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사진집 <알프스 수직 파노라마의 세계>를 감상하고

빌레이 2012. 10. 23. 21:00

알프스 트레킹을 다녀온지도 벌써 만 2년이 넘었다. 정말 가슴 벅찼던 순간의 연속이었기에 지금도 그날의 기억이 생생하다. 책, 사진, 인터넷 등에서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나름 치밀히 준비한 덕에 모든 것이 즐겁고 행복했었다. 간접적인 정보로부터 얻은 지식과 직접 체험한 사실 사이엔 항상 괴리감이 존재한다. 몽블랑 주변을 거닐면서도 예상과 다른 풍광에 놀란 적이 많았다.

 

샤모니 계곡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는 산줄기에서 반대편을 바라보면 그 산을 온전히 바라볼 수 있다. 브레방이나 벨라샤 산장에서 바라보는 건너편의 몽블랑, 보쏭빙하, 에귀디미디의 전경은 웅장하고 장쾌하다. 플레제르 산장에서 바라보는 맞은편의 메르데글라스 빙하, 드류, 그랑드조라스의 풍광은 숨을 멎게 할 정도로 아름답다. 몽탕베르에서 빙하로 내려서는 철사다리는 아찔하고 내려가면 내려갈수록 빙하가 거대해보이고 무섭게 느껴진다.

 

허긍열 님의 최신 사진집 <알프스 수직 파노라마의 세계>는 책을 펼치는 순간부터 나를 샤모니몽블랑에서 트레킹 하던 때로 데려가버린다. 사진을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트레킹 하던 때의 감흥을 고스란히 일깨워 준다. 사진 찍는 이들에게 파노라마란 당연히 가로 그립을 연상시킨다. 하지만 이 사진집에는 모두 세로 그립으로 잡은 파노라마 그림들이 실려있다. 그런데도 답답함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샤모니 계곡을 사이에 두고 내가 서 있는 곳과 정면에 바라다보이는 맞은편 산줄기의 풍광을 한 화면에서 대하는 시원함이 느껴진다. 근경, 중경, 원경이 모두 왜곡 현상 없이 살아나는 효과가 있는 듯하다.

 

알파인 등반가인 작가 자신이 직접 체험하여 현장감 넘치는 사진들은 일반인들이 가기 힘든 알파인 지대의 풍광을 생생히 전해준다. 세로로 길게 펼쳐진 그림 속에서는 하얀 눈의 질감을 느낄 수 있는 근경, 설원을 걷는 등반가를 담은 중경, 멀리 병풍처럼 펼쳐진 원경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일렬로 행진하듯 걸어가는 트레커들과 호수에 반영된 그들의 모습, 자유롭게 노니는 야생동물들을 멋지게 포착하기 위해서 작가는 긴 시간을 기다렸을 것이다.

 

알프스의 아름다운 풍광을 최대한 가까이에서 담고자 했던 순수한 등반가의 열정이 독특하게 잡은 수직 파노라마의 시원한 그림들로 멋지게 탄생했다는 생각이다. 앞으로 생각날 때마다 자꾸 손이 갈 것만 같은 사진집이다. 산을 좋아하고 알프스를 꿈꾸는 친구들에게 선물해줄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기분이 좋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