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빙벽등반

도봉산 낭만길 등반 - 2016년 4월 2일

빌레이 2016. 4. 3. 04:49

금요일 밤 늦게까지 곤지암리조트에서 열린 대학원 워크숍에 참석했다. 심야인 2시 즈음에 숙소에서 잠시 눈을 붙이고 일어나 곧장 밤길을 달려 집에 도착한 시각이 4시 언저리다. 다시 세 시간 정도의 숙면을 취하고 8시 반경에 집을 나선다. 약속 시간인 10시보다 30여 분 일찍 도착한 도봉산 탐방안내소 주변에서 예년보다 일찍 만개한 봄꽃들을 구경한다. 대섭, 은경, 순욱형이 차례로 도착한다. 다들 분주한 일주일을 보낸 듯한 인상이지만 환한 얼굴로 서로를 반겨준다. 만월암을 향해 오르는 등로는 산객들로 만원이다. 여기저기 진달래가 피어나기 시작한다. 생강나무꽃과 산수유꽃은 노란 꽃봉오리가 절정을 이루어 탐스럽다. 땅과 가까운 낮은 곳에서는 돌틈 사이를 비집고 나온 제비꽃과 현호색이 보인다. 꽃을 피워 봄을 알려 주는 식물들을 바라보며 걷는 발걸음 속에 간밤의 피로는 어느새 달아난 듯하다.


낭만길 초입에서 장비를 착용하고 등반에 나선다. 등산학교 동문들로 한 팀이 짜여지니 등반에 임하는 마음이 편하다. 첫 피치는 자일 없이 오르고 둘째 피치부터 본격적인 등반에 들어선다. 내가 첫번째로 오르고 대섭이가 세컨을 맡기로 한다. 그 뒤를 순욱형과 은경이 순서로 등반한다. 순욱형은 그동안 바닷속을 유영하는 스쿠버다이빙에 빠져 지내느라 2년 가까이 바위를 잊고 살았다고 한다. 대섭이도 작년에 당한 발목 부상 이후로 첫 등반이어서 아직은 조심스럽다. 은경이가 라스트를 보면서 이 두 사람을 잘 챙겨주리라 생각하니 마음이 든든하다. 셋째 피치를 끝내면 열리는 조망은 언제봐도 시원스럽다. 자운봉에서 뻗어내린 암릉에도 많은 클라이머들이 붙어 있다. 배추흰나비길과 요세미티 가는 길로 보이는 루트를 오르는 팀들의 모습이 선명하게 보인다.


넷째 피치 후반부의 침니는 난이도와는 별개로 부담스런 구간이다. 컨디션이 좋을 때는 양쪽 직벽에 의지해서 자신감 있게 스태밍 자세로 오르면 그리 어렵지 않은 구간이다. 그런데 간밤에 쌓인 피로가 서서히 몰려오는 몸 상태 때문인지 평소보다 자세가 불안정 하다. 적절한 홀드도 잘 못찾고 몸의 균형도 별로 좋지 않음이 느껴진다. 이럴 때일수록 여유를 갖고 신중하게 오르자는 생각으로 등반하느라 다소 시간이 지체된다. 부담스런 침니 구간을 끝내고 한 피치를 더 오른 후 조망 좋은 곳에서 점심을 먹는다. 간단한 식사 후에 뜀바위를 지나서 만장봉 정상 아래의 직벽에 도착한다. 이곳에서 암벽화로 갈아신고 홀드 양호한 디에드르 형태의 크랙을 따라서 오른다. 여전히 내 자신의 몸동작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평소보다 굼뜬 몸을 감안해서 최대한 안전하게 오르자는 생각으로 등반에 임한다. 약간 까다로운 위쪽 크랙 구간에서는 다른 팀에서 수거하지 못한 캠 외에 두 개의 캠을 추가로 설치하여 확보점을 충분히 만든 후에 돌파한다.


마지막 슬랩 구간을 올라서서 무사히 정상에 도착한다. 자일파티 모두가 안전하게 등반을 완료한 후에 만장봉 정상에서 간식을 나눠 먹는다. 바람이 세차지만 쌀쌀하지는 않은 봄바람이다. 두 번의 30미터 하강까지 안전하게 마치고 낭만길 등반을 종료한다. 몸 상태가 좋을 때는 등반이 즐겁다. 자신감도 넘쳐서 동작이 유연해진다. 이럴 땐 오버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잘 나갈 때 조심하라는 격언처럼 안전에 신경쓰는 것을 간과하면 안된다. 오늘 같이 몸 상태가 좋지 않을 때는 더욱더 조심해야 한다. 평소에 쉽게 오르던 곳도 어렵게 느껴질 수가 있는 것이다. 등반 전에는 몸 상태를 좋게 유지하는 자세가 중요하다. 하지만 매번 좋은 컨디션일 수는 없다. 어떤 상황이든 개의치 않고 침착하게 대처할 수 있는 강한 정신력과 지혜가 필요하다. 순욱형, 대섭, 은경이가 함께 있어서 몸은 좋지 않아도 등반 내내 마음만은 편안했다. 서로를 신뢰하는 그 마음 덕택에 물 흐르듯 매끈하고 즐거운 낭만길 등반이 되었다. 이제 서서히 풀리는 계절의 흐름에 발 맞추어 우리들의 등반도 자연스레 무르익어 갈 것이다.                            


1. 넷째 마디를 등반 중이다. 이곳을 넘어가면 조금은 귀찮게 비벼대야 하는 침니 구간이 기다린다.


2. 따스한 봄날을 맞아 등반에 나서는 이들이 많다.


3. 만월암으로 향하는 중이다. 생강나무꽃이 탐스렇게 만개해 있었다.


4. 첫 피치는 자일 없이 올라간다.


5. 둘째 피치부터 본격적인 등반에 나선다.


6. 오랜만에 함께 줄을 묶은 순욱형이 둘째 피치를 등반 중이다.


7. 셋째 피치를 올라서면 조망이 트인다. 자운봉으로 향하는 바윗길에 붙어 있는 클라이머들이 보인다.


8. 다섯째 피치를 오르고 있다. 여기를 올라서서 점심을 먹었다.


9. 암벽화로 갈아신고 직벽에 붙는다.


10. 직벽 상단부의 크랙에 충분한 확보점을 마련한 후에 오른다. 


11. 슬랩으로 이루어진 마지막 구간을 등반 중이다.


12. 정상에 확보점을 만들고 후등자 빌레이 중이다. 순욱형은 오랜만의 등반인데도 제법 잘 오른다.


13. 만장봉 정상엔 바람이 세차게 불고 있어서 후드를 썼다. 좋지 않은 몸 상태에도 불구하고 안전하게 올랐다는 안도감에 기분이 좋다.


14. 바람이 세찰 때에는 하강시에도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