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을 좋아하는 내가 유럽에 머물면서 알프스를 보지 않고 귀국한다면 두고 두고 후회할 것 같았다.
알프스를 내 발로 걸어서 속속들이 알고 싶은 소망이 항상 내 마음 한 구석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동안 여러 차례 알프스 곳곳을 여행한 적은 있다. 하지만 모두 관광객 수준을 넘지 못한 경험이었다.
잠깐 지나치는 여행지가 아니라 적어도 하이킹 정도는 즐기면서 알프스 인근에 며칠 간 머물고 싶었다.
유럽에서는 대체로 등산을 그 형태에 따라 알파인 등반, 트레킹, 하이킹 정도의 세 가지로 분류하는 것 같다.
알프스 산군에서 이루어지는 진정한 등반은 알파인 등반으로 암벽, 빙벽, 빙하 트레킹 등의 전문 등반가들이 즐기는 영역이다.
하루에 서너 시간 정도의 산길을 걷는 가벼운 형태의 등산을 하이킹이라 부르고,
하이킹보다 더 길게 때로는 산장 등지에서 캠핑을 하면서 먼 산길을 걷는 산행을 트레킹이라 한다.
내가 이번에 즐긴 알프스 산행은 하이킹보다는 길고 일반적인 트레킹보다는 짧은 것이라 하겠다.
책이나 인터넷을 통한 각종 정보를 통하여 그 동안 나는 알프스 트레킹에 대한 나름대로의 준비를 해왔다.
프랑스 샤모니 인근의 하이킹 코스는 책을 통해 여러 번 지명이나 코스를 외울 정도로 머리 속에 각인 돼 있었다.
스위스 쩨르마트는 그 동안 보지 못 했던 마터호른에 대한 그리움 때문에 이번에 다녀올 마음을 먹었다.
지금까지 산행을 하면서 항상 새로운 코스를 개발하고 약간 도전적인 마음 자세로 산을 탔던 것이 이번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현지의 등산 가이드북에 얽메이지 않고 지도와 나의 산행 능력에 따라 내가 가고싶은 곳을 마음껏 다닐 수 있어서 좋았다.
샤모니에서 4박 5일, 쩨르마트에서 3박 4일 동안을 온전히 등산에만 집중할 수 있어서 행복했다.
혼자 하는 산행이 조금은 외로울줄 알았는데 실제는 그렇지 않았다. 새벽 같이 일어나 그 날의 산행 계획을 짰다.
날씨가 흐리면 산행 코스를 길게 잡고, 청명한 날에는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 멋진 조망을 먼저 즐겼다.
하루 5 시간에서 8 시간에 이르는 산행을 매일 해도 전혀 힘들지 않았다. 산행을 마치면 호텔에서 샤워하고 쉬는 시간이 좋았다.
쉬는 시간 내내 그날 그날의 산행 루트와 느낌을 일기장에 적었다. 일기장 여백이 부족할 정도로 쓰고 싶은 글이 넘쳤다.
하루의 산행을 정리하고 나면 샤모니와 쩨르마트 시내를 어슬렁거리며 저녁 먹을 레스토랑 찾는 일도 즐거웠다.
등산장비점이 주를 이루는 상가, 산행 서적이 넘쳐나는 서점, 알프스의 황홀한 풍경을 담은 사진과 그림들을
구경하며 거리를 배회하는 일은 정말로 재미 있었다. 두 마을이 내가 좋아하는 것만 모두 모아 놓은 곳 같았다.
예전에 출장 차 머문 적이 있는 인스부르크나 인터라켄보다 샤모니와 쩨르마트가 내게는 더 좋았다.
결과적으로 이번 알프스 여행을 스스로 평가해보자면 100점 만점에 98점의 점수는 받을만 한 것 같다.
샤모니에서 만나고 싶었던 <몽블랑 익스프레스>의 저자 허긍열 씨를 일정이 맞지 않아 만나 뵙지 못했던 점,
쩨르마트에서 그렇게 보고 싶던 마터호른이 4일 내내 구름에 가려서 일부분 밖에 볼 수 없었던 점이 아쉬운 대목이다.
