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에 이틀 머문 사람은 다시는 로마에 오고 싶어 하지 않고, 일주일을 머문 사람은 꼭 다시 방문하고 싶어 한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의 의미는 실제로 로마에 가 보면 금방 느낄 수 있다. 소매치기와 삐끼가 지천으로 널려있고, 거의 치안 부재인 상태의 로마는 처음 대하는 외국인들에게 그리 좋은 인상일 수 없다. 이틀 정도 지나면 이러한 무질서 속에서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방법들을 나름대로 터득하게 된다. 그후에 보는 로마의 진면목은 소매치기 당한 돈을 까마득히 잊어버릴만큼 매력적이다.
나는 1999년도 2월경에 표준화 회의와 학회 참석을 위해서 로마에 일주일 머문 적이 있다. 시간이 꽤 지났지만 지금도 그때 보았던 로마는 환상적이어서 기억이 생생하다. 한국 사람 중에서는 그 회의에 세명이 참가했는데 서로 소속이 다른 관계로 같은 비행기를 타지 못했다. 다른 두사람은 관광을 위해서 예정보다 하루 일찍 도착했었고, 나는 조금 바빴던 관계로 그들 보다 하루 늦게 도착했다.
내가 도착했을 때는 먼저 도착했던 두 한국 사람들은 관광 중에 이미 로마의 쓴맛을 경험한 후였다. 한사람은 집시한테 걸려서 지갑을 털린 상태였고, 다른 한사람은 삐끼의 유인에 넘어가서 맥주 몇 잔 마시고 우리돈으로 거의 백만원에 가까운 돈을 날려버린 상황이었다. 이 두사람의 뼈아픈 체험을 토대로 나는 소매치기와 삐끼를 피할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할 수 있었다.
소매치기는 대부분 집시들이다. 어린이들을 서너 명씩 데리고 다니는데 관광객이 오면 구걸하는 척 하면서 순간적으로 지갑 같은 귀중품을 소매치기하는 것이 전형적인 수법이다. 이들을 퇴치하려면 적어도 자신의 일미터 주위에는 얼씬 못하도록 해야하는데 가장 좋은 방법은 신문지를 말아서 때리는 시늉을 하는 것이다. 우리도 회의가 끝나는 오후 5시 이후에 관광하면서부터는 이 방법을 사용했는데 다른 두사람이 약이 올라있던 참이라 쉽게 집시들을 물리칠 수 있었다.
삐끼는 거의 구별하기 힘들어서 당하고 난 후에 알게되기 십상이다. 대개는 말쑥한 차림으로 관광객들에게 길을 묻는 것처럼 접근한다. 그리고 자기는 스위스 같은 신뢰할만한 나라 출신이라고 속인다. 얘기가 어느정도 되는 것 같으면 자기가 아는 좋은 식당을 소개시켜준다고 유인한다. 이때 넘어가면 끝이다. 내게도 삐끼가 접근해서 길을 물어보길래 가르쳐주고 몇마디 얘기를 나누던 중에 삐끼에게 당했던 일행 중 한명이 알려준 후에야 그들이 삐끼인줄 알 수 있었다.
소매치기와 삐끼는 많지만 강력범죄는 거의 없기 때문에 이들에 대한 식별법과 대처 방안이 있으면 이제 로마를 안전하게 여행할 수 있다. 로마에서는 따로 관광지를 찾아다닐 필요가 없다. 그야말로 로마 시내 전체가 볼거리 천지이기 때문이다. 시내 지도 한 장 들고 가고 싶은 대로 걸어 다니면 그게 바로 관광이 된다. 다른 나라에서는 모두 박물관에나 가 있어야할 멋진 조각품들이 길거리에 수도 없이 널려 있다.
로마에서는 유물들의 시대를 AD와 BC로 구분한다고 한다. 수백년 지난 유물도 로마에서는 행세를 못한다. 기원전 유물이면 그래도 좀 오래 되었군 하고 봐주고, 기원 후의 유물들은 예술성에 따라 가치가 판단될 뿐 역사성은 평가 절하되는 것 같다.
로마 시대의 마차길 위로 이제는 자동차가 다니기 때문에 교통이 복잡해 보이지만 걸어서 관광하기에는 훨씬 좋다. 걷다보면 말로만 듣던 콜롯세움, 트레비 샘, 나보나 광장, 스페인 광장 등등 행복한 눈요기를 할 수 있다. 나는 콜롯세움을 처음 보았을 때 그 규모에 놀랐었다. 잠실 야구장 정도의 크기는 됨직한 규모의 석조 건물이 2천년 전에 세워졌다는 사실만으로도 놀랍다. 트레비 샘은 저녁때에 바닥에 불켜진 모습이 환상적이었던 생각이 난다. 바닥엔 세계 여러 나라의 모든 동전 종류가 다 모여 있는 것 같았다.
우리 일행은 하룻 동안 짬을 내서 로마를 출발하여 나폴리, 지중해의 카프리 섬, 소렌토를 거쳐서 로마로 돌아오는 관광을 했었다. 시드니, 리오와 더불어 3대 미항이라 불리는 나폴리는 생각보다 아름답지는 않았던 기억이다. 카프리 섬도 우리나라의 홍도에 비하면 기암 괴석이 훌륭하지는 못했다는 생각이다. 그런데 해안이 절벽으로 이루어진 소렌토에 대한 인상은 상당히 이국적이어서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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