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빙벽등반

북한산 원효-염초 릿지 등반 - 2015년 4월 18일

빌레이 2015. 4. 18. 21:41

교육개혁이란 미명 아래 대학교를 취업 학원으로 바꾸고자 하는 대학 구조조정이 한창이다. 대학이 학문의 전당이이라는 말은 이미 옛말이 돼버렸다. 순수학문은 그 힘을 잃게 되고 취업률이 좋다는 학과들의 목소리는 커지고 있다. 학생들이 있어야 학교가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렇게 혼란스러울 때에는 학생들의 미래를 가장 먼저 생각하고자 한다. 하지만 기업의 논리와 구미에 맞는 데이터만을 들이대어 학문 분야를 평가하는 작금의 세태는 심히 우려스럽다. 경제가 무엇보다 중요한 건 부인할 수 없지만, 획일적인 논리로 밀어부치는 건 분명 문제가 있다. 대학 구조조정과 맞물린 교육사업을 준비하면서 뇌리에 맴도는 복잡한 생각을 떨쳐버리지 못했던 일주일이 피곤했다. 토요일에 등반할 시간이 난다는 보장도 없었던 한 주간이었다.

 

올해는 등반다운 등반을 하기가 참 힘들다. 바위와 친숙해질 시간을 먼저 갖기 위해서 원효봉과 염초봉 릿지를 걸어보기로 한다. 구파발역에서 버스를 타고 효자동 마을회관에서 하차한다. 시구문 방향으로 올라가는 길과 북한산둘레길이 교차하는 공터에서 본격적인 산행 채비를 갖춘다. 산벚꽃과 진달래가 한창인 주변이 온통 봄빛이다. 산으로 올라가는 초입에 제법 큰 침엽수인 전나무 몇 그루가 서있다. 이곳을 통과할 때면 잠시나마 알프스 트레킹의 행복했던 순간이 떠오른다. 샤모니나 쩨르마트 시내에서 산으로 올라가는 오솔길 주변과 비슷한 풍경이나 분위기를 감지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시구문을 지나 땀바위 슬랩 아래에서 장비를 착용하고 잠시 쉬어간다. 

  

땀바위와 치마바위 슬랩에서 몸을 풀고 원효봉 정상을 향해 오른다. 바윗길 주변은 진달래꽃이 풍성하고 가끔 복사꽃도 눈에 띈다. 하늘을 올려다보면 연두색 꽃이라 부르고 싶은 반투명 빛깔의 새 이파리들이 아침햇살을 등지며 반짝이고 있다. 며칠 전에 내린 비 때문인지 시야 또한 좋다. 바위를 타고 싶은 욕구보다는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봄을 만끽하고 싶은 마음이 더 강하다. 평소보다 힘겹다는 느낌 때문이다. 원효봉 정상에서 가야할 염초봉 릿지를 가늠해 보면서 북문으로 내려간다. 안전 장비를 갖추고 등반하는지 감시하는 공단 직원이 지키고 있는 탐방안내소를 통과한다. 이렇게 들어선 염초봉 릿지도 꽤 오랜만이다. 염초 직벽과 책바위를 지나면 염초봉 정상이고, 다시 내리막길을 가다가 올라선 지점이 파랑새 릿지길 종점과 만나는 장군봉 앞이다. 이곳에서부터 백운대까지 이어지는 암릉길이 재미있는 편이다. 예전보다는 별 긴장감 없이 말바위를 통과하여 백운대 정상에 오른다.     

 

만일을 위하여 60 미터 자일을 가지고 등반했으나 염초 릿지의 경우는 30 미터 자일 한 동이면 충분한 길이다. 피치가 곧바로 이어지는 암벽등반 코스보다 릿지길 등반에서 자일을 사용하는 것이 여러모로 귀찮기 마련이다. 그래서 안전장비를 꼼꼼히 챙기지 않게 되기 쉽고, 이는 릿지길 등반에서 오히려 안전사고가 날 개연성을 더 높게 만드는 것이다. 암벽등반과 스포츠클라이밍에 길들여진 내가 릿지길 등반에서 방심하지 말아야 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백운대 정상에서 우리가 올라온 릿지길을 굽어보면서 이러한 생각들을 정리해 본다. 봄날의 아름다운 자연을 만끽하면서 여유롭고 안전하게 릿지길 등반을 마쳤다는 만족감이 남는다.

 

북한산 등산로는 그 어느 때보다 만원이다. 만경대 우회로를 거쳐서 노적봉 초입의 안부에서 쉬는 동안 지나가는 등산객들이 정말 많다. 산이 아니라 시내의 어느 공원 안에 와있는 기분이다. 용암문으로 가는 길가의 양지바른 곳엔 노랑제비꽃이 지천으로 깔려있다. 누군가 일부러 가꾼 꽃밭인양 아직 앙상한 가지를 하고 있어서 삭막할 수 있는 나무들 밑을 온통 노란 빛깔로 채색하고 있다. 용암문에서 도선사로 내려오는 길가에도 여기저기 진달래와 들꽃이 만발해 있다. 도선사에서 우이동으로 흘러내리는 계곡은 더욱더 짙은 봄빛으로 물들어 있다. 파스텔톤으로 아름답게 색칠된 봄날의 숲처럼 우리네 일상도 그렇게 아름다워지기를 기원해본다.      

 

1. 책바위 앞에서 한 컷 남겨본다.

 

2. 둘레길에서 시구문으로 올라가는 초입에 설치되어 있는 광고판이다.

 

3. 시구문으로 가는 길 초입에 들어서면 샤모니나 쩨르마트 인근의 알프스 분위기가 풍긴다.

 

4. 등산로 주변엔 진달래가 한창이다.

 

5. 예전에 시체를 내가는 문이란 뜻의 시구문 모습이다.

 

6. 땀바위 슬랩 아래에서 바라본 의상봉. 산벚꽃이 만발해 있다.

 

7. 땀바위 슬랩을 천천히 밟아본다. 예전엔 이곳을 오르면서도 가슴이 두근거렸었다.

 

8. 치마바위 슬랩을 올라와서 내려다본다. 땀바위보다는 가파르지만 바윗결이 살아있다.

 

9. 연두색 꽃으로 부르고 싶은 새 잎이 아침햇살을 받아 반짝인다.

 

10. 원효봉 정상으로 향하는 길 주변은 온통 진달래 꽃밭이다.

 

11. 원효봉 정상에서 올려다본 백운대, 만경대, 노적봉이다. 좌측의 하늘금이 염초릿지길이다.

 

12. 북한산성이 이어지는 원효봉 정상.

 

13. 북문에서 안전 장비를 착용해야 염초릿지길로 들어설 수 있다.

 

14. 원효봉 능선을 돌아다 본다.

 

15. 염초 직벽에 자리잡은 소나무는 여전히 멋지다.

 

16. 염초 직벽을 솔로로 등반하고 있다. 정체될 듯하여 우리는 우회 루트로 오른다.

 

17. 책바위를 내려서서 소나무 위를 지나면 짧은 하강이 기다리고 있다.

 

18. 파랑새 릿지길의 종착지점인 장군봉의 모습이 그 어느 때보다 우람하게 보인다.

 

19. 우리 뒤에서 말바위를 올라온 팀의 모습이 보인다.

 

20. 이 지점에서 하강을 마치면 백운대가 멀지 않은 거리로 다가온다.

 

21. 청명한 주말 날씨 덕에 백운대 정상은 산객들로 붐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