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빙벽등반

노적봉 <즐거운 편지길>과 만경대 <지존길> 등반 - 2014년 8월 30일

빌레이 2014. 8. 31. 06:00

북한산 노적봉에 즐거운 편지길이 있다는 것을 우연히 알게 되었다. 황동규 시인의 <즐거운 편지>란 시가 연상되는 바윗길이어서 그런지 등반하고 싶다는 마음이 동했다. 인터넷에서 자료를 검색해보니 초입 찾기가 쉽지 않다는 문구가 많이 보인다. 하지만 내 머리 속에 있는 노적봉 전체의 지리를 토대로 가늠해보면 그리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일파티 4명이 구파발역에서 8시 반에 모여서 북한산성 입구부터 어프로치를 시작한다. 보리사가 있는 삼거리에서 백운대로 향하는 좌측 길로 접어든다. 이 길은 다시 원효봉과 위문으로 가는 삼거리를 만난다. 여기에서 위문 방향으로 잠시 오르다가 출입금지 표지판을 보고 우측의 오솔길로 접어든다. 길은 그런대로 확실하다.

 

오솔길을 따라 능선에 올라선다. 노적봉 릿지길로 이어지는 능선길이 선명하다. 중간 전망 바위에서 우리가 오를 즐거운 편지길을 찾아본다. 노적봉 릿지길 초입의 세로 크랙을 기준으로 좌측에 있는 사선 밴드가 보이는 듯하다. 노적봉 릿지길 초입에서 좌측의 오솔길을 따라 잠시 내려간다. 인터넷 상의 사진으로 보았던 사선 밴드가 확실하게 보인다. 즐거운 편지길 초입을 한 번도 헤메지 않고 찾아낸 기쁨이 크다. 장비를 착용하기 좋은 공터도 있어서 간식도 먹고 맘 편하게 한참을 쉰 후에 등반을 시작한다. 첫째 마디는 침니 등반을 요하는 구간이다. 두 다리를 벌려서 버티는 자세로 진행한다. 갈수록 좁아지는 침니는 첫 볼트 이후에 잠시 쉴 수 있는 턱이 있어서 좋다. 

 

다음에 이어지는 비좁은 침니는 몸을 비비면서 올라선 후 두 번째 볼트에 클립한다. 처음부터 다리를 벌리는 자세로 올라설 수 있으나 아무래도 선등은 추락에 대한 염려를 떨칠 수 없기 때문에 불편해도 비벼대면서 오르는 게 마음 편하다. 볼트 위로 넘어서서 밴드 아래의 확보점에 도착한다. 은경이, 유집사님, 박교수님 순서로 등반한다. 후등자는 끝까지 다리를 벌리는 자세로 침니를 통과한다. 둘째 마디는 즐거운 편지길의 하일라이트 구간이다. 직벽에 사선으로 발달한 밴드를 올라야 한다. 개념도 상의 난이도는 5.9로 고도감이 있기는 하지만 중간 볼트가 12개 있을 정도로 볼트 간격이 촘촘하고 밴드를 밟는 발홀드가 믿음직스러워 비교적 안정감 있게 돌파한다. 천국의 계단 같은 셋째 마디부터 여섯째 마디까지는 큰 어려움 없이 즐거운 마음으로 오를 수 있는 구간이다.

 

즐거운 편지길 등반을 기분 좋게 마치고 숲길을 잠시 걸으면 나폴레옹 모자 바위가 있는 노적봉 서봉 정상이다. 정상의 바위 그늘에 둘러 앉아 늦은 점심을 먹는다. 초가을 분위기 물씬 풍기는 하늘은 청명하고 시야도 깨끗하다. 아직 오후 2시가 넘지 않은 시각이라서 맞은편 봉우리인 만경대에서 흘러내리는 지존길을 등반하기로 한다. 노적봉과 만경대를 이어서 등반하는 클라이머들을 종종 보았기 때문에 우리도 그러한 루트를 따라가 보기로 한 것이다. 노적봉 서봉을 클라이밍 다운하여 동봉을 통해서 만경대 우회로인 일반 등산로로 내려선다. 동봉 정상에서는 지존길 루트 전체가 손에 잡힐 듯 가깝고 선명하게 보인다. 일반 등산로에서 위문 방향으로 잠시 오르다가 우측의 오솔길로 접어들면 지존길 출발점이 나온다. 오후 2시 반이 못 된 시각에 지존길 첫 마디에 붙는다.