마터호른을 하나님께서 완전히 보여주지 않으신 건 다음에 사랑하는 이와 같이 와서 보라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앞으로 내 일기장에 빼곡히 메모해 두었던 기록들을 시간 날 때마다 꺼내어 산행기로 정리할 생각이다.
이번 알프스 산행의 간략한 여정은 다음과 같다.
- 6월 5일 (토) : 새벽 04시 20분 루벤 숙소 출발, 루벤역 05시 09분 발 기차로 브뤼셀 공항 도착, 06시 40분 발 제네바 행 비행기 탑승,
08시 제네바 공항 도착, 08시 47분 제네바공항에서 마르티니 행 스위스 기차 탑승, 마르티니 부터 스위스 등산 전차, 버스,
다시 프랑스 등산전차 몽블랑 익스프레스 타고 샤모니몽믈랑역 도착한 시간이 12시 33분.
호텔 체크인 후 오후 1시 30분부터 7시까지 샤모니-플로리아산장-플레제르전망대-쁘라마을-샤모니 코스 산행.
- 6월 6일 (일) : 아침 8시 10분 에귀디미디 첫 케이블카 이용하여 몽블랑전망대가 있는 3842 미터 에귀디미디에 오름,
에귀디미디에서 이태리 헬브로너 전망대까지 왕복 곤돌라 이용, 에귀디미디에서 쁠랑드레귀로 케이블카 하산,
쁠랑드레귀(2317 미터)부터 샤모니(1035 미터)까지 하산길 트레킹 4 시간 정도 소요.
- 6월 7일 (월) : 샤모니-벨라샤산장-브레방호수(2290 미터)-벨라샤산장-가이앙암장-샤모니 코스의 약 8 시간에 이르는 등반.
- 6월 8일 (화) : 몽탕베르 등산전차 탑승, 메르드글라스빙하 암벽용 사다리 체험, 그랑드조라스, 드류의 멋진 모습에 황홀,
모테 산장 거쳐 4 시간에 이르는 하산길 트레킹. 저녁에는 샤모니 시내 산책, 등산서적 영문판 <Hermann Buhl>과
<The Bible of Mont-Blanc Hiking>을 구입.
- 6월 9일 (수) : 아침 일찍 러스킨 바위 다녀오는 1 시간의 산책 후 몽블랑익스프레스 타고 스위스로 이동.
오후 1시경에 쩨르마트 도착하여 시내 산책 및 푸리를 다녀오는 4 시간 동안의 하이킹.
- 6월 10일 (목) : 아침 8시 반경 출발하는 고르너그라트 등산전차로 전망대 오름, 3089 미터의 고르너그라트 전망대 조망 즐김,
등산전차로 눈이 녹아 있는 2582 미터 고도의 리펠베르그 역부터 트레킹 시작. 나만의 7 시간 트레킹 코스를 즐김.
루트는 리펠베르그(2582)-리펠랄프(2211)-그룬제호수(2300)-뮤지제호수-핀델른-티에펜마텐-쩨르마트.
- 6월 11일 (금) : 내 생애 가장 모험적이고 멋졌던 8 시간의 산행, 루트는 쩨르마트-에델바이스산장-트리프트-회발멘-쩨르마트,
1620 미터의 쩨르마트에서 2700 미터의 설계까지 눈 쌓인 길을 개척하며 전진했던 산행.
- 6월 12일 (토) : 아침부터 비가 내려 시야는 제로, 마터호른 글레이셔 페러다이스 (3883 미터) 케이블카 탑승 포기,
기차를 이용해 제네바공항 인근 호텔 체크인, 전반 중반부터 한국-그리스 축구 경기 시청.
- 6월 12일 (일) : 아침 06시 50분 비행기로 제네바 출발, 아침 10시경 루벤 숙소 도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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