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우리 대학의 졸업식이 있었다. 학생들은 졸업식날 교수를 찾지 않는 것이 일상적인 일이다.
가족 친지들과 기념사진 찍고 외식하는 것이 일반화 되어 있다. 나도 졸업식 땐 그랬었다.
그런 졸업식 날에 내 연구실을 찾는 학생들이 종종 있다. 대개는 기념사진 찍으러 온다.
기쁜 날이니 말로나마 축하해주고, 못난 생김새이지만 기꺼이 웃는 얼굴로 모델이 되어준다.
올해 찾아온 학생 중엔 수학과 출신이 아닌 경제학과 출신 학생이 유난히 기억난다.
수리통계학이란 과목을 내게 수강한 학생으로 타과생으론 드물게 A+를 취득해서 이름까지 기억하고 있다.
대학 다니면서 내 강의가 가장 기억에 남아 특별히 내게 인사하고 싶어서 아침 일찍 왔다는 것이다.
선생 하면서 드물게 맛보는 보람찬 순간이다. 가끔은 이런 때가 있어 생은 아름답다는 생각이 든다.
좋은 대학의 대학원에 진학한 그 학생에게 커피를 대접하며 충고와 함께 담소를 나누었다.
대학원에서 나의 지도로 석사학위를 취득한 제자 녀석도 나를 기쁘게 해주었다.
평소 내게 칭찬보다는 꾸지람을 더 많이 듣던 학생이다. 타고난 성실성으로 나의 지도를 묵묵히 따라주어 아끼던 놈이다.
부모님과 같이 인사를 와서 조금은 황송했다. 넉넉치 못한 집안 형편인데 등산조끼를 선물로 가져왔다.
녀석은 내가 등산 좋아하는 것를 익히 알고 있는 까닭이다. 마음씀이 고마웠다.
어려운 경제 상황 속에서 다행히 취직이 되어 지도교수로서의 마음도 한결 가볍게 해주었다.
내가 좋은 선생이 되기 위해서 아직은 부족한 것이 너무 많다. 그렇다고 뛰어난 학자도 아니다.
좋은 강의를 한다고 나름대로의 노력은 기울이고 있지만 최선을 다하고 있는지 자신할 수는 없다.
하지만 졸업식 때 나를 찾아주는 학생들의 밝은 얼굴 속에서 조금이나마 희망을 보는 것 같다.
내일, 또 새로운 한 학기가 시작된다. 하나님의 섭리로 밖에는 설명이 안 되는 새로운 만남이 기다리고 있다.
그들 속으로, 그 맑은 눈동자들 속으로, 사랑 가득한 마음을 가지고 조심스럽게 다가서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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