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빙벽등반

도봉산 낭만길 등반 - 2015년 4월 25일

빌레이 2015. 4. 26. 11:59

낭만길은 도봉산 만장봉에서 뻗어내린 바윗길이다. 등반의 난이도는 높지 않지만 크랙과 침니, 슬랩과 페이스까지 다양한 형태의 등반을 즐길 수 있는 루트이다. 낭만길은 무엇보다 주변 풍광이 뛰어나기 때문에 진달래꽃 만발한 봄날과 단풍으로 물든 가을날에 한번쯤 부담없이 바위를 오르고 싶을 때 생각나는 곳이다. 암벽 시즌을 늦게 시작한 탓에 아직은 자연암벽이 익숙치 않은 나에게는 워밍업 코스로도 괜찮은 곳이다. 도봉탐방안내소에서 9시 반 즈음에 일행을 만나 만월암을 향해 오른다. 요즘의 봄 날씨는 더이상 바랄 것이 없을 만큼 화창하다. 올해는 적절한 때에 봄비가 내려 주었다. 비는 움트는 생명에게 자양분을 공급해주고 숲을 더욱 깨끗하게 만들었다. 도봉산의 봄빛이 그 어느 때보다 곱게 느껴진다.

 

낭만길 초입의 안부에서 장비를 착용하고 진달래꽃 사이로 보이는 첫 피치에서 내가 먼저 오른다. 기송 형님과 한 변호사는 낭만길이 처음이기 때문에 길을 안내한다는 의미에서 낭만길에 익숙한 내가 리딩하기로 한다. 쉬운 길이라고 해서 위험 요소가 없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안전에 신경쓰면서 은경이의 빌레이를 받으며 오른다. 자일파티 모두가 등산학교 출신으로 등반시스템을 잘 이해하고 있다. 등반 실력 또한 나무랄 데가 없어서 아무런 정체나 지체도 없이 잘 진행한다. 낭만길을 오르는 이들이 우리 팀 외에는 아무도 없으니 심적으로도 편하다. 침니를 기어오르는 넷째 피치를 끝내고 시원한 바람 맞으며 잠시 쉬어간다. 다소 싱거울 수 있는 난이도의 릿지길이지만 네 사람 모두 등반보다는 산에 있다는 것 자체가 즐거운 사람들이기에 표정들이 환하다.

 

만장봉 정상 아래의 직벽을 올라야 할 차례에서 루트를 가늠해본다. 볼트가 있어야 할 곳에 흔적만 남아있다. 캠을 설치하고 오른다지만 볼트만큼의 믿음은 주지 못하기에 약간의 부담감을 가지고 붙어본다. 볼트 흔적이 있는 곳에 슬링으로 확보점을 만들어 볼려고 했지만 여의치 않아서 포기하고 크랙에 캠을 설치한 후에 오른다. 약간의 부담감을 떨치지 못한 탓인지 동작이 다른 때보다 유연하지 않다. 아쉬운 대로 좌측 크랙의 손홀드를 붙잡고 올라서서 피치를 끊는다. 볼트가 확실했을 때는 별 어려움 없이 올랐던 곳이다. 등반기술보다는 마음가짐이 더욱 중요하다는 걸 다시금 깨닫는 순간이다. 디에드르 형 바위에 슬랩 등반이 이어지는 마지막 피치까지 안전하게 끝내고 만장봉 정상에서 한가로운 점심 시간을 가진다. 오늘의 만장봉은 우리 네 사람의 것이다. 이렇게 좋은 날씨의 주말 시간에 만장봉 바윗길이 조용하다는 것이 오히려 이상할 정도다. 일반 등로를 통해 오르는 신선대 정상이 사람들로 북적대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한 팀으로 줄을 묶었던 네 사람만이 오롯이 소유한 만장봉 정상에서의 평화로운 시간이 우리들만의 축복이다.       

 

두 번의 30 미터 자일 하강을 마치고 등반을 마무리 한다. 우이동 단골집에서의 홍탁을 꿈꾸며 도봉주릉을 가로질러 하산하기로 한다. 일반 등산로를 따라 신선대를 거쳐 도봉주릉을 타고 걷는 발걸음이 등반할 때보다 오히려 힘겹다. 하지만 오솔길 양쪽으로 끝없이 이어지는 진달래꽃이 우리들의 피곤함을 달래준다. 신선대 주변의 그 많던 등산객들도 거의 다 하산한 탓인지 산객들도 드물다. 호젓한 산길을 걷는 기분이 상쾌하다. 산을 빠져나오기 직전에 작은 계곡의 차가운 물에 발을 담근다. 릿지화를 신고 오랜 시간 걷느라 뜨거워진 발이 치유되는 기분이다. 막걸리 한두 잔이 오가고 홍어무침과 돌문어 숙회로 만족스런 뒷풀이 시간을 갖는다. 말수가 거의 없던 한 변호사와 내가 같은 대학 같은 학번 출신이라는 사실도 알게되어 한껏 고조된 톤의 목소리가 오갔던 시간이었다. 새로 구입한 암벽화가 듬직함을 준 것처럼 올해 나의 등반도 오늘의 낭만길 등반을 계기로 잘 풀릴 듯한 예감이다.            

 

1. 낭만길 둘째 마디 중간부에서 캠을 설치하고 있다.

 

2. 낭만길 출발점에서 기념사진 한 컷.

 

3. 진달래꽃이 만발한 가운데 봄 속으로 들어가는 듯한 느낌으로 등반한다.

 

4. 둘째 마디 후반부는 우측의 날등으로 오르면 홀드가 양호하다.

 

5. 둘째 마디에서 예전과 달리 우측 크랙에 캠을 설치하니 더욱 안전하고 자일 유통도 잘 된다. 

 

6. 진달래꽃 사이를 가로지르는 것이 꿈길을 걷는 기분이다.

 

7. 셋째 마디를 오르고 있다. 연초록으로 물들고 있는 새 이파리들이 예쁘다.

 

8. 넷째 마디를 끝내고 클라이밍 다운으로 침니를 내려간다.

 

9. 다섯째 마디는 배낭을 비비고 올라야 하는 세로 침니를 우회하여 홀드 양호한 루트로 오른다. 

 

10. 여섯째 마디의 출발점에서는 몸빌레이가 필요하다.

 

11. 친구들의 몸빌레이를 받고 여섯째 마디를 올라서고 있다.

 

12. 여섯째 마디 중간의 뜀바위를 지나서 오르고 있는 중이다.

 

13. 일곱째 마디를 올라서고 있다. 이 곳을 오르면 직벽이 기다리고 있다.

 

14. 직벽 앞에서 루트를 가늠해보는데 볼트가 사라지고 흔적만 보인다.

 

15. 볼트가 있어야 할 곳에 없으니 캠을 설치하고 오른다.

 

16. 평소와 다르게 좌측 크랙을 이용해서 올랐다.

 

17. 정상으로 향하는 마지막 피치는 좌측 디에드르 형태의 길을 레이백 비슷하게 오른다.

 

18. 자일 하강은 30 미터를 두 번에 나누어 한다. 

 

19. 아직 발이 아프긴 하지만 새로 신은 암벽화가 바위에서 전혀 미끌리지 않고 듬직함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