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잠을 깼다. 뱃속이 불편하다. 지난 한 주간을 너무 경황 없이 보낸 것 같다. 평소보다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졸업한 제자들이 찾아와 반가운 얼굴을 볼 수 있었다. 보고 싶던 지인을 초청해 학생들과 특강을 듣는 소중한 기회도 가졌다. 사람 사는 재미를 많이 느꼈던 한 주였다. 그만큼 회식도 잦았다. 평소와 다른 식생활이 다른 사람보다 약한 나의 내장기관에 많은 부담을 준 모양이다. 장염 증세를 보이는 탓에 지사제를 먹고 약속 장소인 도봉탐방안내소로 향한다. 해식이는 근무라는 문자를 날린다. 마음 같아선 등반을 쉬고 싶지만 정신이와 은경이 둘만 하는 등반은 어쩐지 외로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등반을 망설이는 복잡한 마음과 함께 약속 장소에 제 시간에 도착한다. 정신이와 은경이가 먼저 와서 환한 얼굴로 나를 맞이한다. 내 상태를 설명하니 은경이는 등반하지 말자고 하고 정신이는 그냥 가자고 한다. 일단 산에 들고 보기로 한다. 오랜만에 와보는 도봉산이라 그런지 약간은 낯설다. 만월암을 곧바로 찾지 못하고 냉골 쪽으로 돌다가 대충 찾아든다. 한 시간 반 이상이 소요된 어프로치 동안 어느 때보다 많은 땀을 흘린다. 다행히 뱃속은 요동을 멈춘 듯하다. 기력이 없는 게 맘에 걸리지만 언제나처럼 친구들을 믿고 올라보기로 한다.
만장봉으로 향하는 낭만길 릿지는 작년 가을에 정신이가 이미 올랐던 곳이라서 그런지 마음은 편하다. 오늘도 늠름한 정신이의 선등을 믿고, 내가 쎄컨, 은경이가 주로 후등을 맡는다. 중간 중간 침니와 크랙 등반이 이루어지는 구간이 많다. 지난 주 올랐던 설악산과는 사뭇 다른 느낌의 바위라는 생각이 든다. 내장기관은 어느 정도 안정된 듯 한데 아무 거나 먹을 수 없는 상태라서 그런지 힘이 부족한 느낌이다. 그래도 친구들과 함께 오붓하게 오르니 안전함 속에서 등반의 재미도 서서히 찾아오는 것 같다.
중간 마디 중에서는 4 피치와 5 피치의 침니 구간이 내겐 힘겹게 느껴진다. 특히 어려웠던 5 피치에서는 정신이가 내 배낭을 먼저 끌어올려준 배려 덕택에 자유로운 몸으로 오를 수 있었다. 크랙 등반을 해야하는 라스트 피치도 만만치 않은 난이도를 보인다. 힘겨운 몸 상태로 친구들의 도움으로 정상에 오르니 비로소 마음의 평화가 찾아온다. 만장봉 정상에 서서 바라보는 주위 풍경도 시원하다. 낯설지 않은 도봉의 풍경이지만 낭만길 등반 후에 만장봉 정상에서 바라보니 감회가 새롭다. 좋지 않은 나의 몸 상태로 긴장했을 두 친구들에 대한 고마운 마음이 일렁인다. 하나의 줄을 묶고 등반을 같이 한 자일파티 특유의 일체감은 그 어디에서도 얻기 힘든 소중한 느낌이다.
1. 듬직한 선등자인 정신이의 간접빌레이를 믿고 오르면 마음이 편하다..
2. 출발 전 안부에서 장비를 착용하는 친구들..
3. 첫 마디 출발 직전 안전 등반을 다짐하는 친구들..
4. 첫 피치는 비교적 쉬운 구간..
5. 두 번째 피치까지도 그런대로 오를만한 코스..
6. 선등하는 정신이를 아래에서 줌인..
7. 등반 내내 오른쪽 옆의 자운봉을 오르던 팀을 볼 수 있었다... 아마도 배추흰나비길..
8. 낭만길은 여느 릿지등반처럼 나무에 확보해야하는 구간이 많다..
9. 3 피치 바위 틈에 자라고 있던 소나무가 멋져서...
10. 라스트 피치... 디에드르 크랙 구간..
11. 만장봉 정상에서 간단히 점심을 먹고...
12. 자일 하강 두 번이면 일반 등산로와 만난다..
13. 만장봉 정상에서 내려다본 선인봉 정상..
14. 어느 등반팀에서 티롤리안 브릿지를 설치해놓았다..
15. 뒤따라 올라온 팀에서 찍어준 정상 기념사진..
16. 몸 상태가 좋지 않아 힘들었지만... 친구들의 도움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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