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겨울 아내와 둘이서 삼청동의 예술영화관 선제에서 <위대한 침묵>이란 영화를 본 적이 있다. 알프스의 외진 곳에 자리한 카르투지오 수도원을 찍은 다큐멘터리로 두 시간 사십여 분 길이의 짧지 않은 영화이다. 이 영화의 감독은 수도원에 카메라를 비추기 위해 16년 동안이나 수도원측을 설득했다고 한다. 대사가 거의 없는 그야말로 침묵의 의미를 생각하기에 충분한 수작으로 기억된다.
고독한 수도사들의 생활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이 영화가 나는 전혀 졸리지 않았고 시종일관 집중할 수 있었다. 그런 고풍스런 유럽의 성에서 고독한 수도사들의 삶을 조금이나마 경험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한데 지금 내가 이 글을 쓰고 있는 내 방이 바로 중세 시대에 수녀들이 거주했던 공간이다. 베긴회라는 독특한 여자들의 신앙공동체가 벨지움 지역 곳곳에 있었다. 그 중의 한 곳이 루벤에 있는 그로트 베긴호프(Groot Begijnhof)이다. 그로트는 화란어로 크다는 뜻이다. 영어의 그레이트나 그랜드 정도로 생각하면 되겠다.
현재 루벤에 있는 베긴호프는 루벤대학 소유이고, 나 같은 비지터(visitor)들을 위한 게스트하우스로 사용되고 있다. 번지 수로 보면 백여채가 넘는 호수를 가지고 있으므로 중세 시대에는 상당히 큰 규모의 종교 공동체였을 것이다. 건물 내외부는 많은 수리가 이루어져 있고, 특히 내부 설비는 완전히 현대화 되어 있다. 예전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은 담장과 골목 바닥의 돌로 된 포장도로 정도이고 외관은 옛것을 그대로 복원해 놓았다. 이 곳에 입주하기 위해서는 루벤대학 교수의 추천과 방문학자로서 정식 등록이 이루어져야 한다. 조금은 복잡한 과정이지만 난 이 곳에서 삼 개월을 보내고 싶어서 육 개월 전부터 모든 과정을 진행시켜 왔었다. 이 곳 생활은 현대식 아파트보다 분명 불편하다. 하지만 그 불편이란 것은 생각하기 나름이다. 내겐 한국에서 맛보지 못한 많은 것을 경험해보고 있고, 옛 수도사들의 침묵 분위기 정도는 느낄 수 있다는 것이 대단히 만족스럽다. 우선 베긴호프 내에는 차가 다니지 않기 때문에 아주 조용하다. 새소리와 함께 아침을 시작한다. 커튼만 젖히면 푸른 잔디와 예쁜 꽃나무가 있는 후원이 온전히 내것이다. 한 블록 너머엔 조그만 운하가 시냇물처럼 흐르고 성당에선 매 30분마다 정겨운 종소리가 들린다. 길거리 쪽 창문으로 보면 단체 관광객들이 지나가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유럽 사람들은 대도시보다 중소도시의 이런 역사 유적을 관광하기 좋은 곳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영화 <위대한 침묵> 속의 수도사들은 지극히 단순하고 반복적인 기도와 묵상 시간을 일상으로 보낸다. 나도 역시 혼자이기 때문에 단순한 삶은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런데 인터넷이 설치되어 있으니 너무나 좋다. 인터넷 라디오 켜 놓고 있으면 시간만 한국보다 일곱 시간 느리게 갈 뿐 한국에 있는 것과 별 차이가 없다. 가족이 함께 하지 않으니 외로운 건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이렇게 보내는 시간도 인생에선 소중한 시간임을 분명히 느끼고 있다.
1. 베긴호프가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임을 설명해주는 현판... 네 가지 언어로 설명되어 있다...
2. 베긴호프 외벽... 오백 년 넘은 담장의 원형이 아직도 남아 있다... 조금은 휜 채로...
3. 베긴호프 내부 골목... 바로 내가 사는 골목이다... 이 앵글로 찍은 사진을 베텔스만의 세계문화유산 책에서 본 적이 있다...ㅎㅎ
4. 내가 매일 오가는 골목길... 바닥이 옛날 돌들이라서 울퉁불퉁... 첫 날 30 킬로 넘는 슈트케이스 끌고 갈때는 원망스러웠다는...ㅎ
5. 위 4번 사진에서 골목 오른쪽 끝에 있는 자전거들 사이가 내 숙소... 66-1번지... 한 대문으로 세 집이 출입...
6. 내가 사용하고 있는 방... 우리네 콘도처럼 모든 시설이 완비되어 있다... 인터넷, 티브이, 조리시설... 등등...
7. 내 방의 다른 쪽 모퉁이... 혼자 쓰기엔 충분히 넓은 공간... 내 방은 1.5층 높이이고... 부엌과 욕실은 1층에... 복층 구조...
8. 안뜰을 볼 수 있는 창문... 창문 열고 정원 내려다보며 밥 먹을 땐 부러울 게 없다... ㅎㅎ... 창문도 옛날 방식으로 열린다...
9. 한 블록에 있는 여러 방에서 공유할 수 있는 안마당... 바로 이 나무가 내 창문 옆에 위치한다...
10. 계단을 내려서면 부엌과 욕실이 위치한다... 아래 왼쪽 발판이 있는 곳으로 나가면 후원이다...
11. 부엌에서 문을 열면 바로 후원으로 연결된다...
12. 베긴호프 입구 성당 옆에 있는 예수십자가상... 벨지움은 국교가 카톨릭이다...
13. 베긴호프를 가로지르는 운하를 건너기 위한 다리... 운하는 시냇물처럼 흐르기 때문에 정서 상 좋은 것 같다...
14. 베긴호프 우물광장... 에전엔 이 곳이 수녀님들의 만남의 장소였을 것... 그 때의 활기가 느껴지는 듯...
15. 베긴호프는 루벤대학의 정식 방문자들을 위한 숙소이므로 1년 이상 머무를 수는 없다... 짧은 기간에도 창문에 꽃을... 방 주인은 유럽인이 틀림없다...
16. 베긴호프 후문으로 향하는 길... 저 멀리 보이는 문이 후문...
17. 밖에서 본 베긴호프 후문... 저 수도원 같은 곳에 삼 개월 동안 살면 마음이 좀 정화될려나?... 아니겠지?...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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