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빙벽등반

북한산 노적봉 <오아시스의 미인길> 등반 - 2015년 5월 9일

빌레이 2015. 5. 9. 20:42

등산의 좋은 점 중의 하나는 같은 코스의 산길이라도 걸을 때마다 새로움을 맛볼 수 있다는 것이다. 반복을 싫어하는 인간의 습성 때문에 집을 나서기 전에는 같은 곳을 또 간다는 게 선뜻 마음이 내키지 않아 머뭇거리게 된다. 문지방이 가장 넘기 힘든 크럭스라는 말은 이때에도 효력을 발휘한다. 하지만 막상 산길에 들어서게 되면 곧바로 잘 나왔다는 생각이 든다. 계절마다 하루가 다르게 산은 끊임 없이 변하고 있다. 같은 길이라도 함께하는 이들이 다르면 다른 느낌이 들게 마련이다. 작년에 올랐던 노적봉 오아시스의 미인길을 등반하고 나서 이러한 생각들을 되새기게 된다. 예전보다 훨씬 즐겁고 편안하게 올랐다는 만족감이 남는다. 실내암장에서 꾸준히 운동한 덕택으로 은연 중에 나의 등반 능력이 향상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 또한 큰 즐거움이다.

 

노적봉 등반을 계획하고 아침 8시에 구파발역에서 일행들을 만난다. 절친한 대학 선배인 기영이 형이 오랜만에 줄을 묶기로 한다. 대둔산 등반을 함께 다녀왔던 한변호사와 은경이가 합류했고 못 오실 줄 알았던 기송 형님의 얼굴도 보인다. 어프로치를 끝내고 오아시스의 미인길 앞에서 장비를 착용하고 있는데 기송 형님은 결국 일 때문에 산을 내려가시기로 한다. 아쉽지만 다음을 기약하며 네 명이 등반에 나선다. 내가 먼저 선등으로 40 미터 가까이 되는 첫 피치를 여유롭게 끝낸다. 원래는 두 피치로 나눠져 있던 구간인데 어렵지 않아서 한번에 끊을 수 있으니 좋다. 자일 세 동을 연결하여 은경이, 기영이 형, 한변호사 순서로 오른다. 

 

중간에 몇 년간 쉬었다고는 하지만 30년이 넘는 구력을 자랑하는 기영이 형은 전통적인 등반가 답게 항상 큰 배낭에 자일과 함께 각종 등반장비를 완벽하게 준비해 오신다. 기영이 형의 이러한 자세에는 암벽등반이 단순한 취미 생활에 머물지 않는다는 전통적인 등반가들의 무게감 있는 생각이 깃들어 있다. 상대적으로 등반 경력이 일천하여 간편하고 자유로운 등반을 추구하고 있는 내게는 가끔 예전 등반가들의 사고가 까닭 모를 답답함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어떤 상황이 발생할지 모르는 거친 바윗길에서 안전을 먼저 생각하고 철저히 준비하는 자세나 등반가들 사이에 흐르는 끈끈한 정과 예의범절 등의 장점은 배울만한 가치가 있다.

 

둘째 피치부터는 무거운 배낭 때문에 힘들어 하시는 기색이 역력한 기영이 형께 라스트를 맡기기로 한다. 매달고 오르는 자일의 무게나마 줄여드려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40 미터가 넘는 길이로 선등자에게 약간의 부담감이 있는 둘째 피치는 개념도 상에 난이도 5.10a로 표시되어 있는 구간이다. 피치 상단부에 있는 페이스 구간이 조금 까다롭지만 우측 사선 크랙에 박혀 있는 옛날 하켄을 이용하여 좌측 페이스 상의 볼트에 클립하고 붙어보니 미세한 손홀드들이 잘 잡힌다. 티씨프로 암벽화도 듬직하여 발이 전혀 밀리지 않는다. 그래도 추락하기는 싫어서 볼트에 한발을 딛고 서서 크럭스를 돌파한다. 긴장감 있는 구간을 통과하고 나니 서서히 등반에 대한 자신감이 살아난다.

