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의 팔공산 이백리길 등반 중 눈에 들어온 오래된 앵글하켄이 뇌리에 남는다. 바위 표면에 강제로 구멍을 뚫어 확보점을 만드는 볼트에 비해 자연 파괴가 심하지 않은 것이 하켄이다. 하켄은 암벽 등반 장비가 발달한 요즘의 바윗길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다. 너트나 캠 종류가 다양하여 하켄을 대신할 수 있기 때문인 듯하다. 예전의 등반기들에서는 하켄에 대한 얘기가 자주 나온다. 특별히 기억에 남는 건 발터 보나티의 책 <내 생애의 산들>에서 읽은 내용이다. 바위에 생체기를 내는 볼트에 비해 하켄은 회수하면 바위에 큰 상처가 남지 않기 때문인지 보나티는 볼트 사용을 반대하고 하켄을 주로 사용하여 등반하였다.
볼트 사용에 대한 논쟁은 아직도 이어지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가능하면 최소한의 볼트를 사용하고 흔적이 남지 않는 캠이나 너트 종류를 확보점으로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은 어느 정도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는 것 같아서 다행이다. 이른바 클린 등반으로 자연을 보호하자는 내용이다. 등반 능력이 초보 수준이고 발목 골절의 경험이 있는 나로서는 바윗길에서 촘촘한 볼트를 만날 때마다 든든한 기분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인공 등반도 다양한 등반 행위들 중의 하나일 것이지만 가능하면 피할 수 있는 게 좋다는 생각이다. 난이도 높은 루트를 오르기 위해서는 등반 실력을 업그레이드 하는 것이 정당한 방법일 것이다.
이백리길 바위 틈에 박힌 오래된 하켄을 보면서 나는 인공 구조물도 시간이 지나면 자연에 동화된다는 생각을 했다. 녹슨 하켄이 바위 틈에 박힌 모습이 자연의 일부처럼 변해가는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그날 등반을 리드했던 허선생은 내가 보내준 사진 속의 앵글하켄을 보면서 이제는 사라져가는 풍경이라며 옛날을 회상했다. 대구 부근에서 오래 전부터 등반을 해왔던 허선생은 이 하켄도 고향의 어느 선후배 중 한 명이 설치했을 거라며 감회에 젖었다. 같은 것도 저마다의 경험이나 시각에 따라 달리 보이고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는 평범한 진리를 다시금 되새기게 된다.
1. 오래되어 녹슨 앵글하켄이 자연의 일부처럼 보인다. 시간의 흐름은 인공적인 것도 자연적인 것으로 만드는 힘이 있다.
2. 바위 표면에 구멍을 뚫지 않고 자연적인 바위 틈새에 박기 때문에 하켄은 볼트보다 자연 친화적이다.
3. 이백리길에는 현대적인 스테인리스 볼트와 오래된 하켄이 섞여 있는 구간이 있다.
4. 요즘의 바윗길에는 녹슬지 않는 확보점이 설치되어 더욱 안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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