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츠 카프카의 대표작 <성>에서 주인공 K는 결국 성에 들어가지 못한다.
성에 들어가는 것이 목적이지만 성 주변만을 헤매이다 고독과 절망 속에 빠지고 만다.
요즘 대학생들의 모습 속에서 나는 카프카의 <성>이 자주 연상되곤 한다.
어느 것 하나에 집중하지 못하고 주변만 서성거리다 정작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모습을 종종 보게 된다.
안타깝다. 대학생들의 이런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는 선생의 입장은.
졸업 이후 취직되지 않을 것이 두려워 무작정 졸업을 늦추고 본다.
한 두 해 휴학하는 건 기본이다. 해외 어학연수나 배낭여행은 이제 필수처럼 돼버렸다.
방황하는 학생들이 종종 면담하러 찾아온다. 그때마다 일단 그들이 안고 있는 고민을 잘 들어주려고 노력한다.
내가 학생들의 면담에 대응하는 방식은 간단하다.
우선 학생들이 가지고온 문제를 편안하게 풀어 놓을 수 있도록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만든다.
그러면 어렵잖게 그들이 안고 있는 문제점과 해결 방안이 어렴풋이 보인다.
나도 그들만한 때가 있었기에 주로 내가 겪은 비슷한 고민과 경험담을 가감없이 해준다.
도덕선생님 같은 모습은 좋지 않다. 교과서에서 배운 것처럼 올바르게 살아라 하는 훈계는 면담자에게 도움을 주지 못하는 것 같다.
오히려 내가 겪은 유사한 고민을 털어 놓을 때 힘을 얻는 것 같다.
"교수님도 그런 때가 있었어요?" 내게 면담 받으러 온 학생들은 거의 모두가 이런 말을 한다.
지금의 내모습만을 보고 있는 그들에겐 내가 아무 고통이나 노력없이 타고난 두뇌만으로 이 자리에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싶다.
누구에게나 삶의 고통이나 무게는 있는 법이다. 어떻게 극복하고 어떤 철학을 가지고 살아가는지가 성패를 좌우한다.
면담 온 학생들에게 내가 평소 생각하고 실천하고 있는 얘기들을 진솔하게 말해줄 뿐이다.
그 얘기의 본질은 생각과 행동 사이의 간격을 가능한한 없애라는 것이다.
생각만 하고 행동하지 않으면, 생각했던 그 시간만 아깝고 공허한 것이 되고 만다.
자기가 생각하고 있는 것이 자기에게 재미 있고, 잘하고, 옳은 일이라면 재빨리 행동에 옮기라고 권한다.
단, 주의할 것이 있다. 재미, 재능, 올바름에 대한 판단을 정확히 해야한다. 이 세가지가 동시에 만족되면 은사라고 한다.
가령 자기가 도박에 흥미를 느끼고 잘 한다고 해도, 도박 자체가 옳은 일은 아니기 때문에 은사일 수 없다.
재미 있다 없다는 자신의 주관적 판단인 것 같다. 하지만 잘한다 못한다는 기준은 자신이 결정하면 안 된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기가 재미를 느끼면 잘 한다고 착각하기 쉽다. 잘 한다는 기준은 객관적이어야 한다.
내가 좋아하는 성경책 중에 야고보서가 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믿음이 아니다."가 핵심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명저 <행동하는 양심으로>에서 저자는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양심이 아니다"라고 했다.
말과 구호가 난무하는 세상이다. 올바른 철학적 사고를 가지고 행동에 옮기는 간격이 좁을 수록 삶은 더욱 행복해지는 것 같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내가 반성하는 점은 바로 이 것이다. 내 생각을 얼마나 많이 실천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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