 

좌측의 신지존길은 볼트따기 수준의 슬랩 등반을 요하는 듯하여 우측 길을 등반한다. 지존길은 둘째 마디에 크럭스가 있다. 약간 오버행을 이룬 디에드르 형태의 크랙을 올라선 후 다시 칼날처럼 생긴 바위를 등반할 때는 우측으로 돌지 말고 날등을 타고 올라야 한다. 날등에 올라서면 정면 벽에 좌측 상향으로 진행하는 두 개의 볼트가 보인다. 이 벽을 통과하는 것이 생각보다 어렵다. 알파인레더를 설치하고 두 세 차례 인공 등반을 시도해 보았지만 레더를 딛는 발이 시계추처럼 흔들려서 두 번째 볼트에 클립하는 데 실패한다. 노적봉 등반 이후라서 그런지 체력이 어느 정도 소진된 듯한 느낌도 받는다. 예전처럼 이 곳에서 임시로 확보하고 은경이를 올라오게 한다. 은경이에게 발받침을 해주니 어렵지 않게 다음 볼트에 클립하고 바위턱을 넘어선다. 다시 한 번 자일파티가 협력해서 크럭스를 지혜롭게 돌파한 순간이다. 크럭스를 넘어선 이후의 지존길 마디는 은경이의 선등으로 별다른 어려움 없이 진행한다.

 

지존길 등반까지 무사히 완료하고 만경대 정상 능선 상의 봉우리에 네 사람이 둘러 앉아 등반 이후의 안락함을 만끽한다. 한강 하구의 물줄기가 서쪽으로 기우는 햇빛을 반사시켜 거울처럼 반짝이고 있다. 그 위로는 구름 사이로 퍼져내리는 빛내림 현상이 신부의 면사포처럼 아름답게 펼쳐진다. 서울 시내 방향의 조망도 그 어느 때보다 청명하여 팔당댐 너머의 용문산 줄기까지 선명하게 보인다. 모든 것이 평화롭고 안온한 가운데 호수처럼 잔잔히 젖어드는 편안함이 마냥 좋기만 하다. 체력이 허락한다면 만경대 정상 방향으로 등반을 이어갈 수도 있겠지만 용암문 방향으로 하산한다.


사랑바위와 피아노바위 위에서 두 번의 자일 하강을 하여 안전하게 내려온다. 예전에 용암봉 정상에서 보았던 양지꽃 바위 화분을 다시 만난 기쁨도 남다르다. 용암문에서 도선사로 내려오는 길 중간의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바윗길에서 하루 내내 고생한 발바닥을 시원하게 적셔준다. 도선사 주차장에 내려선 시각이 오후 7시 즈음이다. 열 시간 넘게 아름다운 북한산의 품 속에서 믿음직스런 동반자들과 함께 만족스런 등반을 즐겼다는 것에 감사하는 마음이다. 노적봉과 만경대의 바윗길을 연결해서 안전하고 여유롭게 등반했다는 것이 대견하고도 뿌듯하다. 영화 <편지>에서 여주인공이었던 최진실이 병상에 누워 있는 박신양에게 울먹이면서 낭독해주던 황동규 시인의 <즐거운 편지>가 읽고 싶어서 여기에 인용해 본다.   

 

즐거운 편지

                     

                       - 황동규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메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오리라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버린 데 있었다

 

밤이 들면서 골짜기엔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내 사랑도 어디 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다만 그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 뿐이다

 

그 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는다

 

 

▲ 지존길의 크럭스 구간인 둘째 마디를 등반 중이다.

