스에서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람 맞으며 한참을 쉬어간다.
마지막 아홉째 마디는 40 미터가 넘는 길이의 구간에 중간 볼트가 하나 뿐이다. 볼트가 있는 부분부터 경사가 심해지는 슬랩에서 잠시 망설인다. 다시 나타나는 슬랩이 반갑지 않은 것이 올해는 아직까지 슬랩에서의 등반이 살갑게 다가오지 않는 느낌이다. 그래도 과감하게 발을 옮겨 엄지발가락에 힘을 실으니 전혀 밀리지 않는다. 마지막까지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던 반도길 등반을 마치고 네 사람 모두 정상에 올라선다. 무엇보다 안전하게 올랐다는 것에 감사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언제 보아도 멋들어진 자태의 삼각산 세 봉우리가 눈 앞에 펼쳐지는 정상에서 남은 음식 먹으며 즐기는 망중한이 그렇게 좋을 수 없다. 실내 암장에서 자주 보던 얼굴들이 자연의 품 속에서 다시 만나 함께 줄을 묶었다는 사실이 각별하다. 매년 반복되는 계절이지만 항상 새롭게 다가오는 봄처럼 오늘의 반도길 등반도 함께한 소중한 인연들 때문에 새롭고 신선했다.
1. 일곱째 피치 초반부를 올라서서 우측으로 뻗은 사선 크랙에 진입하고 있다.
2. 우리 앞에서 좌측 팀이 반도길, 우측 팀이 공룡길을 각각 등반 중이다.
3. 자일 두 동을 달고 첫 피치 등반에 나서고 있다.
4. 윤선생님이 둘째 피치 상단부를 등반 중이다. 등반하는 폼새가 이미 베테랑급이다.
5. 소나무 위에 넓은 테라스가 있는 셋째 피치 구간부터는 손홀드가 많아진다.
6. 노적봉 건너편의 의상능선과 그 너머 비봉능선의 산줄기가 잘 보인다.
7. 등반을 안전하게 마치고 노적봉 정상에서 삼각 봉우리를 바라보며 망중한을 즐기는 시간이 좋다.
8. 노적봉 정상에서는 지난 토요일에 걸었던 산성계곡길과 태고사가 한눈에 들어온다.
9. 연무가 낀 상태지만 한강의 물줄기도 잘 보인다.
10. 용암문에서 도선사로 내려가는 길 중간의 작은 쌍폭포가 그 어느 때보다 힘차다.
11. 쌍폭포 아래에서 암벽화에 짓눌렸을 발을 식혀주기 위해 차가운 물에 발을 담근다.
12. 탁족을 마치고 서있는 오늘의 자일파티. 실내 암장을 벗어나 온전히 하루를 산에서 함께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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