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저에게 가장 좋아하는 작가 한 명만 꼽으라고 한다면,
도스토예프스키를 선택하는 데 주저함이 없을 것입니다.
인간의 내면 세계를 가장 치열하게 파고들었던 그의 천재적 광기를 흠모하기 때문입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처녀작은 <가난한 사람들>입니다.
그의 다른 소설들에 비해서 아주 짧은 글이지만, 대중적으로 가장 많은 사랑을 받았던 작품입니다.
청년시절에 몇달 동안 연애소설을 섭렵했던 적이 있습니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좁은 문>, <데미안>, <마농레스꼬>, <적과 흑>,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무기여 잘있거라>, <독일인의 사랑> 등이 생각납니다.
그 때 읽은 연애소설 중에서도 제가 최고로 감명 받았던 것이 바로 <가난한 사람들>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하급관리인 주인공 마까르와, 고아가 되어 갖은 고난을 겪고 있는 바르바라가
주고 받는 감미롭고도 순결한 편지들로 이루어진 소설입니다.
가난과 고난 속에서도 체면과 양심을 잃지 않았던 마까르.
사십이 넘은 그의 바르바라에 대한 사랑은 절대적인 것이었습니다.
이성에 대한 단순한 사랑이 아닙니다. 한정된 자선이나 동정은 더욱 아니었습니다.
이보다 훨씬 더 깊고 높은 지고지순한 사랑이었습니다. 결말은 슬픈 사랑입니다.
이문열의 소설 <레테의 연가>도 편지글 형식이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그 책을 읽을 때도 모티브가 되었던 원작이 <가난한 사람들>이었을 것이란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만큼 <가난한 사람들>은 저의 뇌리에 오래 자리하고 있는 작품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제가 나태해질 때, 힘을 주는 책이기도 합니다.
누구나 그런 시절이 있겠지만, 대학시절에 저는 가난에 대해서 두렵지 않았습니다.
가난 속에서도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다는 철학적 고찰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공부할 수 있는 단 한 평의 공간만 주어져도, 좋아하는 학문을 할 수만 있다면
살아갈 수 있겠다는 패기 정도는 있었습니다.
학문에 대한 열정과 순수함을 먹고 사는 생활이면 만족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의 제 모습은 많이 망가져 있습니다.
순수하게 학문을 좋아하는 마음보다는 직업의식으로 포장된 의무감이 더 강하게 자리잡고 있습니다.
좀 더 좋은 환경에서 근무하고자 하는 욕심도 여전합니다.
서가에 꽂힌 <가난한 사람들>을 보는 순간
때묻지 않은 순수함과 열정을 되찾고 싶은 마음이 강하게 일었습니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경제적인 면의 가난함은 어느 정도 모면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마음 속은 옛날이 더 풍요로웠습니다.
도전하기 보다는 포기하거나 저항하는 일이 더 많아졌습니다.
이제 그런 순수함과 열정에 대한 갈급함을 씻어내기 위해서 다시 노력해야겠습니다.
그 첫 걸음으로 오늘 밤에 <가난한 사람들>을 다시 읽어보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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