 

▲ 노적봉 릿지길로 이어지는 능선 상에서 조망한 노적봉. 사진에서 맨 좌측 부분에 즐거운 편지길이 있다.

 

▲ 즐거운 편지길 초입은 동굴 입구 같은 대형 침니 형태를 이루고 있다.

 

▲ 즐거운 편지길 첫 피치를 출발하고 있다.

 

▲ 즐거운 편지길 첫 피치 확보점에서 내려다 본 모습. 라스트로 등반 중인 박교수님의 모습이 보인다.

 

▲ 즐거운 편지길의 둘째 마디는 직벽에 사선으로 이어진 밴드를 따라 진행한다. 아래에서 보는 것보다는 어렵게 느껴진다. 

 

▲ 즐거운 편지길 우측으로는 노적봉 릿지길이 나란히 이어진다.

 

▲ 즐거운 편지길 셋째 마디의 사선 밴드는 그야말로 천국의 계단처럼 편안하고 즐겁게 오를 수 있다.

 

▲ 즐거운 편지길 좌측으로는 백운대 서벽의 웅장한 모습이 시종일관 펼쳐진다.

 

▲ 천국의 계단이라는 셋째 마디를 위에서 내려다 본 모습이다.

 

▲ 계단처럼 생긴 밴드는 즐거운 편지길 거의 끝까지 이어진다. 

 

▲ 라스트로 올라오시는 박교수님 아래로 우리가 어프로치 했던 능선이 보인다.

 

▲ 즐거운 편지길의 마지막 마디를 등반 중이다.

 

▲ 즐거운 편지길 등반을 완료하고 노적봉 서봉 정상에서 시원한 조망을 즐긴다. 햇살 받은 인수봉이 빛나고 있다.

 

▲ 초가을 날씨 속에 청명한 하늘의 뭉게구름이 정겹다.

 

▲ 노적봉 동봉 정상에서는 만경대 정상부로 향하는 지존길 루트 전체가 또렷히 보인다. 사진 우측의 세로로 뻗어내린 암릉이 지존길.

 

▲ 지존길 출발점에서 다시 암벽화를 갈아 신고 있다. 약간은 피곤하다는 생각이 든다.

 

▲ 지존길 첫째 마디의 첫 볼트에 올라서서 루트 파인딩 중인 모습을 유집사님이 잘 잡아주셨다.

 

▲ 지존길 둘째 마디의 칼날 바위 부분을 등반 중이다.

 

▲ 정면 벽의 두 번째 볼트에 손이 닿지 않아서 은경이를 올라오게 한 후에 크럭스를 돌파한다.

 

▲ 지존길 둘째 마디의 크럭스를 넘어서서 등반 중인 박교수님의 모습이다.

 

▲ 지존길은 둘째 마디를 제외하면 큰 어려움 없이 진행할 수 있는 듯하다.

 

▲ 유집사님이 뜀바위를 사뿐히 건너 뛴 후 건너편에서 세 사람의 모습을 담아주셨다.

 

▲ 지존길 둘째 마디 이후부터는 은경이가 선등을 맡아서 오르니 한결 수월하다.

 

▲ 지존길의 마지막 마디인 쉬운 슬랩을 등반 중이다.

 

▲ 만경대 정상 능선의 봉우리 위에서 바라본 빛내림 현상.

 

▲ 즐거운 편지길과 지존길 등반을 마치고 지존길 정상에서 편안한 마음으로 한가로움을 즐기고 있다.

 

▲ 저 멀리 산성주릉이 선명하고 발 아래로는 우리가 지나온 지존길 바위들이 도열해 있다.

 

▲ 안전을 위하여 사랑바위 위에서 클라이밍 다운 하지 않고 자일 하강 중이다.

 

▲ 용암봉 정상에 있는 바위 화분. 예전엔 양지꽃이 노랗게 피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