 

셋째 피치는 비교적 쉬운 구간이고, 넷째 피치는 은경이와 번갈아 가면서 선등을 맡았던 작년에 둘째 볼트 우측의 포켓홀드를 잘 찾지 못해서 애를 먹었던 구간이다. 이제는 길을 알고 있으니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붙어본다. 볼트에 설치되어 있는 슬링에 왼발을 끼우고 오른발은 우측의 작은 포켓홀드를 딛는다. 여기에서 발 바꾸기 동작으로 트레버스 하면 우측 발을 커다란 포켓홀드에 넣을 수 있다. 그 이후 직상하는 부분은 홀드가 양호한 편이다. 개념도 상의 난이도는 5.10c급인데 자유등반 방식으로 둘째 볼트를 넘어서는 건 만만치 않을 듯싶다. 포켓홀드 이후에 쌍볼트 확보점이 두 개 보인다. 직상해서 선등을 완료 했으나 좌측 사선 방향의 확보점이 오아시스의 미인길이다. 다행히 두 확보점 사이는 그리 멀지 않아서 별 문제는 없다.

 

넷째 피치는 수평 단층이 인상적인 곳으로 짧은 오버행이 있는 구간이다. 오버행 직전에 발을 믿고 일어서서 볼트에 클립하는 것이 약간 까다롭다. 패닉을 사용하여 볼트에 클립하고 알파인 레더를 설치하여 오버행을 통과한다. 라스트로 올라오신 기영이 형은 이 구간을 자유등반 방식으로 통과했다며 즐거워 하신다. 35 미터 길이에 5.10a 난이도를 보이는 이 구간을 올라서면 노적봉 정상의 나폴레옹 모자 바위가 눈앞에 나타난다. 마지막 피치는 정상 바로 아래로 이어지는 슬랩 구간이고 작년에 인공등반으로 오른 오버행 크랙 구간은 별 등반성이 없다는 판단 하에 생략하고 릿지길을 걸어서 정상에 오른다. 한 팀을 이룬 네 명 모두가 협동하여 물 흐르듯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등반을 즐겼다는 만족감이 남는다.

 

1. 기영이 형이 둘째 마디의 페이스 구간을 통과하고 있다.

 

2. 오아시스의 미인길 출발점이다.

 

3. 우측으로 경원대길을 등반하는 팀의 모습이 보인다.

 

4. 지난 주 대둔산에서 멋진 선등을 보여줬던 한변호사가 오늘은 라스트에서 궂은 일을 담당하기로 한다.

 

5. 둘째 마디는 소나무 좌측에 보이는 볼트를 따라가는 루트이다. 소나무 우측은 아마도 광클C길로 이어질 것이다.

 

6. 하루 전의 과음으로 크럭스 구간에서 약간 힘겨워 하는 한변호사의 모습.

 

7. 오아시스의 미인길 주변은 노적봉에서 보기 드물게 작은 숲지대가 계속 연결되어 나타난다.

 

8. 슬링이 걸려있는 둘째 볼트 우측 아래의 포켓홀드로 건너가면 그 다음 부분의 홀드가 양호하다.

 

9. 수평 단층이 인상적인 구간으로 짧은 오버행이 나타난다.

 

10. 크럭스 구간의 포켓홀드를 넘어서서 올라오고 있는 한변호사.

 

11. 포켓홀드를 지나서 직상하는 바람에 피치를 잘못 끊은 확보점에 모여있는 자일파티.

 

12. 오버행 구간을 넘어서면 노적봉 정상의 나폴레옹 모자 바위가 눈앞에 나타난다.

 

13. 오버행 구간을 지난 확보점에서 내려다본 모습. 좌측의 소나무는 여전히 멋들어진 자태.

 

14. 오버행 구간을 넘어서 등반하고 있는 한변호사.

 

15. 정상 바로 밑의 확보점.

 

16. 노적봉 정상에서 보는 삼각산 풍광은 언제 보아도 시원스럽다.

 

17. 대학 동문들끼리 기념사진 한 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