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2014년 부활절 날의 어지러운 생각

빌레이 2014. 4. 20. 21:05

해마다 부활절이면 나의 신앙 생활을 돌아보게 된다. 나는 2002년 부활절 날에 세례를 받았다. 벨기에의 브뤼셀 한인교회에서 전원호 목사님이 물을 듬뿍 적셔서 내 머리에 안수하시고 뜨겁게 기도해주시던 그 순간이 잊히지 않는다. 그래서인지는 모르지만 부활절이 되면 자연스레 신앙적 생일 같은 기분이 든다. 크리스천으로 다시 태어난 느낌을 강하게 받은 탓이다. 세례를 받은지 만 12 년이 지났지만 나의 신앙은 여전히 어린애 수준이다. 지금은 광주에서 목회하고 계시는 전목사님을 다시 찾아 뵙기가 부끄러워지는 이유이다. 비교적 늦은 나이에 교회를 다니기 시작한 까닭에 한국 교회의 문화에 아직까지도 비판적인 마음이 가시지 않는다. 여객선 침몰 사고로 온 나라가 정신적 공황 상태에 빠진 듯한 작금의 상황에서도 한국 교회는 나약하기만 하다.

 

내가 다니는 교회의 부활주일 설교는 공허하고 실망스럽기 그지 없었다. 사건 발생 후 5 일이 지났지만 목사님은 시리즈로 예전부터 준비해둔 원고만 읽어내려가고 있는 것 같다. 설교 내용을 재미 있게 이해시킨답시고 평소에 양념처럼 끼워 넣는 썰렁 유머도 여전하다. 이건 아니지 싶다. 부활절의 의미도 좋고 기독교 최고의 축복일인 것도 맞다. 하지만 세상을 등지고 기독교만 존재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어지러운 세상 속에서 빛과 소금으로 살라는 예수님의 명령은 세상과 동떨어져 살라는 말은 아닐 것이다. 온 국민이 슬픔에 잠겨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 현 상황 속에서 기독교인으로서 가져야할 마음 가짐과 삶 속에서의 태도, 기도드릴 내용 등을 성경적으로 풀어주는 것이 목회자가 설교에 임하는 올바른 자세일 것이다. 교회 안에서의 신앙 생활에 머무르지 않고 "생활 신앙"을 실천하는 자세를 견지할 때 기독교는 힘을 잃지 않을 것이다.     

 

세월호 침몰 사건에 대해서는 무수한 말들이 난무하다. 국가는 국민을 지켜줘야 한다. 나라를 사랑하고 한국인으로 사는 게 자랑스러운 적이 많지만 대한민국으로부터 내가 보호를 받고 있다는 든든한 느낌을 받은 기억은 없다. 안산 단원고 학생들의 희생을 지켜보면서 찢어지는 아픔과 함께 가슴이 먹먹하고 답답한 느낌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무엇보다 선장을 비롯한 선원들과 어른들이 먼저 탈출하는 비겁한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역겹다. 밥 먹을 때도 웃 어른이 숟가락을 든 후에야 애들이 먹어야 하는 유교적 생활 양식이 이런 상황 속에서도 적용되어야 하는 것인지 묻고 싶다. 다시 한 번 죽음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보는 요즘이다. 부활 신앙이 없으면 기독교는 무의미 하다. 순교와 배교의 순간은 항상 같이 온다. 비겁한 배교를 택하고 남은 생을 무거운 짐 껴안고 구차하게 연명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이러한 마음 가짐을 실천하기는 정말 어려울 것이다. 다윗의 기도처럼 하나님의 뜻을 따라 행동할 수 있는 강한 마음을 허락해주시라는 간구를 쉬지 않아야 한다.

 

주일 오후의 어지러운 생각을 정리하고 소화되지 않은 불편한 속을 달래고 싶어서 홀로 산에 올랐다. 라일락 꽃 향기가 코끝을 자극한다. 때 이른 금낭화도 피었다. 집 뒤의 북한산 칼바위 능선 자락은 벌써 연달래꽃이 지고 서서히 신록이 짙어지고 있다. 이 아름다운 계절에 꽃다운 어린 생명들이 차가운 물속에 있다고 생각하니 다시 한 번 눈물이 나려고 한다. 희생자와 유가족들의 마음을 예수님의 넓은 사랑으로 감싸주시길 기도한다. 아무 것도 모르고 유명을 달리한 어린 생명들이 천국에서 부활하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신록 너머의 사람 사는 동네가 아련하다. 경쟁 심한 그 정글 속에서도 무례하지 않고 서로 배려하는 따뜻한 사랑이 흘러 넘치는 우리나라가 되기를 기원해본다. 배 안에 갇힌 생명들의 답답하고 억울했을 심정을 조금이나마 같이 하며 위로해주고 싶은 생각에 김남주 시인의 시집 <사상의 거처>를 펼쳐든다. 민주화 투쟁으로 철창에 갇혔을 때 어머니가 계신 집에 가고 싶었던 시인의 간절했던 마음이 배 안에서 죽음을 대하고 있을 생명들의 마음과 크게 다르지 않을 듯하여 시를 읽는 동안 다시 한 번 가슴이 먹먹해지고 눈가에 이슬이 맺힌다.

 

 

  봄날에 철창에 기대어

 

                                         - 김남주

 

봄이면 장다리밭에

흰나비 노랑나비 하늘하늘 날고

가을이면 섬돌에

귀뚜라미 우는 곳

어머니 나는 찾아갈 수 있어요

몸에서 이 손발에서 사슬 풀리면

눈을 감고도 찾아갈 수 있어요 우리집

 

그래요 어머니

귀가 밝아 늘상

사립문 미는 소리에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고

목소리를 듣고서야 자식인 줄 알고

문을 열어주시고는 했던 어머니

사슬만 풀리면 이 몸에서 풀리기만 하면

한달음에 당도할 수 있어요 우리집

 

장성 갈재를 넘어 영산강을 건너고

구름도 쉬어 넘는다는 월출산 천왕 제일봉도

나비처럼 훨훨 날아 찾아갈 수 있어요

조그만 들창으로 온 하늘이 다 내다뵈는 우리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