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트레킹

구름 속의 불암산 걷기 - 2014년 11월 22일

빌레이 2014. 11. 23. 05:33

불암산 둘레길은 온통 낙엽으로 포장되어 있다. 가랑비가 오락가락한 날씨에 만추의 산길을 걷는 기분이 상쾌하다. 갈색의 갈잎 터널 속을 관통하는 발걸음도 가볍다. 일주일 전 즈음부터 찾아든 감기 기운을 떨쳐내기 위해 보온에 신경쓰며 걷는다. 불암산 둘레길 표지 위에 서울둘레길이란 표시가 새롭게 얹혀졌다. 둘레길들도 서로 만나고 헤어지기를 거듭한다. 서울둘레길과 헤어져 태릉과 공릉동에서 올라가는 불암산 주릉을 따른다. 오랜만에 걸어보는 이 길이 평소보다 한적해서 좋다. 천보사 갈림길 언저리에 새로이 설치된 전망 데크에서 따뜻한 홍삼차 한 잔을 마신다. 안개와 구름에 갇힌 산중에서 마시는 차 한 잔의 여유에 감사함이 묻어난다.

 

감기 기운을 쉽사리 떨쳐내지 못한 나이가 되었음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능선의 바람에 체온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후드를 뒤집어 쓰고 천천히 오른다. 어느새 헬기장을 지나 정상 아래의 거북바위에 이른다. 주말이라 그런지 제법 많은 산행객들이 보인다. 평소에는 정상 부근의 번잡함이 싫어서 우회하던 계단길을 올라서서 눈앞에 펼쳐지는 운무를 감상한다. 시시각각 변하는 구름의 향연은 설악산에서나 볼 수 있는 풍광이다. 남양주의 별내 방향에서 형성된 운해가 그리 높지 않은 불암산 주릉을 넘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끓고 있는 모습이 이채롭다. 오래전 설악의 공룡능선에서 마주한 풍경이 떠오른다.

 

덕릉고개로 향하는 능선길에서 벗어나 따뜻한 점심을 먹고 기운을 회복한다. 당고개역으로의 하산을 머리 속에 그리며 불암산 산허리를 이리저리 배회하다가 천천히 내려온다. 낙엽 수북히 쌓인 오솔길이 미끄럽다. 다시 만난 불암산 둘레길에선 단풍잎 곱게 내려 앉은 모습이 반갑다. 적당히 내린 가을비에 젖은 나뭇잎이 바람에 흩날리지 않고 차분히 제자리를 잡았다. 엄마 나무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고 쌓여 있는 나뭇잎들은 다시 엄마 나무에게 자양분을 공급할 것이다. 우리네 인생도 그렇게 돌고 도는 것일 게다. 구름 속에서 만추의 불암산을 차분히 느낄 수 있었던 산행이었다. 수유리의 암장에 들러 저녁 때까지 리드 등반을 즐기고 나니 하루를 알차게 보냈다는 뿌듯함까지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