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다도연가 산행대장직을 내려놓으며

빌레이 2009. 12. 18. 10:34

친구인 에이스가 다도연가의 새로운 산행대장이 되었다. 자연스레 지난 몇 년간의 산행대장 노릇을 돌아보게 된다.

따오기 형과 파사 형이 이끌어 오던 산악회를 얼떨결에 캐빈과 함께 떠맡았던 것이 2005년 어느 날이다.

그 이후로 잠깐 동안의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친구이자 회장인 캐빈의 변함없는 지원 하에 대과 없이 산행대장직을 수행해왔다.

무엇보다 큰 사고 없이 산행을 즐길 수 있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한다.

 

매주 산행 계획을 구상하고 게시하면서 행복했었다. 업무에 지친 심신이 산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상쾌해지곤 했다.

식당에서 맛있는 메뉴를 앞에 놓고 무얼 먹을까 고민하듯 산행지와 산행 코스를 구상하는 것이 즐거운 일이었다.

얼추 5년 가까이 산행대장직을 맡아 오면서 기분 좋은 일들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좋지 않은 기억은 1퍼센트를 넘지 않는다.

산행 스타일도 다양해지고 그에 따라 우리의 지평도 넓어졌다는 데에 큰 의미를 두고 싶다.

 

처음엔 리지산행이 무조건 좋았었다. 실력이 있건 없건 바위에 붙는 것 자체가 즐거움이었다.

불암산에서 한 번의 추락사고로 두 달여 동안 산에 가지 못한 적이 있었다. 한동안 바위가 무서워졌다.

산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였다. 무릎 인대만 다친 사고였지만 추락을 경험한 건 대단한 발견이었다.

불암산에서의 추락 경험이 없었다면 라인홀트 메스너의 명작 <죽음의 지대>를 그렇게 생생히 이해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리지가 시들해질 무렵 산행 자체가 무료해지고, 어딜 갈까 고민하는 것도 새로운 스트레스가 되었다.

아마 감악산에 파사 형과 둘이서 갔을 때 매너리즘에 빠진 우리의 산행을 이야기 했던 것 같다.

그 시기엔 실제로 산행이 즐겁지 않았다. 그냥 습관적으로 가는 것 뿐이었다. 주말에 집에 있는 것은 더욱 심심하니까.

야구 선수의 슬럼프처럼 등산에도 슬럼프가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슬럼프는 시간이 약이다. 잘 견디면 반드시 나중에 도움이 된다. 내게 찾아온 등산 슬럼프도 부지런히 산에 다니니 없어졌다.

다시 새롭게 찾아온 산은 탈 때마다 새로운 감동의 연속이었다. 설악에 자주 갔다. 캠핑도 했다. 야등도 좋았다.

산불조심으로 설악 전체가 통제되던 시기에 저항령에서 비박하던 그때가 정말 좋았다.

저항령엔 밤새 시원한 바람이 불었고, 따오기, 울림산방, 캐빈, 가우스는 그 훈훈한 바람 속에서 밤하늘의 별을 보며 잠들었다.

 

파사, 캐빈, 가우스, 셋이서 염초, 숨은벽, 만경대 리지하던 때도 좋았다.

셋이서 비 맞으며 힘겹게 올랐던 설악의 공룡능선과 길을 개척하며 올랐던 설악의 만경대도 잊을 수 없는 추억이다.

우리의 산행기와 산행앨범에 남겨진 수 많은 순간들 하나 하나가 내게는 소중한 자산이 아닐 수 없다.

2009년 한 해는 에이스와 모모가 함께해서 더욱 뜻깊었다.

두 친구는 나의 모든 산행 경험과 일천한 노하우를 가장 잘 이해해주고 스폰지처럼 흡수했던 이들이다.

신임 산행대장이 된 에이스는 산에 대한 도전 정신과 레슬링 선수 출신 다운 체력을 갖춘 훌륭한 친구이다.

앞으로 다도연가의 산행이 진일보 할 것이란 기대감에 흐뭇한 마음이다.

 

돌이켜보면 나의 독선적인 산행 운영 방식 때문에 상처 받았을 회원님들이 있을 것이다. 그분들에게 죄송한 마음이다.

산에서의 단체 행동은 단호한 결정을 요할 때가 많다. 그래서 산행대장이란 직함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큰 사고에 대한 예방책과 다도연가 본연의 산행 스타일을 견지하기 위한 노력 때문에 본의 아닌 마음의 상처가 있을 수 있다.

난 그런 부분에 있어서 세련되게 대처하지 못한 점이 있음을 인정한다. 그리고 그 부분에 대해서 깊이 사과 드리는 바이다.

 

새로운 산행대장님은 이러한 부분을 잘 대처하리라 믿는다.

감히 회원님들께 당부드리는 말씀이 있다. 산행하는 순간 만큼은 전적으로 산행대장님과 회장님의 의견을 지지해주시라는 것이다.

산행의 만족감을 높이고, 앞으로도 다도연가가 좋은 모습으로 지속되기 위한 기본 중의 기본 예의라 생각되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론 앞으로 1년여 기간 동안 여러분들과 자주 산행하기 힘들게 되어 죄송한 마음이다.

인생 후반전을 새롭게 준비한다는 각오를 가지고 내년 일년을 보낼 예정이다.

본연의 임무인 연구와 교육에 있어서 많은 부분을 채우고 싶다. 그래도 마음은 항상 다도연가를 떠나지 않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지금까지 음으로 양으로 지원해주신 친구들과 형들, 회원님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따오기 형, 형이 있어서 다도연가가 시작되었고, 항상 나를 감싸주셨던 그 넓은 마음이 좋았습니다.

파사 형, 형과 함께한 산행은 언제나 즐거웠어요. 바위에선 항상 든든한 버팀목, 형과의 대화는 항상 저를 생기있게 했어요.

캐빈, 너와 함께 오른 산이 몇 개인지 모르겠구나. 변변치 못한 친구를 믿어주고 묵묵히 지원해준 그 마음 항상 간직하마.

에이스와 모모, 너희들이 있어서 산행이 더욱 즐거울 수 있었다. 믿어주고 따라주고 지지해준 그 마음이 고마웠다.

에코, 에코산악회와 가교 역할을 해주고 사진을 알게 해준 친구에게 감사한다. 다도연가도 계속 지지해주기 바란다.

무심 형님, 자주 나오지 못하셔도 형님께서 다도연가를 얼마나 소중히 생각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답니다. 고맙습니다.

엉아 형과 울림산방 형, 술은 형들하고 더 찐하게 마신 것 같아요. 이제는 한 가족 같은 두 분의 마음 씀씀이를 잊지 않겠습니다.

아수다와 거미, 두 친구의 생기 발랄함이 다도연가를 더욱 활기있게 해주니 고마웠다. 앞으로도 자주 산행에 참가하기 바란다.

여기에 언급하지 않은 많은 회원님들, 님들께도 다시 한 번 깊이 감사드립니다.

 

메리 크리스마스!

 

가우스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