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책 읽는 알프스> 독후감

빌레이 2014. 6. 4. 21:45

알프스 시리즈를 꾸준히 출판해오고 있는 허긍열 씨의 신간 <책 읽는 알프스>를 며칠 전에 다 읽었다. 알찬 내용으로 가득찬 본문이 400 페이지를 넘는 분량이기 때문에 틈틈히 조금씩 읽었다고는 하지만 완독하는 데 꽤 긴 시간이 소요되었다. 산서 읽기를 특별히 좋아하는 내게는 책에 얽힌 뒷얘기를 동무에게 듣는 듯한 재미가 있었다. 저자인 허 선생님과의 개인적인 인연과 낯익은 알프스의 배경 때문인지 한 꼭지씩 보는 동안 친숙한 잡지 기사를 읽어내려가는 것처럼 부담없이 편안하게 책 속으로 빠져드는 즐거움을 만끽했다.

 

<책 읽는 알프스>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첫째 장은 "내가 만든 책들"이란 제목 하에 수 년 동안 저자가 출판해온 산서들에 관한 얘기를 펼쳐놓았다. 청년 시절의 히말라야 원정 등반 때부터 위대한 등반가들의 도전적인 등반기에 남다른 애착을 보여 직접 번역하게 된 배경과 연관된 사실들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알프스 시리즈로 이 책 이전까지 저자가 창작한 17권에 대한 단촐한 소개부터 책 만드는 과정과 판매에 얽힌 이야기도 솔직 담백하게 표현해 놓았다. 저자의 책에 대한 서평들을 모아 놓은 부분도 눈길을 끈다. 서평 중에는 김장호 교수나 김영도 선생님 같이 저명한 분들의 글과 함께 내가 쓴 졸필의 독후감도 몇 편 실려있다. 나로서는 영광스런 일이라 하겠다.

 

"책 속의 산을 찾아"로 명명된 둘째 장에는 저자가 산서를 들고 그 책과 연관성 높은 알프스 산군 곳곳을 등반하면서 느낀 생각을 풀어 놓은 에세이 22편이 실려있다. 처음엔 다소 어색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책의 제목 <책 읽는 알프스>가 아주 자연스럽게 다가오는 부분이다. 개인적으로는 어느 산악 잡지에 연재되던 허 선생님의 글을 처음으로 접했던 때가 떠오르는 대목이 있어서 잠시 옛일을 회상해보기도 했다. 산서의 배경이 되는 장소에서 그 책을 집필한 저자를 회상한다는 것은 매우 뜻깊은 일일 것이다. 희곡 작가인 심산 씨가 쓴 책 <마운틴 오딧세이>에서는 느낄 수 없는 진솔하고 현장감 높은 에세이들을 <책 읽는 알프스>에서는 만날 수 있다. <마운틴 오딧세이>가 전업 작가의 세련된 필체와 지식으로 씌여진 책이라면, <책 읽는 알프스>는 전문 등반가의 두 발과 가슴으로 쓴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셋째 장 "즐거웠던 책들"편에서는 저자의 독서 편력을 엿볼 수 있다. 허 선생님이 운영하는 인터넷 카페 고알프스에서 익히 보았던 글들이지만 책 속에서 다시 보게 되니 반갑다. 인터넷 상의 글은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상황에 놓여있다. 소중한 기록들이 하드카피로 남는다는 것 자체가 의미있는 일이지 싶다. 책 속에 등장하는 산서들 중에는 내가 소장하고 있지 않은 것들도 간간히 눈에 띈다. 그것들 중 몇몇은 절판되어 현재는 구할 수 없는 책들도 있다. 오래되어 구할 수 없는 산서들은 골동품 같은 가치가 있다. 산을 좋아하는 이들에게 변하지 않는 감동을 전해주기 때문이다.            

 

저자와 독자 사이로 허 선생님을 알게된지 5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처음 만났을 때 허 선생님은 독자가 저자를 만났을 때 실망하는 경우가 많다는 걱정 아닌 걱정을 했었다. 책의 내용과 저자의 삶이 판이하게 다른 경우가 많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내가 지켜본 바로는 허 선생님은 매우 보기 드문 경우이다. 책 속에서 만나는 허 선생님과 실제로 본 그의 모습에 별반 차이를 느끼지 못했다. 그만큼 허 선생님의 글에 허위와 가식이 없다는 뜻이다. 진짜는 오래도록 변함 없는 보석과 같은 것이고, 가짜는 쉽게 부서지거나 변해버린다. <위험의 저편에서> 만났던 토모 체슨의 등반은 위대한 것이었지만 <책 읽는 알프스>에서는 그의 거짓이 탄로났다는 사실을 적시하고 있다. 결국 토모 체슨은 가짜로 남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과장 없이 진솔한 내용만을 쓰고자 노력하는 허 선생님의 글이 더욱 가치있게 생각되는 순간이다.

 

1. 산서가 놓여 있는 장소가 알프스 어디쯤인지 가늠해보는 것도 재미 있는 일이다.

 

2. 한 권 한 권이 피나는 노력의 산물이겠지만 허 선생님의 알프스 시리즈는 벌써 18권째가 출판되었다.

 

3. 우측 하단의 사진은 나의 뇌리에 오래 전부터 남아 있는 그림이다.

 

4. 산서와 함께 알프스 곳곳을 누비는 에세이 말미에는 최근에 다시 책을 펼쳐본 후의 감상을 갈무리 해놓았다.

 

5. 알파인 지대의 적막한 무인 산장에서 읽어 내려가는 산서의 맛은 각별할 것이다. 

 

6. 책이 두꺼워 잘 펼쳐지지 않을 때 퀵드로세트를 이용해 독서대를 만들어 본다. 고알프스에서 본 기억이 있는 허 선생님의 아이디어.

 

7. 내 책장에도 꽤 많은 산서들이 쌓여있다. 아직 완독하지 못한 책들도 여러 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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