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루쉰전>을 읽고

빌레이 2013. 1. 3. 21:56

연말연시에 읽은 책이 <루쉰전>이다. 대학 시절에 루쉰의 작품을 읽었던 기억이 아득하다. 그때는 한문을 우리 식으로 발음하여 루쉰을 "노신"이라 했다. 봉건주의와 제국주의의 낡은 틀을 깨고 중국 민족이 그들의 자존심을 회복하여 현대의 중국이 있기까지 지대한 영향을 끼친 사상가가 바로 루쉰이다. <루쉰전>은 청나라의 봉건세력이 마감을 고하고 서양과 일본의 제국주의가 판치는 근대 중국이 시대적 배경이다. 이 시기의 중국에서 민족혼을 지키며 낡은 틀을 과감히 던져야 함을 일깨워준 위대한 사상가 루쉰의 파란만장한 일대기를 기록한 전기문이 바로 <루쉰전>이다.

 

나는 예전에 <아큐정전> 같은 루쉰의 작품들을 읽으면서도 그 작품들이 쓰여진 사회적 배경을 확실히는 잘 몰랐었다. <루쉰전>은 단순히 한 사람의 일대기를 기록한 전기에 머무르지 않는다. 루쉰의 작품 해설과 그의 사상에 관한 설명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격동의 시기에 대단히 올곧게 살다간 한 인간의 이야기가 있다. 무엇보다 자신과 자신의 작품에 엄격했으며, 청년들과 노동자 농민들에게는 끝없는 사랑을 베풀면서도 봉건주의와 제국주의를 옹호하는 세력들에겐 시종일관 굽힘이 없었던 강인한 인간의 전형이 <루쉰전>에 들어있다.

 

2013년 새해를 시작하면서 <루쉰전>을 함께했다는 것이 내게는 뜻깊다. 많이 나태해지고 많이 약해진 내모습이 보인다. 미래의 기둥들인 청년들에게 무한한 애정을 보여준 루쉰 선생의 모습 속에 비치는 내모습은 초라하기 그지없다. 지금의 내 자리에서 내게 남아있는 것에 집중하여 다시금 도전정신을 불태워 열정을 되살려야 한다. 루쉰 선생의 부지런함과 올곧음을 본받아야 한다. "많은 사람들의 손가락질에는 쌀쌀하게 눈썹 치켜세워 응대하지만, 아이들을 위해선 기꺼이 머리 숙여 소가 되리라"했던 선생의 사상을 조금이라도 실천하려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책 속에는 나를 일깨워준 루쉰 선생의 글귀들이 많다. 몇 구절을 옮겨본다.

 

"나는 생각했다. 희망이란 원래부터 있다고 할 수도 있고 없다고 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그것은 마치 땅 위에 난 길과도 같은 것이 아닐까. 사실 길이란 원래부터 있는 것이 아니라 다니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차차 생긴 것이다."

 

"어느 한 사람이 도둑이 되었다고 해서 모든 사람을 다 도둑이라고 의심할 수 있겠는가? 아이가 밥을 헛되이 땅에 버렸다고 해서 농부가 그것 때문에 농사를 짓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 구절은 루쉰이 지도한 청년들 중 그를 배반하거나 실망시킨 이들이 있을 때 선생이 취한 자세를 보여준다.

 

"루쉰 소설에서 '타락한 상층 사회'와 '불행한 하층 사회'는 필연적 연관이 있는 것으로, 양자는 뚜렷하게 대비된다. 하층사회의 불행은 상층사회의 타락, 탐욕, 협잡과 약탈에 의해 빚어진 것이었다."

 

"글을 다 쓴 뒤에 적어도 두 번은 읽어봐야 한다. 있으나 마나 상관없는 글자와 구절, 단락들은 조금도 연연해 하지 말고 삭제해버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