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빙벽등반

북한산 염초-만경대 릿지 등반 (2016년 3월 19일)

빌레이 2016. 3. 19. 20:18

따뜻해지기 전까지는 워킹 산행을 즐기는 게 나의 등산 패턴이다. 예년 같으면 자연 암벽 등반은 보통 4월 초에 시작했었다. 지구 온난화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있기는 하지만 포근해진 날씨 덕에 바위를 즐길 수 있는 시기가 빨라진 건 좋은 일이다. 아침 8시경에 버스를 타고 구파발역을 출발하여 산성입구에서 하차한다. 비교적 이른 시각인데도 산객들이 많은 편이다. 평소엔 원효 릿지와 염초 릿지를 잇는 루트의 등반을 끝내고 백운대 정상에서 하산했었다. 오늘은 원효 릿지를 생략하고 염초와 만경대 릿지를 이어서 타보기로 한다. 자일과 등반 장비로 묵직해진 배낭을 메고 북문을 향해 오르는 발걸음은 무겁지 않다.  


상운사 옆을 거쳐서 북문에 도착하여 염초 릿지 통제소를 통과한다. 아직 관리공단 직원은 출근 전이다. 잠시 성벽길을 따라서 오른다. 의자 두 개를 겹쳐 놓아 데크가 된 평상에서 장비를 착용한다. 옅은 안개 속에 미세먼지가 끼어 있다는 예보가 있지만 산공기는 신선하다. 한낮에는 섭씨 17도까지 오른다고 하니 그야말로 완연한 봄 날씨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따뜻함을 그리워 하는 건 자연스런 현상일 게다. 기간은 짧아졌다지만 간간히 찾아온 지난 겨울의 추위는 매섭게 느껴졌었다. 몸이 많이 움츠러들었던 것도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햇빛을 받아 촉감이 좋아질 바위를 생각하면 따뜻해진 날씨가 반갑지 않을 리 없다.


본격적인 등반이 시작된다고 할 수 있는 염초 직벽에서 기송이 형의 빌레이를 받고 선등에 나선다. 오랜만에 만져보는 바위의 질감이 듬직하게 다가온다. 아직은 한창 좋을 때의 질감은 아니지만 차가운 기운이 전해지지 않아서 좋다. 야외에서는 올해 첫 등반이니 조심스럽게 오른다. 바위 중간에 박혀 있는 노간주나무에 슬링으로 확보점을 만들고 직상 크랙에 캠 두 개를 설치하면서 차분히 등반 시스템도 점검해 본다. 천천히 홀드를 찾아 가면서 오르는 재미가 있다. 약간의 긴장감 속에 직벽 등반을 안전하게 끝낸다. 다음은 안자일렌을 하고 염초봉 정상까지 이어지는 올망졸망한 바위들을 오른다. 염초봉 정상의 양지바른 공터에서 간식을 먹으며 잠시 쉬어간다. 연무에 시야가 좋지 않은 게 흠이지만 우리만의 아늑한 공간 속에서 여유롭게 즐기는 휴식이 꿀맛 같다.


염초봉을 내려서서 안부를 지나 파랑새 릿지의 정점인 장군봉 이후부터 다시 등반이 시작된다. 경사도가 좀 더 세지고 등반의 재미도 높아지는 구간이다. 말바위에서는 그동안 올라보지 않았던 좌측 루트를 택해본다. 중앙의 코바위는 주먹 재밍이 요구되는 곳이고 우측은 낭떨어지 위를 트레버스하는 루트이다. 좌측은 볼트가 설치되어 있어서 다른 두 코스보다는 한결 쉽게 통과할 수 있었다. 백운대 정상까지 안전하고 즐거운 등반을 마치고 곧장 위문으로 내려간다. 백운대 주위는 일반 등산객들로 초만원이다. 위문까지 내려가는 길도 정체 현상을 빚을 정도로 사람들이 많다. 모두들 따스한 봄기운을 산에서 느껴보고 싶은 마음에 올라온 때문인지 표정들이 한결 같이 밝다.


공단 직원이 지키고 있는 위문 통제소를 통과하여 만경대 정상의 아늑한 공간에서 점심을 먹는다. 전망 좋고, 햇볕 좋고, 듬직한 바위가 우리를 감싸고 있는 천혜의 공간 속에 스마트폰에서 흘러나오는 음악까지 곁들여지니 그야말로 천국이 따로 없다. 예전에는 인수봉의 귀바위 같은 천정에서 인공등반을 연습했던 곳으로 보이는 녹슨 볼트들도 보인다. 이 곳에서 한참 동안을 노닐다가 만경대 등반에 나선다. 트레버스와 하강이 많은 만경대 루트 또한 안전하고 재미 있게 진행한다. 낙타봉 하강을 시작으로 뜀바위, 사랑바위, 피아노 바위 구간을 통과하여 만경대 등반을 끝낸다. 오후의 역광으로 보이는 노적봉에는 정말 많은 클라이머들이 보인다. 아직 인수봉이 열리지 않은 탓일 게다. 본격적인 벽등반을 나서기 전에 바위와 친숙해지기 위한 프로그램으로 릿지 등반부터 시작했다. 더욱 안전하고 즐겁게 암벽 시즌을 맞이하고픈 마음인 것이다. 충분히 의미 있고 즐거운 염초와 만경대 릿지 등반이었다. 줄을 묶을 때마다 마음까지 통하게 되는 악우들이 함께 해서 더욱 행복한 등반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