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까지 논문을 한 편 썼다.
정확히 말하면 심사위원들이 지적한 사항들을 보완하는 수정 작업이다.
이번에는 좀 힘들었다. 새로운 논문을 쓴 것 만큼이나.
논문을 제출하고 나서 심사위원들의 지적 사항을 보면 처음엔 자존심이 상한다.
오랜 기간 동안 낑낑대며 연구한 결과를 논문으로 표현한 것이니
그런 논문에 대해서 왈가왈부 한다는 것이 저자로서는 달가울리 없다.
심사위원들의 찬사를 받은 논문을 쓴 적도 있다. 그럴 땐 기분이 좋다.
그러나 심사위원들이 많은 지적을 해주어도 이제는 고맙게 받아들인다.
우선은 내 논문이 관심을 가질만 하다는 것에 감사한다.
내가 생각하지 못한 관점을 제시하여 나를 연단시켜 주는 것도 큰 소득이다.
학자는 자존심을 버릴 때 발전하는 것 같다.
이번 논문 수정 작업 때도 힘들긴 했지만 많은 것을 얻었다.
어젯밤에 수정본을 보내고 홀가분함을 느꼈다. 탈고의 기쁨이다.
탈고 후에 남는 건 육체적 피곤함과 이상한 허탈감이다.
시험 끝난 학생들처럼 잠시 쉬어 가기로 했다.
그래서 오늘은 오전의 두 시간 강의를 끝내고 오후에 불암산에 올랐다.
박교수님과 둘이서 오랜만에 불암산 슬랩을 탔다. 시원했다.
정상 부근에서 비를 만났다. 바위를 모두 탄 후에 온 비라서 반가웠다.
고어텍스 자켓을 입고 산속에서 비를 맞으며 걷는 기분이 상큼하다.
연초록의 참나무 숲이 더욱 선명해진다. 모든 것을 깨끗하게 해주는 비가 참 좋다.
길바닥에 흐르는 빗물은 송화가루를 한 곳으로 모은다.
비는 보이지 않던 것을 보이게도 한다.
송화가루가 그렇게 많은 줄 몰랐다. 빗물이 흐르기 전에는.
산에 다녀와서 가져보는 잠깐 동안의 여유. 괜찮다.
앞으로 이와 같은 탈고의 기쁨을 자주 맛봐야 한다.
힘들어 오른 산에서 얻는 기쁨과 다르지 않은 기분이다.
이제 알프스 하이킹 가이드를 보며 몽블랑 산군의 아름다움에 취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