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빙벽등반/해외등반여행

가이앙 암장에서 등반을 즐기다 - 2013년 6월 17일

빌레이 2013. 7. 16. 15:53

내가 암벽등반을 처음 배워야겠다고 마음 속에 품은 건 오래 전 일이다. 산서를 읽으면서 잘 이해되지 않는 등반 용어들을 알고 싶은 이유도 있었고 암릉 등반을 좀 더 안전하게 즐기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빠져들기 쉽지 않은 시간적 심리적 요인들 또한 많았다. 이렇게 망설이던 내 마음을 한 곳으로 정하게 만든 계기가 바로 가이앙 암장이다. 삼 년 전 혼자서 8박 9일 일정으로 샤모니와 쩨르마트 인근의 알프스 트레킹에 나섰던 때였다.

 

흐린 날씨에 벨라샤 산장에서 브레방 전망대로 오르려 했었다. 하지만 유월 초라서 곳곳에 눈이 남아 있어서 중간에 돌아서야만 했다. 하산길을 가이앙 암장 쪽으로 잡았다. 암장의 드넓은 잔디밭에 앉아 암벽에 붙어서 등반을 즐기고 있는 이들이 그렇게 평화로울 수 없었다. 어린이들부터 연세 지긋하신 할아버지들까지 연령층도 다양했다. 암장 주위의 풍광도 빼어나고 도로변에 있어서 접근도 용이했다. 벽이 넓어서 난이도도 다양하고 혼잡하지도 않았다. 이러한 환경에서라면 암벽등반을 하고 싶다는 마음을 굳힌 것이다.

 

그 후로 한국에 돌아와 얼마 지나지 않은 시기에 등산학교 암벽반을 졸업하고 본격적으로 암벽등반을 즐기게 되었다. 그로부터 삼 년여가 흐른 후에 다시 샤모니에 오게 되어 가이앙 암장의 벽에 붙고 싶은 마음에 허선생님께 부탁한다. 오전에 세 시간 정도의 프티발콩수드 코스를 함께 산책한 후 점심을 먹고 장비를 꾸려서 가이앙으로 향한다. 숙소에서 출발하면 도보로 삼십 분도 안 되어 암장에 도착한다. 하네스를 착용하고 암벽화로 갈아신고 있는데 가랑비가 내린다. 세찬 비는 아니어서 오락가락 할 듯하다.

 

맨 오른쪽 벽에서 등반을 시작한다. 허선생과는 두 번째로 줄을 묶어본다. 등산학교 졸업 후 얼마 안 되어 팔공산 병풍바위에서 처음으로 허선생과 등반을 했었다. 그때는 거의 끌려가다시피 할 정도로 직벽에 대한 부담감이 컸던 시기였다. 이제는 어느 정도 바위에 익숙해졌다고는 하지만 외국에서의 첫 암벽이라는 생각에 긴장감이 몰려온다. 부드럽게 선등하는 허선생님의 등반 모습은 빌레이 보는 사람도 편안하게 해준다. 비 때문에 젖어 있는 바위가 약간 미끌리는 감은 있지만 홀드가 비교적 양호하여 긴장감 속에 첫 피치를 끝낸다.

 

두번째 피치는 약간의 오버행에 홀드도 잘 보이지 않는다. 은근히 안 갔으면 하는 바램도 있었지만 허선생은 조용히 손홀드를 탐색한다. 손가락 한 마디가 들어갈만한 홀드를 잡고 유연하게 올라서서는 그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한참 후 안착했다는 구호 소리가 들린다. 한국말은 우리 밖에 할 사람이 없으니 허선생의 목소리가 틀림없다. 내가 출발할 차례다. 약간 떨리지만 볼트의 퀵드로를 잡고 올라선다. 인공물을 잡지 않고 허선생처럼 하다간 돌파하기 힘들고 부상당하기 쉬울 것 같아서 취한 방법이다. 이 루트는 두 피치에서 끝내고 하강한다.

 

가운데 벽에는 처마처럼 툭 튀어나온 오버행이 있다. 설마 했으나 허선생님은 이번에도 아무 말 없이 그쪽으로 오른다. 빌레이 보는 나도 약간은 긴장한다. 난이도도 있어 보이고 여전히 비도 간간히 내리기 때문이다. 허선생은 우려와는 달리 사뿐히 등반을 완료하고 나는 안전하게 톱로핑 방식으로 등반한다. 오버행 구간에서는 조금 힘들었으나 그런대로 올라설 수 있어서 다행스런 기분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맨 왼쪽의 벽에 붙을 차례다. 선등하는 허선생님은 쉬운 구간도 천천히 오르니 빌레이 보기가 편하다. 자일이 50 미터가 넘는데도 첫 피치를 끊지 않는다. 초반은 쉬운 구간이지만 중간 이후는 가파른 날등이다.

 

오십 미터가 넘는 피치를 천천히 후등으로 오른다. 중간 이후의 날등은 고도감이 상당하다. 홀드가 비교적 양호하여 그나마 등반이 즐겁다. 다음 피치는 쉬울 것 같았는데 디에드르 형태의 크랙 부분이 생각보다 어렵다. 두 세 번의 망설임 끝에 돌파하고 확보점에 도착하니 허선생이 환하게 반겨준다. 이번에는 자일 하강하지 않고 철사다리를 이용해 내려온다. 빙하에 내려서기 위한 연습을 하기 위해 설치된 사다리인 것 같다. 이렇게 가이앙 암장에서의 등반은 즐겁고 안전하게 마칠 수 있었다. 삼 년 전에는 구경꾼이 되어 막연히 하고 싶다는 마음을 품었을 뿐이다. 그 마음이 현실이 되어 암벽을 즐겼다는 사실이 신기하고도 뿌듯하다.

 

 

1. 허선생님의 안정적인 리딩으로 가이앙 암장에서의 등반이 즐거웠다.

 

2. 가이앙 암장은 흙을 파내어 넓은 공터를 만들었다고 한다. 사람들이 많아도 혼잡하다는 생각이 안 들 정도로 넓다.

 

3. 맨 왼쪽 루트의 확보점에서 내려다본 모습. 중간에 오버행을 오르는 이들이 보인다. 

 

4. 위에서 내려다보면 호수가 보인다. 도로도 가까워 접근이 용이하다.

 

5. 오른쪽 끝의 등반 준비하는 이들이 있는 부분에서 처음 등반을 시작했다.

 

6. 두번째 루트로는 중간의 턱진 바위를 올라서야 하는 루트를 등반했다.

 

7. 세번째 루트는 좌측의 날등을 오르는 등반이었다.

 

8. 우리가 등반한 바로 옆에서 부녀지간처럼 보이는 두 사람이 등반을 즐기고 있었다. 

 

9. 삼 년 전엔 구경꾼이었던 내가 이제는 등반을 즐기고 있다는 게 신기하다.

 

10. 암장 앞의 호수를 청소하는 모습이 이채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