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트레킹

함박눈과 함께한 고대산 신년산행 - 2010년 1월 2일 토요일

빌레이 2010. 1. 4. 04:45

광덕산에 갈 예정이었습니다.

모모 외에는 응해주는 이가 없어 망설였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니 눈발까지 날립니다.

눈 오는 날 차 가지고 나서면 고생이란 생각에 전철타고 수락산이나 갈 요량으로 약속 장소에 나갑니다.

모모와 둘이서 4호선 지하철을 타고 당고개역으로 향합니다.

마음 속엔 서울을 벗어나고픈 생각이 강합니다. 모모에게 기차타고 철원 신탄리에 있는 고대산 가자고 제안합니다.

쌍문역에서 창동역 가는 도중에 우리는 즉흥적으로 산행지를 바꾸고 창동역에서 1호선으로 갈아탑니다.

예전에 의정부역에서 국철로 갈아탔던 기억 때문에 의정부역에서 하차합니다.

하지만 어디에도 국철 갈아타는 곳은 보이지 않습니다.

편의점 아저씨께 물어보니 동두천역에서 갈아타는 것으로 변경되었다고 합니다.

다시 1호선 타고 동두천역까지 갑니다. 그동안 눈발은 함박눈으로 변해 있습니다.

동두천역에서 9시 50분발 국철을 타고 우여곡절 끝에 신탄리역에 도착합니다. 국철은 50분 정도 소요됩니다.

 

어릴적 교과서에서 보았던 "철마는 달리고 싶다"의 표지판이 있었던 곳이 바로 신탄리역입니다.

남북이 갈라지기 전에는 원산까지 가던 기차가 더 이상 갈 수 없기 때문에 철도 중단역이란 푯말이 있습니다.

끊어진 철도의 아픔을 포근히 감싸주듯 그렇게 함박눈은 신탄리역을 순백으로 물들입니다.

올 겨울 들어 가장 많은 눈을 보는 날입니다. 그것도 가장 북쪽의 청정한 공기 속에서.

신탄리역에서 10여분 걸어가면 고대산 등산로 입구가 나옵니다.  

고대산은 해발고도 832 미터로 경기도 연천군과 강원도 철원군에 걸쳐있습니다. 휴전선과 가장 가까운 산이기도 합니다.

 

산행은 힘들었습니다. 전날부터 감기몸살 기운이 있었던 저는 산에 올라가기 싫은 몸상태였습니다.

모모도 최근 건강이 좋지 않은 상태입니다. 그래도 함박눈 쌓인 순백의 산을 두고 어찌 포기할 수 있겠습니까?

천천히 올라보기로 하고 산에 들었지만 오르는 내내 많은 눈이 쌓인 등로는 우리를 힘들게 했습니다.

올라가는 내내 누가 뒤에서 끌어내리는 것 같은 느낌 때문에 몸이 무겁고 약간의 짜증이 날 정도로 힘겨웠습니다.

그런 나를 뒤에서 보며 따라오던 모모가 중간에 하산할 것을 권유합니다.

중간에 하산하면 기분만 더욱 상할까봐 그대로 전진합니다. 이보다 더 힘들었던 산행을 생각하면서 힘을 냈습니다.

두 시간여의 사투 끝에 첫 봉우리인 대광봉에 이르니 조금 살 것 같았습니다.

모모도 다리에 쥐가 날 정도로 힘든 오르막길이었습니다.

 

대광봉에서 그냥 하산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눈앞에 보이는 정상의 유혹이 더욱 강하게 우리를 당겼습니다.

삼각봉 지나서 정상인 고대봉에 이르는 능선길은 30 분이 채 걸리지 않았습니다.

힘겹게 오른 만큼 정상에서의 희열은 남달랐습니다. 구름이 능선을 보여주기와 가려주기를 반복합니다.

드넓은 철원평야가 아스라히 보이고 나목들이 하얀 눈밭에 꽂혀있는 산야의 속살이 아름답습니다.

