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저자인 허긍열 씨로부터 선물 받고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번듯한 책으로 출판되었다면 여러 권을 사서 아는 이들에게 나눠주고 싶을 정도로 좋은 책이다. 어떠한 허위나 가식도 느껴지지 않은 책 <해골바위>가 등산 매니아들이 많다는 우리 나라에서 출판되지 못한 현실이 안타깝다. 중고등학교 참고서, 돈을 벌기 위한 경제 관련 서적, 입신양명을 위한 리더십 관련 서적들만 잘 팔리는 세태가 아쉽다.
지난 유월, 알프스에 가기 전 허긍열 씨에게 이메일을 보냈었다. 샤모니에 살고 계시다는 그 분을 한 번 뵙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샤모니에 머무르던 그 시기에 허긍열 씨는 한국 방문 중이셨다. 아쉽지만 만나뵙지 못했다. 7월 초에 나도 벨지움에서 귀국하여 어느 정도 주변 정리가 끝난 후 허긍열 씨가 운영하는 고알프스 홈피에 방문했다. 여전히 멋진 사진들과 최근 소식들이 올라와 있었다. 샤모니 알프스를 트레킹하던 기억이 새롭게 떠올랐다. 자연스레 허긍열 씨에게 안부 메일을 보냈었고, 답장 대신 대구에 사시는 장정미란 분으로부터 메일이 왔다. 허긍열 씨의 부탁으로 <해골바위>를 내게 부쳐주고 싶으니 주소를 가르쳐달라는 내용이었다. 며칠 후 <해골바위> 복사본을 택배로 받아볼 수 있었으니 고마운 마음과 함께 염치 없이 기쁜 마음이 교차했다.
책을 손에 넣은 과정부터 특별한 탓인지 다른 책에 비해 훨씬 소중한 마음으로 정독하게 되었다. <해골바위>는 허긍열 씨의 자서전 같은 기록이다. 어린 시절 얘기, 학창 시절 얘기, 등반기, 가족사, 등반 관련 서적에 대한 필자의 애착 등이 담겨 있다. 허긍열 씨가 1965년 생이고, 내가 1966년 생이니 거의 동시대를 살아온 삶답게 많은 부분에서 동질성을 느낄 수 있었다. 중학교 때까지 깡촌인 나주에서 부모님과 생활한 나의 어린 시절 놀이를 <해골바위> 앞부분은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냇가에서의 멱감기, 모래밭에서의 씨름놀이, 자치기, 칼싸움, 전쟁놀이 등에 대한 묘사는 내 입가에서 미소를 떠나지 않게 했다. 범생이였던 나에 비해 대구 근교의 산에서 암벽등반을 익힌 필자의 얘기는 친구의 모험담을 듣는 것 같은 설렘이 있었다. 히말라야 참랑 원정대를 비롯한 전문 산악인의 길을 걷게된 필자의 얘기에서는 특별한 진솔함을 느낄 수 있었다. 히말라야 원정을 다녀왔다는 자랑스러움보다 자유로운 등반을 하지 못해 답답했었다는 부분은 허긍열 씨의 진솔함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등반기 중 내게 가장 인상적이고 박진감 넘쳤던 부분은 북미 매킨리의 데날리 남벽 등반기이다. 셀파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히말라야 원정보다 등반가들 스스로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하는 알파인 등반의 진수를 엿볼 수 있었다. 물론 허긍열 씨 자신에게도 동상에 걸려 많은 고통을 동반했던 이 등반이 가장 기억에 남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헤르만 불의 전기엔 "Climbing without compromise"란 부제가 붙어 있다. 속임수 없는 등반, 정직하고 진실된 등반, 하인리히 하러가 말한 "절대순수"란 말과 헤르만 불이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했다. 상업적 등반이 판치는 한국 산악계의 현실 속에서도 <해골바위>는 때 뭏지 않은 순수함이 강호에 여전히 살아 숨쉬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책을 읽는 내내 허긍열 씨와 직접 대화 나누는 것 같은 재미가 있었다. 내가 샤모니에서 듣고 싶어 하던 얘기를 <해골바위>란 책에 오롯이 담아 전해준 허긍열 씨의 따뜻한 인간미를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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