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KBS에서 방영하는 <영상앨범 산>을 본다.
다큐 형식으로 유명인과 등산하며 산행지를 소개하는 프로그램이다.
오늘 아침엔 박재동 화백이 월악산에 오르는 장면을 재미 있게 보았다.
몇 차례 다녀온 산이어서 익숙한 풍경들이지만 박재동 화백과 함께 산행하는 듯한 느낌이 전해지니 좋았다.
무엇보다 2년 넘도록 등산을 하지 못했던 박 화백이 천천히 자신의 체력과 보행 속도에 맞춰 걷는 모습이 내 눈을 사로잡았다.
다리를 다친 이후로 다시 산에 오를 수 있을 때는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를 자주 생각하는 내게
오랜 시간의 공백 후에도 여유롭게 산을 즐기는 박재동 화백의 자세가 좋은 본보기를 제공해주는 것 같았다.
천천히 걸으면서 자신의 생각과 호흡, 몸의 움직임, 자연의 숨결이 보조를 맞춰
같은 속도로 동행한다고 생각하니 힘들지 않다는 박 화백의 말이 인상적이었다.
화면에 비친 박재동 화백의 모습은 배가 불룩하고 몸도 많이 불어 있었다.
언뜻 보면 저런 몸으로 산행이 가능할까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수행자처럼 걷는 그 모습이 여간 편안해 보이지 않았다.
나도 다시 산에 간다면 저렇게 시작해보리라 하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찾아들었다.
<박재동의 실크로드 스케치 기행>이란 두 권짜리 책이 있다.
이 책을 보면서 여행할 때는 사진보다 스케치가 더 느낌 있고 좋겠다는 생각이 처음 들었었다.
간간히 화면으로 보이는 박 화백의 월악산 스케치도 단순미 속의 정겨운 느낌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그림 재주가 없다해도 스케치북 가지고 천천히 산길을 걷는 상상을 예전부터 했었는데,
다시 산에 다닐 수 있을 때 시도해보는 것도 괜찮겠지 싶다.
박재동 화백의 월악산 편을 보면서 대조적으로 생각난 것이 2주 전 방영된 '콘도르의 고향, 콜카 캐니언'란 부제의 <영상앨범 산>이다.
남미의 페루에 있는 잉카 트레일을 꼭 한 번 가보고 싶은 내게 그 꿈을 키워주고 좋은 정보를 제공해줄 것이란 생각에서 지켜보았다.
하지만 그 프로는 별로 좋지 않은 인상을 남겨주었다. 결국은 보지 않았으면 더 나았을 것 같은 프로그램이었다.
어느 여성 사진기자 한 분이 현지 가이드와 함께 콜카 캐니언 트레킹을 하면서 주변 풍경과 만나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아냈다.
대부분 트레킹하다 마주친 여행자들과 의미 없는 대화를 주고 받는 장면들로 이루어져 시종일관 산만한 분위기였다.
콜카 캐니언을 걷는 트레일 자체가 이국적이고 빼어난 풍광을 지녔기 때문에
트레킹 과정을 차분히 소개만 시켜주어도 시청자는 느낀 바가 컸을 것이란 아쉬움이 남았다.
머나먼 안데스 산맥의 멋진 계곡인 콜카 캐니언을 다녀온 자신을 어떻게든 드러내고자 하는 출연자의 모습과
조용히 월악산에 젖어드는 듯한 박재동 화백의 편안한 모습은 큰 차이로 내게 다가왔다.
두 사람의 대조적인 모습으로부터 그간 산에 다녔던 나의 자세를 반성해보니 부끄러운 게 많다.
라인홀트 메스너가 말한 "업적 중심의 산행"에서 나는 어떤 감동도 느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암벽등반을 하는 대부분의 동료들이 등반을 레저스포츠의 일환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혼란스러운 적이 많았다.
나 자신도 존재를 망각한 스포츠나 스트레스 해소 차원의 등반에 휩쓸려 다닌 적이 많았던 것 같다.
이제는 그런 자세를 버리고, 존재를 인식하는 행위로써의 등반을 생각하며, 그렇게 산에 오를 준비를 해야겠다.
<지난 겨울에 오른 월악산... 버스산악회 시간에 맞추느라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산행... 이제 이러한 산행은 그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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