내려오는 길엔 잠깐 동안 눈썰매도 타보고, 어릴적 그랬던 것 처럼 푹신한 눈에 누워 눈도장을 찍어보기도 합니다.

눈쌓인 낙엽송 숲길을 지나니 힘겨운 산행이 끝납니다. 다섯 시간 정도의 눈 산행이었습니다.

모모도 나도 힘들었지만 네 시에 출발하는 기차를 타기 위해 쉬지 못하고 곧바로 기차에 오릅니다.

매시간 마다 정시에 신탄리역에서 동두천역으로 가는 기차는 출발합니다.

 

힘든 산행의 기억은 오래 남습니다.

우여곡절 많았던 2010년의 첫 산행인 고대산 눈 산행도 기억 속에 오래 남을 것 같습니다. 

자신의 힘든 몸 상태는 내색하지 않고 산행 동료로서 끝까지 함께 해주었던 친구 모모에게 고마운 마음 전합니다.

이 날의 산행이 모모를 더욱 좋은 산친구로 기억하게 되는 계기가 될 것 같습니다.

산행의 쉽고 어려움은 산에 있지 않고 산을 타는 사람의 몸과 마음가짐에 있음을 깨닫는 하루였습니다.

 

 

1. 끊어진 철로의 상처를 포근히 감싸듯... 신탄리역엔 함박눈이 내리고 있었다.

 

2. 기차타고 갈 수 있는 산행지로 고대산은 인기가 높다... 기차에서 내린 대부분이 거의 등산객...

 

3. 고대산 등산로 입구... 입장료는 천 원... 왜 받는지는 나도 모름...

 

4. 처음엔 임도를 따라 오른다... 눈이 많이 쌓여 임도도 힘들었다...

 

5. 등산로 중간에 이런 다리를 만나면 괜히 기분이 좋아진다...

 

6. 이 다리는 예전엔 없었는데 새로 생겼다... 하산길 말미에 계곡을 가로지른다...

 

7. 근래에 이렇게 많고 깨끗한 눈은 처음 본다...

 

8. 첫번째 봉우리인 대광봉 정상... 제1등산로와 제2등산로가 만나는 지점... 여기서 제2등산로로 하산하고 싶었다...

 

9. 휴전선에서 가장 가까운 산답게 군부대가 산 정상부에 있다... 물자를 나르는 모노레일도 있다...

 

10. 나목과 하얀 눈으로 덮인 산줄기... 속살이 다 보이는 겨울산은 관능적인 모습... 내가 너무 야한가? ..ㅎㅎ

 

11. 대광봉에서 고대봉에 이르는 능선길은 구름 속의 산책... 구름이 오락가락...

 

12. 대광봉에서 줌으로 당겨본 고대봉... 힘든 몸상태 때문에 하산의 유혹을 떨칠 수 있었던 모습...

 

13. 구름은 산을 넘지 못하고... 삼각봉에서 고대봉에 이르는 능선길...

 

14. 제1등산로 첫번째 안부에서 식사 중인 커플... 모모와 나도 이 곳에서 빵과 따뜻한 차 한 잔으로 점심을 대신하고...

 

15. 하산할 때는 살만해서리 드러누워 눈도장도 찍어보고...

 

16. 하산길 막바지의 낙엽송 숲길... 눈 쌓인 숲속이 이국적인 정취를 자아낸다...

 

17. 시원하게 하늘 위로 뻗은 나무처럼... 하나님의 사랑으로 올 한 해 모든 일들이 형통하기를...

 

18. 모모는 최근 건강이 좋지 않다... 그래도 힘든 내색없이 산행을 마칠 수 있게 해주었다... 고맙다 친구야!!

 

19. 힘들어도 사진 찍을 때 만큼은 환하게... ㅎㅎ

 

20. 고대산 산행은 기차가 있어 더욱 운치있다... 동두천역에서는 매시 50분 출발, 신탄리역에서는 매시 정각에 발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