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허긍열의 <알프스 알파인 등반> 1, 2 권에 대한 감상

빌레이 2012. 5. 27. 14:39

몸살 감기가 심해졌다. 이번 학기는 어느 때보다 꽉 짜여진 일정 때문인지, 아니면 나이가 들어가면서 나타나는 현상인지 더욱 힘에 부치는 느낌이다. 프로젝트의 중간 연구 발표도 얼마 남지 않고 몸도 쉬원치 않아 이번 주말엔 등반을 쉬기로 한다. 대신 한강으로 자전거 하이킹을 다녀왔지만 몸은 회복되지 않고 더욱 악화되고 말았다. 병원 진료를 받고 약의 힘을 빌어야 하는 신세로 전락해버렸다. 하지만 모든 것이 나쁜 상황이란 없는 법이다. 집에 틀어박혀 있어야 할 때는 독서가 제격이다. 그간 틈틈이 봐 오던 <알프스 알파인 등반> 2권을 다 읽은 건 지친 내 몸에 큰 위안이 되었다.

 

<알프스 알파인 등반>은 최근 2권까지 출판되었다. 작년 늦가을에 보았던 1권도 좋았지만, 이번에 나온 2권은 더욱 마음에 든다. 두 권의 책은 기본적으로 알파인 등반 사진집이다. 가슴 뛰게 만드는 알프스 알파인 지대의 풍경 사진을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다. 개인적으로는 2010년 6월 초에 다녀왔던 샤모니와 체르마트 인근 알프스 트레킹에 대한 추억이 고스란히 제현되는 것 같은 생생한 느낌이 전해져 온다. 트레킹 하는 동안엔 쉽게 볼 수 없는 알파인 지대의 내밀한 부분들을 현장감 있는 등반 사진과 함께 편안한 방 안에서 발뻗고 즐길 수 있다는 것이 오히려 미안할 정도다.

 

샤모니 몽블랑 산군을 주로 다룬 1권과 2권에 나타난 알프스 침봉들의 이름이 내게는 낯설지 않다. 내 방의 책상 앞 벽면엔 지금도 샤모니와 체르마트 인근의 알프스 산군을 소개해 놓은 관광용 팜플렛이 붙어 있기 때문이다. 알프스 트레킹을 떠나기 전 준비 과정에서 읽었던 많은 서적과 자료들로부터 그 곳 지명이 익숙해진 까닭도 있다. 최고봉인 몽블랑 뿐만 아니라 그랑드조라스, 드류, 당뒤제앙, 에귀베르트, 몽돌랑 등의 봉우리들과 메르데글라스, 뚜르, 렛쇼, 보쏭 등의 빙하들이 낯익으니 책을 보는 재미가 한층 더하다. 책에서 보던 지명을 실제로 봤을 때의 감흥이 남다른 것처럼, 실제로 멀리서 보았던 알프스 명봉들의 근경과 비밀스런 부분을 들춰보는 재미도 특별하다.  

 

<알프스 알파인 등반>은 저자가 직접 등반하면서 찍은 다큐멘터리 같은 사진집이기에 몽블랑 산군의 알파인 등반 안내서로서의 실제적 가치가 크다. 책에는 등반 난이도와 준비물, 접근로, 등반 시간 등이 잘 기록되어 있다. 각 알파인 루트에 대한 초등 기록을 정리해놓은 부분에서는 완성도 높은 책을 만들겠다는 저자의 노력을 엿볼 수 있다. 저자 자신의 등반 경험을 간결하면서도 솔직 담백하게 들려주는 산행기를 읽는 재미도 쏠쏠하다. 등반기와 더불어 간간히 등장하는 등반과 산에 관한 에세이는 저자의 내면 세계를 읽을 수 있는 소중한 기록이다. 무엇보다 평소의 내 생각과 여러 면에서 궤를 같이하는 것 같은 공감대를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저자인 허긍열 선생님을 열흘 전에 만날 수 있었다. 학생들에게 새롭고 다양한 세계를 보여주고 도전 정신을 고취시켜 주고 싶은 생각으로 특강에 초청했던 것이다. 2년만의 만남이었기에 장시간 얘기하고 싶은 게 많았다. 하지만 서로의 메어있는 삶이 그걸 허락하지 않았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헤어졌지만, <알프스 알파인 등반>을 읽고 나니 그때 못 나눴던 대화를 나눈 것 같은 만족감이 찾아든다. 반가운 이를 오랜만에 만난다해도 얼굴 마주하고 나눌 수 있는 대화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그가 쓴 책을 읽는다면 이미 서로는 깊은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 면에서 <알프스 알파인 등반>은 저자가 지인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얘기와 보여주고 싶은 그림을 잘 정리해놓은 것이란 생각도 해본다.

 

아직까지 우리 나라에서는 상업적으로 발전하기 힘든 산서 출판의 현실을 감안할 때, 허긍열 선생의 <알프스 알파인 등반>과 앞으로 저자가 출판을 계획하고 있는 알프스 관련 서적들은 산에서 마시는 그윽한 커피의 향기만큼이나 우리에게 특별하고도 소중한 선물로 남을 것이다. 아울러 우리의 격조 높은 산악문화가 성숙되어 이렇게 좋은 산서들이 그 가치를 널리 인정받을 수 있는 날이 하루 빨리 오면 좋겠다는 바램을 가져본다.

 

1. 1권은 400페이지, 2권은 560페이지... 2권엔 내가 보지 못한 아르장띠에 부근이 많아서 더욱 재미있게 보았다..

 

2. 1권은 조심스럽게 보느라 책이 깨끗한 반면... 2권은 확실히 펼쳐놓고 감상하니 더욱 좋다... 1권도 다시 펼쳐놓고 볼까 생각 중..

 

3. 2권은 본드로 제본한 부분이 떨어졌지만... 실로 제본한 부분은 튼튼하여 떨어지지 않으니 보기는 더 편하다..

 

4. 내 책상 앞에는 2년 전 다녀온 샤모니와 체르마트 관광용 팜플렛이 붙어 있어 알프스 지명이 낯설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