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유럽 알프스와 한국 산에서 이루어지는 등산 활동의 차이점

빌레이 2010. 6. 21. 11:53

제목을 쓰고 보니 무슨 논문 제목 같다. 논문이라면 다양한 자료 수집과 치밀한 조사에 의한 결과여야 한다. 그러나 내가 여기 쓰고자 하는 얘기는 일주일 간 알프스를 트레킹하면서 떠올랐던 몇 가지 생각들이다. 틀릴 수도 있고 편협하게 보일 수도 있다. 다만 내 생각을 정리해보고 싶은 마음에 몇 자 적는 것이다. 앞으로 우리 나라에 없는 2천 미터 이상 높이의 산을 등반하고자 할 때 한 번쯤 고려해 볼 사항이라 생각한다.

 

1. 산이 다르니 산행 형태도 다르다.

우리 나라 산은 대체로 하루 산행에 적합하다. 좀 큰 산인 설악이나 지리산 정상도 모두 하루만에 다녀올 수 있다. 알프스에서는 얘기가 다르다. 산 아래에서 뻔히 보이는 정상이 거의 모두 험준한 침봉이다. 해발 고도도 4천미터를 넘는 것이 많다. 일반인들이 산 정상을 하루만에 다녀온다는 것은 무리다. 그러니 우리 나라와 다르게 케이블카나 등산전차가 많고 그 중간 기착지를 기점으로 산행도 이루어진다. 케이블카로 올라가서 내려오는 산길을 트레킹 한다거나, 산길을 올라가서 등산전차를 타고 하산하는 코스를 계획해도 하루가 꽉 차는 루트가 많다.

 

2. 일반 하이커와 전문 등반가가 노는 고도 자체가 다르다.

알파인 등반을 즐기는 사람들은 케이블카를 타고 4천 미터 가까이 올라간 후 거기서부터 등반 활동을 즐긴다. 암벽, 빙벽, 빙하트레킹 등을 즐기는 산 사람들이 굉장히 많다. 프랑스, 이태리, 스위스, 오스트리아, 독일 등에 명품 등반 장비 업체들이 즐비한 것이 당연하다. 수요가 많다. 우리 나라 산에서 이루어지는 암벽 등반이나 리지 등반과는 여러 면에서 차이가 난다. 어떤 것이 좋다 나쁘다의 얘기가 아니다. 산이 다르니 즐기는 방법도 다르고 그에 따른 장비도 환경에 맞게 진화해가는 것 같다.

 

3. 알프스에는 여름철에도 사계절이 상존한다.

우리 나라 산을 여름에 오를 때면 기껏해야 바람막이 자켓이나 우비 정도만 준비해가면 충분하다. 알프스에는 고도에 따라, 지형에 따라 하루에도 날씨가 급변하는 걸 체험했다. 아침에 산 아래에서 출발할 때는 더웠는데 2천 미터 이상 올라가니 고어텍스 자켓을 입어도 오한이 들었다. 폴라텍 같은 보온 의류를 가져가지 않았다면 아주 힘들었을 뻔 했다. 산의 기울기 자체가 우리의 산들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가파르기 때문에 시간당 높아지는 고도가 상당했다. 여름에도 3천미터 가까이는 설산이기 때문에 스패치, 아이젠, 피켈은 알프스 트레킹의 필수품인 것 같다.

 

4. 눈으로 가늠하는 산행 거리에 차이가 있다.

산을 많이 타다 보면 저 정도면 몇 시간 거리라는 짐작을 어느 정도 할 수 있다. 한데 우리 나라 산에서 얼추 맞아 떨어졌던 거리 감각이 알프스에서는 통하지 않았다. 공기가 맑은 탓에 산이 가까워 보이는 것인지, 주변 산들이 모두 높으니까 상대적으로 눈이 적응한 때문인지 알 수는 없다. 알프스의 산들은 워낙 가파르기 때문에 직선으로 나 있는 산길을 찾아볼 수 없다. 한계령 고개길 넘어가듯 대부분의 산길이 지그재그식이다. 그러니 산행 거리도 가늠하기 힘들다. 가끔 표지판에 소요 시간이 나와 있으나 이도 믿을 건 못 된다. 유럽인들의 신체 조건과 우리의 신체 조건이 다르기 때문이다. 내 걸음이 늦은 게 결코 아니었는데 대부분 표지판에 나와 있는 시간보다 더 걸렸다.

 

5. 유럽인들이 느끼는 알프스와 우리가 느끼는 알프스는 다르다.

리지 등반을 즐기기 전에 나는 불암산 슬랩을 걸어가는 사람들이 이상해보였다.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고 자연스러움 움직임으로 보인다. 알프스 근처에 사는 사람들이 느끼는 산은 리지를 해 본 사람이 슬랩 맛을 아는 것과 비슷한 것 같다. 실제로 샤모니에서 암벽 등반과 빙하 트레킹 교육을 받는 어린이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암벽과 빙벽에 익숙해 있는 사람들의 얘기를 아무 생각 없이 들어서는 안 된다. 우리가 북한산에서 흔히 만나는 아줌마 산꾼들을 샤모니나 쩨르마트에서 많이 만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들은 엄청난 장비를 아무렇지도 않은 듯 쉽게 다루면서 산을 즐기는 것 같았다. 에귀디미디에서 만난 한 아줌마는 이태리 꾸르마유로 넘어간다는 얘기를 너무 쉽게 했다. 그런데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다보니 그 코스는 몽블랑을 휘돌아 눈밭을 헤치고 나아가는 험난한 산길이었다. 익숙함의 차이가 산행 난이도의 기준 차이를 유발하는 것이다.

 

6. 알프스에는 등반 금지 구역도 가지 말라는 산길도 없다.

북한산에도 등반 금지구역 천지고 설악산, 지리산에도 가고 싶은 곳은 모두 금지구역이다. 사람들이 많이 다녀 산길이 파여 비 올 때 물길이 되니 막아야 한단다. 웃기는 얘기다. 비 올 때 실제로 삽 들고 올라가서 물길 잡아주면 쉽게 해결된다. 알프스 산길은 모두 담당자들이 있어서 철저히 관리하는 것 같다. 트레킹 하는 동안에 산꾼 보다 등로를 관리하는 작업자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2인 1조로 산길 곳곳을 다니면서 패인 곳을 보수하고 물매를 잡아준다. 우리의 관리공단은 그런 노력은 안 하고 가장 쉬운 방법인 산길 폐쇄 조치를 취한다. 알프스 산길에 사람 가지 말라는 푯말을 보지 못했다. 장비가 있고 없고를 떠나서 자기의 능력에 맞게 산을 즐기게 하는 것이다. 제발 우리의 국립공원 관리공단도 금지구역 감시하는 인력을 진짜 산길 관리하는 데에 투입해서 등산 애호가들이 맘 편하게 산을 즐길 수 있었으면 좋겠다.

 

7. 알프스 곳곳에 있는 산장들이 부러웠다.

우리 나라에도 백두대간을 양성화 해서 길목마다 산장을 설치했으면 좋겠다. 환경친화적으로 얼마든지 운영할 수 있다. 실제로 샤모니나 쩨르마트 인근의 산장들은 정말 깨끗하고 환경 친화적이었다. 대부분 민간인이 운영하는 산장이었고 깃발의 유무로 산 아래에서도 영업중인지 아닌지를 쉽게 알 수 있게 했다. 나는 설악산 중청 산장과 지리산 장터목 산장 화장실 냄새를 잊지 못한다. 제발 청결하게 관리하고 정당한 가격을 받고 운영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