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네 삶이란 결국 추억만들기가 아닐까? 지난 날들을 돌아볼 때 이러한 생각은 더욱 일리 있는 듯 하다.
온 힘을 다 받쳐 일 했던 순간은 기억이 난다. 하지만 그 때 했던 일의 세세한 내용은 머리 속에 별로 남지 않는다.
힘들어 올랐던 산행과 즐겁던 캠핑의 기억은 우리의 뇌리에 또렷히 남아 오래도록 잘 잊히지 않는다.
되돌아볼 때 아름다운 기억을 추억이라 부르고, 그 추억을 회상할 때마다 우리는 잔잔한 행복감을 느낀다.
금요일 밤, 영신 형, 순욱 형, 은경, 주성, 이렇게 넷이 함께 보낸 불암산 겨울 캠핑은 또 하나의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중계4동 주민센터에서 밤 9시에 우리는 만났다. 다들 20 킬로그램에 육박하는 배낭을 메고 한성대암장으로 향한다.
매스컴에선 영하의 기온이라는 호들갑이지만 아랑곳하지 않는다. 달도 밝고 별들도 초롱한 밤이다.
모모와 나는 얼마 전에 구입한 겨울용 다운침낭을 실전에서 사용해본다는 설레임도 있다.
암장에 도착하여 파사 형의 3인용 텐트와 내가 가져간 2인용 텐트 두 동을 설치한다.
순욱 형이 준비한 쭈꾸미 양념과 모모가 사온 삼겹살을 같이 구워 먹으니 그 맛이 일품이다.
소주와 막걸리 한 잔씩을 곁들이니 추운 것도 잊혀지고, 산 아래 아파트 불빛이 더욱 선명하게 보인다.
소나무 사이로 올려다본 하늘엔 달빛이 곱고 오리온 별자리의 가운데 삼형제가 또렷히 우리를 내려보고 있다.
서서히 추위를 느낄 무렵 잠자리에 든다. 남자들 셋이 나란히 눕는다. 모모는 혼자라서 조금 춥겠지 싶다.
나는 두 형들 가운데 거꾸로 자리를 잡는다. 텐트 안의 좁은 공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함이다.
파사 형과 순욱 형은 잠이 오지 않는 듯 계속해서 이바구를 주고 받는다. 다운 함량 넉넉한 침낭이 따뜻하고 좋다.
군대 얘기 주고 받던 두 형들은 간단한 호구 조사 후 수유중학교 동문 선후배임을 확인한다.
우리네 인연은 참 간단하다. 같은 학교를 졸업했다는 이유만으로 갑자기 몇 배는 가까워지니 말이다.
순욱 형과 영신이 형은 다시 텐트 밖으로 나와 오뎅 국물에 소주 나누며 본격적인 동문회 모드로 돌아간다.
나는 다운침낭의 달콤한 온기를 떨치지 못하고 그대로 잠을 청한다. 모모는 여전히 추위를 느끼는 모양이다.
중학 시절의 선생님들 얘기를 시작으로 한 두 형들의 동문회를 듣는 것만으로도 재미있다.
별반 다를 것 없는 학창시절 얘기는 같은 선생님을 기억한다는 것 자체가 커다란 발견이고 기쁨이다.
사람 사이를 연결해주는 것에 동질성 만큼 큰 요소가 있을까?
산이 좋아 겨울산 추위 속에서 캠핑하고 같은 중학교를 나왔다는 동질성으로 가까워지는 두 형들을 보면서 짙어지는 생각이다.
발이 시렵다는 은경이를 위해 순욱 형이 플리스 자켓을 발에 두르도록 배려해준다. 은경이의 추위가 한결 나아진 모양이다.
아침 나절엔 싸락눈이 쏟아진다. 텐트에 내리는 소리 때문에 처음엔 비가 오는 줄 알았다.
눈발도 날리니 서울에서 첫눈을 맞이한다는 사실이 문득 깨우쳐진다. 싸락눈도 눈인데 왜 첫눈이라는 생각이 안 들었을까?
산에서 그렇게 편하게 자보기는 처음인 것 같다. 밤새 춥고 매서운 바람이 불었지만 텐트와 침낭 덕택에 잘 잘 수 있었다.
아침 식사는 모모가 준비한 우렁이 된장국과 지난 밤에 먹고 남은 쭈꾸미 삼겹살에 콩나물을 곁들인 찜요리다.
남 부러울 것 없는 식사를 하고 학도암 방향으로 하산한다. 날씨가 잦아지면 바위에 붙어볼 요량이었는데 아쉽다.
겨울산의 추위 속으로 추억만들기 하러 들어갔던 그 밤의 기억들이 오래도록 잊히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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